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 의장./쿠팡 제공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국회가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싸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핵심 책임자들이 줄줄이 청문회 불출석을 통보하자, 국회 소관 상임위원장이 이를 정면으로 문제 삼으며 사실상 ‘출석 거부 불허’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업 현안 차원을 넘어,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책임성과 국회 통제 권한을 둘러싼 충돌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오는 17일 예정된 이른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청문회’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쿠팡 전·현직 최고위 인사들이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SNS를 통해 “김범석 쿠팡 Inc 의장과 강한승 전 대표, 박대준 전 대표 모두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과방위원장으로서 이들의 불출석을 불허하며, 국회 차원에서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청문회는 3,37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둘러싸고 쿠팡의 관리·감독 책임과 사후 대응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정작 핵심 책임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잇따라 출석을 거부하면서, 국회의 진상 규명 기능이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김범석 의장은 과방위에 제출한 사유서에서 “해외에 거주 중이며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비즈니스 일정상 청문회 참석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한승 전 대표는 “사안에 대해 알지 못하며 증언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고, 박대준 전 대표는 “이미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이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회 안팎에서는 이러한 사유가 국민적 파장을 일으킨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다는 비판이 거세다. 강 전 대표는 불과 지난 5월까지 쿠팡 대표이사직을 수행했으며, 현재도 쿠팡 Inc 북미사업개발 총괄이라는 핵심 보직을 맡고 있다. 박 전 대표 역시 최근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과방위와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직접 출석한 전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불출석 통보는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박 전 대표 사임 이후 쿠팡이 한국에 상주하지 않는 해외 임원을 임시 대표로 선임한 점도 국회의 반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중대한 개인정보 침해 사건에 대해, 실질적 의사결정권자가 국회에 출석하지 않고 해외에 머무르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소속 과방위원들도 공동 입장문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쿠팡 증인들의 불출석 사유서는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국가적 사안 앞에서 책임자들이 국회와 국민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변명 중 어느 하나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회는 이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방위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제도적 대응에도 나설 방침이다. 지배구조상 책임자에 대한 국회 출석 의무를 강화하고, 해외 체류를 이유로 한 증인 회피를 막을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유로 국회의 통제와 책임 추궁을 피해갈 수 없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과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쿠팡 청문회가 향후 플랫폼·빅테크 기업 전반에 대한 국회의 감독 기준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국적과 경영 구조가 글로벌화된 상황에서, 국내 소비자와 국민에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졌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기업은 국경을 넘어 활동할 수 있지만, 그 책임까지 국경 밖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쿠팡 사태를 둘러싼 국회와 기업 간의 긴장은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청문회 당일 실제 출석 여부와 이후 국회의 후속 조치가, 국내 플랫폼 규제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낼지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9일 경찰이 고객 3천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에 대한 강제 수사에 나섰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이날 오전 총경급 과장 등 17명을 투입해 송파구 쿠팡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유 있는 쿠팡의 '배짱'

이처럼 핵심 책임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해외 체류, 업무 일정, 직위 변경,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줄줄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이에 대해 국회는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쿠팡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쿠팡의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 번째 배경은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다. 쿠팡은 단순한 이커머스 기업이 아니라, 한국 유통 생태계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린 플랫폼이다. 수천만 명의 이용자, 수십만 입점업체, 물류·배송 인프라까지 촘촘하게 엮인 구조 속에서 쿠팡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에 가까워졌다. 이 같은 시장 지위는 정치·행정적 압박이 가해지더라도 단기간에 흔들리기 어렵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에도 이용자 이탈은 제한적이었고, 서비스 이용 지표 역시 급격한 하락을 보이지 않았다. 쿠팡으로서는 “여론의 비판은 거세지만, 구조적 타격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글로벌 지배구조가 만들어낸 책임의 분산이다. 쿠팡의 실질적 정점은 미국 법인인 쿠팡 Inc에 있고, 핵심 의사결정권자 상당수는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 이는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는 장점일 수 있지만, 국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흐리게 만드는 구조이기도 하다. 국회가 출석을 요구해도 “해외 거주”, “글로벌 경영 일정”이라는 이유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경에는, 애초에 국내 제도권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쿠팡은 이 구조가 단기간에 법적·제도적 제재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 번째는 규제 리스크 관리에 대한 계산된 자신감이다. 개인정보 유출은 중대한 사안이지만, 실제로 기업 경영을 뒤흔들 정도의 제재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과징금, 시정 명령, 재발 방지 대책 요구 등은 통상 기업이 ‘관리 가능한 비용’으로 인식하는 범주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쿠팡 역시 법률·컴플라이언스 조직을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미 계산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국회 청문회에서의 정치적 압박보다,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동했을 수 있다.

네 번째는 국내 정치 환경에 대한 냉정한 읽기다. 쿠팡 청문회는 여론의 주목을 받지만, 정권과 국회의 관심사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오늘의 대형 이슈가 내일이면 다른 사안에 밀려나는 것이 정치 현실이다. 쿠팡이 시간을 벌며 상황을 관망할수록, 이 사안이 장기적 구조 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불출석으로 인한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버티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섯 번째는 플랫폼 기업 특유의 권력 감각이다. 쿠팡은 더 이상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국민의 일상과 노동, 소비를 연결하는 거대한 인프라다. 이 같은 위치에 오를수록 기업은 스스로를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 필수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물류 고용, 중소상공인 거래, 소비자 편의성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 역시 쿠팡을 쉽게 압박하기 어렵다는 점을 기업은 체감하고 있다. 이 인식이 쌓이면서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집단적 확신이 형성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짱은 동시에 위험을 내포한다.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다. 책임자가 국회에 출석하지 않고 해외에 머무르는 모습은, 기업의 글로벌화가 민주적 통제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회가 이번 사안을 계기로 출석 의무 강화, 지배구조 책임 명확화 등 제도적 보완에 나설 경우, 쿠팡의 ‘버티기 전략’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쿠팡의 배짱은 우연이 아니다. 시장 지배력, 글로벌 지배구조, 규제 리스크에 대한 계산, 정치 환경에 대한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문제는 그 배짱이 계속 용인될 것인지, 아니면 플랫폼 기업 책임 논쟁의 전환점이 될 것인지다. 이번 쿠팡 사태는 단일 기업의 일탈을 넘어, 한국 사회가 글로벌 플랫폼의 권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