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고객 3천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에 대한 강제 수사에 나섰다.
9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 관계자들이 상자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쿠팡에서 3370만 개 계정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직후 쿠팡 애플리케이션의 주간활성이용자수(WAU)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 이탈이 크지 않았고, 비활성 이용자들이 계정 보안 점검을 위해 다시 앱을 찾으면서 일시적 접속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모바일인덱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30일 이후 일주일간(12월 1~7일) 쿠팡 앱의 WAU는 673만275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고 이전 일주일(11월 24~30일) 651만9986명 대비 약 21만 명(3.3%) 늘어난 수치다. WAU는 한 사람이 일주일 내 여러 차례 접속해도 1건으로만 집계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당수 이용자가 정보 확인 또는 계정 정리 목적 등으로 새롭게 접속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일간활성이용자수(DAU)는 사고 직후부터 소폭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보안 점검 목적의 접속 증가가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제 이용 이탈 여부가 드러날 수 있다”며 “장기적인 추세 변화는 좀 더 관찰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신규 설치 건수도 두드러지게 늘었다. 12월 첫째 주 쿠팡 모바일 앱 신규 설치 수는 4만5475건으로 직전 주 2만1368건의 두 배 수준을 기록했다. 신규 설치는 동일 기기에서 재설치할 경우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평소 앱을 사용하지 않던 휴면 이용자들이 계정 보안 확인을 위해 처음 설치한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휴대폰을 교체한 뒤 장기간 앱을 설치하지 않았던 사용자들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유출 여부를 확인하려고 새로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제액 변화는 크지 않았다. 12월 1~7일 주간 쿠팡 앱의 신용·체크카드 추정 결제액(간편결제 제외)은 1조385억 원으로 전주 대비 약 89억 원(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이용시간도 42.20분에서 44.77분으로 약 2.5분 늘어나는 수준에 머물렀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소비 행태에 즉각적 영향을 미친 조짐은 미미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쿠팡뿐 아니라 경쟁 커머스 앱들의 이용자 수 또한 동시에 증가했다는 점이다. 쿠팡과 유사하게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컬리의 경우, 12월 첫 주 WAU가 74만2680명으로 직전 주 대비 약 6만 명(8.8%) 늘었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는 같은 기간 115만9314명에서 125만3453명으로 8% 증가했고, G마켓은 106만7375명에서 124만8852명으로 17%나 늘었다. SSG닷컴 역시 38만여 명에서 41만여 명으로 약 8%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연말 시즌 특유의 선물 수요 증가와 대형 세일 행사 등이 전체 온라인 쇼핑 이용자 증가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2월은 계절적으로 쇼핑 앱 이용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에 모든 업체의 이용자가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쿠팡 사고 여파로 일부 소비자들이 대체재를 찾기 위해 다른 쇼핑 앱을 함께 살펴보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 같다”며 “실제 ‘탈팡’ 흐름이 본격화할지는 장기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는 이용자 이탈보다 보안 확인 목적의 유입이 더 컸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대한 신뢰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남는다. 이번 사태가 장기적으로 쿠팡의 이용자 구조와 경쟁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일 서울 쿠팡 본사


한편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정부·국회·여론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배짱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빠른 사과나 책임 범위 인정 대신 최소한의 언급만 반복하며 시간을 끄는 듯한 태도 뒤에는 온라인 쇼핑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플랫폼 기업이라는 자신감과 함께, 대관(對官)·대외 대응을 위한 거대한 조직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빌딩에는 쿠팡의 대외협력 조직, 일명 ‘대관팀’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외부에는 간판도, 안내문도 없어 일반인들은 이곳이 쿠팡 사무실인지 알아보기조차 어렵다. 인근 다른 사무실 이용자들은 “문이 열릴 때 안쪽에 붙은 쿠팡 표기를 보고서야 알 정도”라고 말한다. 쿠팡은 올해 2월 잠실 본사 외부에 이 공간을 새로 임차했으며, 대관팀 출신 박대준 전 대표도 종종 드나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쿠팡 측은 “본사가 좁아 외부 사무실을 추가로 확보한 것뿐이며, 외부 활동이 많은 대외업무 특성상 별도 공간 운영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명한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국회·정부 부처·위원회 업무 대응을 위해 대관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외부 사무실을 마련하는 경우도 낯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쿠팡 대관조직의 규모와 구성이다. 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대관 관련 임직원은 최소 수십 명에 이르며, 쿠팡 CLS 등 주요 계열사까지 포함할 경우 100명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삼성·SK 등 대기업조차 비교가 무색할 정도의 인력 규모”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더 큰 의문은 영입 인사의 면면에서 비롯된다. 다음 주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조용우 부사장은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 출신이며,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총괄과장을 지낸 인물도 전무로 합류했다. 이 외에도 국회, 검찰, 고용노동부, 공정위 등 규제기관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에만 재취업 심사 과정을 거쳐 쿠팡으로 이동한 인력은 확인된 인원만 18명에 달한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8일 “누가 보더라도 의심스러울 만큼 전관 재취업이 과도한 기업이 더 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정부가 직접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쿠팡의 대관 조직은 전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거대한 대관 조직은 최근 쿠팡의 대응 태도와도 연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직후 일주일 만에 홈페이지에 올린 짧은 사과문,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는 표현으로 사실상 책임을 축소하려는 듯한 해명, 소비자 보상 기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는 버티기 전략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정부와 국회 대응에 자신감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매머드급 대관팀 때문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온라인 쇼핑 시장 압도적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시장 지배력, 그리고 규제기관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대관 조직의 존재가 쿠팡의 태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사고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이어지는 가운데, 쿠팡이 스스로 거대한 대관 조직의 역할과 현재의 대응 기조를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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