2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1층에 여러개의 쿠팡 후레쉬백이 쌓여 있다./사진=정용일 기자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국내 e커머스 시장을 사실상 장악해 온 쿠팡의 독주 체제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그동안 좀처럼 균열이 보이지 않던 쿠팡의 고객 기반에서 이탈 조짐이 수치로 확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경쟁 플랫폼들은 일제히 ‘탈팡(쿠팡 이탈)’ 고객 확보에 나섰다.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회원정보 유출 사실이 공개된 직후부터 소비자 행동에 변화가 나타났다.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실이 신용카드 6개사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사고 다음 날인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2주간 쿠팡 결제 승인 건수는 약 4495만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동일 기간 대비 4.1% 감소한 수치다.


단기적인 결제 감소를 넘어 이용자 지표에서도 하락세가 관측됐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쿠팡 앱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는 약 1484만 명으로, 5일 연속 하락했다. 이는 10월 초 이후 두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업계에선 쿠팡에 대한 신뢰도가 수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쿠팡은 로켓배송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e커머스 시장 점유율 1위를 공고히 해왔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민감한 사안이 불거지면서, 빠른 배송과 낮은 가격만으로는 고객을 붙잡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지금이야말로 쿠팡 중심으로 굳어졌던 시장 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경쟁 플랫폼들은 일제히 ‘쿠팡 따라잡기’가 아닌 ‘쿠팡 없이도 가능한 소비 경험’을 내세우고 있다. 네이버는 롯데마트와 손잡고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에게 롯데마트 온라인 그로서리 플랫폼 ‘제타(ZETA)’ 무료배송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월 4900원의 구독료로 넷플릭스 이용권과 쇼핑 적립 혜택을 제공하는 네이버 멤버십에 대형마트 장보기까지 결합되면서, 쿠팡 와우 멤버십과 유사한 소비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롯데마트 역시 1000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 멤버십 회원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하게 됐다.


SSG닷컴도 새해를 앞두고 신규 유료 멤버십 ‘쓱세븐클럽’을 선보인다. 장보기 결제 금액의 7% 고정 적립과 OTT ‘티빙’ 이용권을 결합한 이 멤버십은 공개 이틀 만에 사전 신청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며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쿠팡이 구축한 배송·적립·콘텐츠 결합 모델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12월 28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의 배송차량 모습./사진=시사의창 DB


경쟁사들 "지금이 기회다" 총력전⁹
배송 경쟁 역시 다시 격화되고 있다. G마켓은 최근 ‘주말 도착보장’ 서비스를 도입해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8시 이전에 주문한 상품을 다음 날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주 7일 배송 체계를 강화하며, 쿠팡의 로켓배송을 정면으로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흐름은 온라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프라인 유통의 대표주자인 이마트도 매장 내에 ‘와우샵(WOW SHOP)’이라는 편집존을 운영하며 5000원 이하 생활용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쿠팡의 대표 멤버십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활용해, 온라인 결제에 불안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다.


현재 쿠팡을 제외한 주요 e커머스 플랫폼의 일일 평균 DAU는 G마켓 171만 명, 11번가 160만 명, 컬리 89만 명, SSG닷컴 47만 명 수준이다. 쿠팡의 이용자 수가 1400만 명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격차는 여전히 크다. 다만 업계에선 쿠팡 이용자의 5~10%만 이동해도 경쟁 플랫폼들의 고객 기반이 단기간에 두 배 가까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쿠팡의 지배력이 단기간에 무너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난해 와우 멤버십 요금이 60% 가까이 인상됐음에도 뚜렷한 고객 이탈은 없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쿠팡이 한국 내에서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로 인한 고객 이탈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관건은 쿠팡의 대응 속도와 신뢰 회복 여부다.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동요로 그칠지, 아니면 e커머스 시장 구조 자체를 흔드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동안 쿠팡 중심으로 굳어졌던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경쟁사들은 그 빈틈을 파고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인 2021년 3월 11일 쿠팡 배너가 정면을 장식한 NYSE 앞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분위기 반전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발생 이후 침묵을 이어오던 김 의장은 28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책임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김 의장은 사과문에서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고객과 국민들께 깊은 불안과 불편을 끼쳤다”며 “쿠팡의 책임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많은 분들이 자신의 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 속에 계셨을 것”이라며, 사고 초기 단계에서 충분하고 직접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 점을 스스로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그김 의장은 대응 과정에서의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 김 의장은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무엇보다 사과가 늦어졌다는 사실이 제게는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고 말했다. 사고 수습을 우선시하다 보니 공개적인 사과 시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늦은 사과에 대한 배경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사고 직후 모든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추가 피해를 막는 데 집중했다”며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판단이 결과적으로는 잘못이었다며, “초기 정황을 인지한 순간부터 직접 유감을 표하고 국민께 설명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사태 수습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의장은 “한국 쿠팡과 임직원들은 사고 직후 ‘2차 피해 가능성 차단’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대응에 나섰다”며 “현재도 조사는 진행 중이며, 추가로 확인되는 내용이 있으면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의 협력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 제기된 ‘정부와 상의 없는 자체 조사 발표’ 의혹에 대해 김 의장은 “조사 초기 단계부터 관계 당국과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유출자를 특정한 즉시 정부에 통보했고, 정보 유출에 사용된 장비와 유출된 자료를 신속히 회수해 모두 제출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철저히 따랐다고도 덧붙였다.


김 의장은 끝으로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처음부터 다시 신뢰를 쌓겠다는 각오로 모든 지적과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 주도로 피해 보상안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하고, 정보 보안 체계와 관련 투자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겠다는 쇄신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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