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3주가 지나면서, 정부의 태도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과징금과 시정명령 수준에 머물던 플랫폼 제재 논의가 이제는 ‘영업정지 가능성’이라는 최고 수위 카드까지 공식적으로 거론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쿠팡이 당장 한국 시장에서 영업을 중단하거나 철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데 있어 더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이번 조치가 또 하나의 ‘면피용 제재’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플랫폼 권력에 대한 실질적 경고로 남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묻는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조사 결과에 따라 영업정지 조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정위 수장이 대형 이커머스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정지를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과거 개인정보 보호법이나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영업정지가 적용된 사례는 대부분 소규모 온라인 사업자에 국한돼 왔다.


수천만 명의 이용자와 수십만 입점업체가 얽힌 초대형 플랫폼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 전례는 사실상 없다. 이 한마디 발언만으로 시장이 술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즉각적인 실행 가능성’보다는, 정부가 던진 정책 메시지의 강도 자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 핵심이다.

허지만 제도상 문턱은 높다. 현행 법체계상 영업정지까지 이어지는 절차는 간단하지 않다. 민관합동조사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재산상 피해 또는 그 명확한 우려가 입증돼야 하고, 이후 소비자 피해 회복을 위한 시정조치 명령이 선행된다.
이 과정에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거나, 유사한 사고가 1년 이내 재발할 경우에야 영업정지라는 최종 수단이 검토될 수 있다.


즉, 이번 발언은 ‘당장 영업을 중단시킨다’는 선언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을 공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때문에 법조계와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징적 경고의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과 함께, “그러나 이전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앞 배송차량 모습./연합뉴스


정부도 계산하는 ‘정지의 부작용’
쿠팡이 멈출 경우 발생할 파장은 정부 역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플랫폼 하나의 중단이 곧바로 수십만 명의 입점 소상공인, 물류 노동자, 소비자의 불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 위원장 또한 소비자 피해가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이나 다른 행정 제재로 갈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정부 역시 ‘강력한 상징적 처벌’과 ‘현실적 피해 최소화’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영업정지 언급은 실행 그 자체보다, 기업으로 하여금 “이 선을 넘으면 정말 멈출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엄포’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사안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정치적 맥락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공개 석상에서 위법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옆에서 기업이 당하는 걸 보고 ‘저렇게 하면 망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발언은, 쿠팡 사태가 단순한 행정 판단을 넘어 정권 차원의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그동안 제기돼 온 ‘플랫폼 봐주기’ 논란에서 벗어나, 거대 플랫폼에 대해서도 동일한 법 집행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태를 더 키우고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쿠팡의 대응 방식이다. 사고를 인지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쿠팡은 구체적인 피해 보상안이나 이용자 보호 강화 방안을 명확히 내놓지 않고 있다. 책임 인정과 재발 방지 대책이 지연될수록,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은 점점 강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사태의 결말은 쿠팡의 대응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징금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고, 향후 플랫폼 규제의 기준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이 “대형 플랫폼은 예외”라는 오래된 인식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정용일 기자 zzokkoba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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