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전국원전인근지역동맹 행정협의회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심덕섭 고창군수와 권익현 부안군수가 함께 공동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고창군 제공)
[시사의창=최진수기자] 정부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시행을 앞두고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과 부안군을 비롯한 원전 인근 지자체들은 해당 시행령이 주민 안전과 지역 재정 지원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18일 오전 전북특별자치도 도의회 브리핑룸. 전국원전인근지역동맹 행정협의회 공동 기자회견장에는 심덕섭 고창군수와 권익현 부안군수(원전동맹 협의회장)가 나란히 섰다. 심 군수는 굳은 표정으로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은 인근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철저히 무시한 불합리한 법안”이라며 “즉각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지역 5km 한정, 주민 안전 외면한 졸속”
문제의 핵심은 ‘주변지역’ 범위 설정이다. 이번 시행령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반경을 5㎞로 한정했다. 그러나 심 군수는 “핵발전소와 동일한 위험에 노출된 인근 지역 주민들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제사회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30㎞로 확대한 사실을 언급하며, “국제적 기준을 무시한 처사는 주민 안전을 도박판에 올려놓은 것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전국원전지역동맹 역시 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기자회견문에서 동맹은 “주민 동의 절차가 누락된 채 임시저장시설 설치를 강행하는 것은 사실상 영구 저장시설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며 “이는 민주적 절차와 주민 수용성을 무시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규정했다.
“재정 지원서도 배제된 고창·부안”
또 하나의 문제는 재정 지원 배제다. 지난해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지역자원시설세 배분 범위가 일부 확대되었으나, 정작 원전 인근에서 실질적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 고창·부안·삼척·양산·유성 등 5개 지자체는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심 군수는 이에 대해 “원전의 직접적 영향권에 속하면서도 재정적 지원은 철저히 배제된 현실은 납득할 수 없다”며 “별도의 재정 지원 대책 마련 없이는 지역 주민을 기만하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원전 영향권에 있는 지자체들의 권리를 국가가 앞장서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민 목소리 무시하는 정부, 갈등 불씨 키워
이번 사안을 두고 지역 사회에서는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는 수십 년간 미뤄져 온 난제다. 그러나 주민 동의와 수용성을 배제한 채 행정 편의적으로 강행된다면, 이는 지역 갈등과 저항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른다.
권익현 부안군수 역시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특별법은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며 “원전 인근 주민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이해당사자다. 당사자 없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정의로운 대책 마련 없인 수용 불가”
결국 이번 특별법 시행령은 원전 인근 지자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심덕섭 군수는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며 “고창군은 앞으로도 원전 인근 지역의 정당한 권리 확보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정부는 더 이상 주민을 배제한 일방적 결정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민 안전과 지역 권익을 무시한 법령은 결코 설 자리가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원전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원한다면, ‘5㎞ 족쇄’를 풀고, 인근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재정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이자 최소한의 정의다.
최진수 기자 ds4ps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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