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태헌 기자]거창읍 둔치주차장 중앙교 하부 진출입로가 2025년 8월 27일자로 차단된 뒤 80일이 지났다. 이곳을 20년 넘게 생활도로처럼 이용해 온 인근 주민들은 오늘도 우회로를 돌며 불편을 감수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처음 사슬을 걸어 막던 그날의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다. 거창군이 내세운 ‘안전’ 명분 뒤에 정작 ‘주민’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교 하부 진출입로는 아진프라자, 동성리젠시 등 대동리 일대 주민들에게 둔치주차장과 읍내를 오가는 가장 짧은 차로길이었다. 차로 몇 십초, 수 분을 아끼는 통로였다. 차단 이후 주민들은 차량 진출입에 150~300m를 돌아가야 한다. 숫자로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차량에서 짐을 내려야 하는 경우와 고령 주민·장애인·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게는 매일 누적되는 불편이자 피로다.
거창군은 출차 인식기 부재, 입·출차 데이터 불일치, 우수기 차량 대피 안내 어려움 등을 이유로 들며 중앙교 하부 진출입로를 봉쇄했다. 그러나 차단 이후 80일 동안 실제 침수나 대피 상황은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안전을 이유로 내세운 ‘상시 차단’이 과연 현실과 맞는지, 현장의 시간은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사의창은 이미 보도를 통해 여름철 우수기 한 달 정도만 탄력적으로 통제하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상시 봉쇄가 아니라, 위험도가 가장 높은 기간에만 일시적으로 통제하고, 경보 안내 시설과 간이 관제 체계를 보완하자는 제안이었다. 9월 11일에는 취재 과정에서 구인모 거창군수에게 직접 전화로 주민 불편과 재검토 요구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거창군에서 돌아온 것은 공식 입장도, 조정안도, 주민 설명회도 아닌 ‘침묵’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주민불편 vs 공무원 편의’라는 구도에 있다.
진출입로를 열어두되 관리 체계를 손보는 방향은 행정 입장에서는 번거로울 수 있다. 데이터 정비, 장비 보강, 안내 시스템 확충, 우수기 비상 매뉴얼 마련 등 손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출입로를 사슬로 묶어버리면 행정 입장에서는 가장 간단하다. 출동도 줄고, 책임 소재도 피하기 쉬워진다. 지금 중앙교 하부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주민불편은 안중에도 없이 공무원 편의만을 최우선에 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의 단면으로 읽힌다.
더 심각한 것은 소통 부재다. 진출입로를 막은 지 80일이 지났지만, 거창군은 이곳을 20년 넘게 이용해 온 인근 주민들과 단 한 번의 공개적인 간담회도 갖지 않았다.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언제까지 통제할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저 “철저히 통제하겠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만이 주민들을 대신 응대하고 있을 뿐이다. 군청은 ‘민원 접수 건수’만 세고 있을지 모르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생활권이 일방적으로 잘려 나간 사건이다.
공복(公僕)은 주민을 위해 존재한다. 주민이 공무원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민 서비스의 최우선 가치는 언제나 ‘주민이 더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면, 주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지방정부의 책무다. 지금 거창군의 태도에서 이런 기본 원칙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중앙교 하부 진출입로 차단 문제는 단순한 도로 출입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이 주민의 생활 불편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소통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공복으로서 책임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한 번 걸어 잠근 사슬을 끝까지 풀지 않겠다는 고집인지, 주민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겠다는 결단이 있는지, 거창군정의 철학이 이 작은 출입로에서 드러난다.
올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거창군은 중앙교 하부 진출입로 문제를 다시 꺼내어 주민과 마주 앉아야 한다. 상시 차단이 아닌 합리적인 탄력 통제, 안전을 담보하면서도 주민불편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슬로 묶인 것은 길뿐만이 아니다. '행정의 달인'이라고 자랑해온 구인모 거창군수가 이끄는 거창군의 달인행정이 이런 수준인지? 주민들이 느끼는 행정에 대한 신뢰 또한 서서히 묶이고 있다는 점을 거창군은 잊지 말아야 한다.
군민은 중앙교 하부 진출입로에 묶인 사슬을 단순한 사슬로 보는 것이 아니고 '군민과의 소통'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목민관은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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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헌 경남취재본부장 arim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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