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태헌 기자] 거창군이 내일(4일)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2012년 첫 건립 논의가 시작된 지 무려 13년 만이다. 구인모 군수와 신달자 시인을 비롯한 내빈 150여 명이 참석해 축하를 나눌 예정이지만, 화려한 개막 뒤편에는 거창군의 ‘원칙 없는 행정’과 ‘불통’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태헌 경남취재본부장


거창군은 이번 개관을 위해 특별교부세 5억 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쳤다. 군은 보도자료를 통해 “오랜 기간 검토와 준비 끝에 개관한 문화공간”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그 ‘오랜 기간’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창군의 문화 행정이 얼마나 갈팡질팡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13년간 이름만 세 번 바뀐 ‘카멜레온 건물’

신달자문학관이 들어선 남하면 대야리 건물은 거창군 행정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당초 2012년 신달자 문학관으로 추진되던 이곳은 “생존 인물에 대한 기념관 건립은 특혜”라는 지역 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2016년 ‘거창 예술인의 집’으로 이름을 바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접근성 부족과 콘텐츠 부재로 찾는 이가 없자, 2020년에는 뜬금없이 ‘청년농창업지원센터’로 간판을 바꿔 달고 청년 농업인들의 숙소로 활용됐다. 문화 시설이 농업 시설로 둔갑했다가, 이제 와서 다시 문학관으로 회귀한 것이다. 건물의 용도가 행정 편의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 셈이다. 이는 장기적인 안목 없이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려는 ‘땜질식 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특혜 논란’ 불씨 여전… 지역 문심(文心)은 어디에

가장 큰 문제는 13년 전 사업을 좌초시켰던 핵심 쟁점인 ‘특혜 시비’와 ‘지역 문인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창군은 “지역문화예술인 관계자 회의를 통해 문학적 가치를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 문학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답을 정해놓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창에서 나고 자라며 묵묵히 지역 문단을 지켜온 향토 문인들에 대한 지원이나 기념사업은 뒷전인 채, 명성만을 쫓아 특정 출향 문인에게 수억 원의 예산과 건물을 내어주는 모양새가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 ‘건물’보다 중요한 건 ‘공감’

구인모 군수는 문학관을 “지역 문학인의 창작 플랫폼이자 열린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신달자 시인 역시 장학금을 기탁하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그러나 진정한 ‘지역 문학의 거점’이 되기 위해서는 건물의 번듯함보다 지역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지 못하고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개관한 신달자문학관. 자칫하면 또다시 막대한 운영비만 축내고 지역 예술인들에게 외면받는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13년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문학관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진정한 ‘군민의 공간’이 될 수 있을지, 거창군의 운영 능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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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헌 경남취재본부장 arim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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