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 첫날, 미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에는 대한민국의 현 시국에 시사점을 던지는 의미심장한 칼럼이 한 편 실렸다. “Things have to get worse to get better”(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상황이 더 나빠져야 한다.) 물론 이 글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작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난 가네시(Janan Ganesh)가 기고한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입장에서 충분히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 글의 주요 내용은 유권자들은 국가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제대로 된 정치적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현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는 상황이 나빠질 대로 나빠지고 유권자가 분노로 가득 차올라야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970년대 말, 미국의 카터 정권이 우왕좌왕한 물가정책이나 이란의 친미(親美) 팔레비 정권의 몰락을 수수방관하는 최악의 외교적 무능이 없었다면 레이건의 등장과 강력한 미국을 표방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등장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좋은 사례이다. 그동안 윤 정권의 잇따른 실정에도 불구하고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결단에는 주저했던 다수의 국민들은 이제 결심을 확고하게 굳혔다. 예상치 못한 친위쿠데타를 획책하며 야권과 언론, 선거관리위원회 등 주요 국가기관들을 무력화시키려던 저들의 극단적 조치는 스스로 권력을 붕괴시키는 자충수가 되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5일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차량으로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5년 2월호=원광연 기자]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80년대 이후 국민들은 가장 심각한 민주 질서의 위기를 체감했고 민주 체계에 대한 취약성을 목격했다.
따라서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구나’라는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국민 다수는 내란수괴 윤석열을 더 이상 권력자로 인정하지 않는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심은 현재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민주 질서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권은 여전히 내란 주동자들을 옹호하며 진상규명과 처벌을 방해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서부지방법원 난입을 자행한 폭동 사태 등도 마주하며 앞으로 더 악화된 상황을 맞이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은 오히려 국민들의 각성을 촉진시키고 민주 질서 수호에 대한 의지와 행동을 공고하게 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민주주의에 대해 역행하면 할수록 민주 질서가 강화된다는 아이러니다.
지난 1월 18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언 중인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오인되는 정치 지형,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는 진짜인가?
대체로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로 구분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 상황을 들여다보면 표면적으로는 각 진영 간의 정치세력이 균형 있게 분포된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상당히 우클릭 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87%가 자신을 진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거대 여야 정당의 정강 정책과 노선을 분석해보면 진영을 구분할 만큼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또한 엄밀한 현실은 국회의원 의석수를 기준으로 진보 정치세력의 입지는 매우 좁은 상황이다. 사실상 보수라고 하는 국민의힘 지지들은 엄밀히 말해 극우 성향에 가깝고 중도, 진보성향이라고 답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실제로는 보수성향 또는 개혁보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 원인은 한국의 해방 이후와 독재 정권 치하라는 정국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친일 세력 청산에도 실패하고 여운형, 송진우, 김구 등 수많은 주요 인사들의 암살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한 단죄는 미미했다. 정적 제거를 배후에서 사주하거나 부역한 소위 권력층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런 단죄도 받지 않고 지금까지도 권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뿐인가?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그 주도 세력과 이에 부역한 자들은 과거의 특권을 누리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호가호위 호의호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니 내란 사태 이후에도 여권의 핵심 지도부들이 아무말 대잔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게 아니겠는가? 이는 단순한 막말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어떤 반성도 없이 책임을 외면해 온 권력 구조의 산물이다. 그들의 의식 근저에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다.
1997년 12월 22일 반란수괴,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그리고 뇌물수수 등 확정된 죄목만 13개에 달하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감 생활 2년여 만에 특별사면을 받고 복권됐다. [방송 화면 갈무리]
우의 날개만 있고 좌의 날개는 없는 현실
1950년 분단 전쟁 이후 반공주의가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 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감을 기반으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서 좌파 또는 진보적 성향은 곧바로 ‘친북’이나 ‘반체제’로 낙인찍혔다.
가네시(Janan Ganesh)의 지적처럼, 최악의 극단적 상황이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전쟁의 참혹한 경험은 반공주의가 단순한 이념이 아닌 국가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국가 정체성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 안보였기 때문에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당연시되었고, 시민의 권리 제한은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민족을 반역했던 친일파 청산 실패와 군사 독재 정권 주동자와 부역 세력에 대한 명징한 단죄가 없었기에 친일파와 독재세력은 주역이 되어 여전히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권력을 존속시켰다. 반공이념은 그들의 권력을 지탱하고 강화시키는 무기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념의 대립은 진보와 보수 간의 진영 논리가 아닌 국가 안보를 지키려는 체제 수호 세력과 그것을 위협하는 반체제 세력 간의 갈등으로 프레임이 형성되었다. 심지어 바른말을 하고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자는 시도조차 좌파로 몰려 버리고 마는 현실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지만 강력한 누군가에 의지하여 복종하려는 경향 역시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복종의 본성은 우리 사회, 한국 보수 이념의 대강(大綱)을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 권력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면서 국민들의 복종 본능을 자극했다. 교활한 통치 세력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도저히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지역감정을 활용한 공작 정치’를 자행했다. 그 폐단 때문에 권력 세력을 배출한 지역 주민의 정치적 이성은 마비되었고 더욱 맹목적으로 복종만 강요당하는 ‘정치적 노비’로 전락 됐다. 제 2의 “갑오개혁”이라도 선언해야 할 판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지난 1월 19일 오전 서부지법 후문에 현판이 쓰러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급진 우경화의 진짜 모습, 파시즘
왜곡된 정치적 자기 효능감(Political self-efficacy)
민주주의 가치는 반드시 민주적 절차를 지키면서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선거를 통하거나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권력을 적절히 분배하여야 한다. 그러나 국민을 억압하고 독재에 부역하면서 권력을 누려온 기득권 세력에게 절차적 정당성, 민주성은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다.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공동체의 번영과 무관하게 자신의 정치적 야심, 개인 권력의 획득이 지상 최고의 가치다.
파시즘(Fascism)의 어원이 되는 파쇼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다발’ 또는 ‘묶음’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시절, 집정관의 경호원들이 나무 다발에 도끼를 묶어 들고 다니던 무기에서 유래했고 집정관의 권위와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한다
파시즘은 국가가 개인의 삶을 철저히 통제하며, 개인을 국가의 부속물로 간주하는 전체주의를 기초로 한다. 또한 강력한 지도자의 지배 아래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권위주의를 핵심으로 하여 반공주의를 천명한다. 동시에 강력한 국가 중심의 경제와 사회 체제를 추구하는 반자유주의적 성격을 띤다. 더불어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폭력까지 정당화하는 영웅주의와 민족주의도 중요한 요소도 큰 특징이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고 오늘에 이른 상황과 매우 부합되는 광경이 아닌가? 극력 보수단체의 집회에서, 이제는 주적조차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하는 주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이유 없이 중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적대감을 부추기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광경은 마치 히틀러의 인종 숙청 정책에 광분하고 지지를 보내던 대중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정 국가와 민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시민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모습이 판박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없이 창궐하던 파시즘의 종말은 거리에 매달린 무솔리니 부부의 최후처럼 언제나 비극적 결말로 끝이 났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보수가 파시즘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인가? 거기엔 왜곡된 정치적 자기 효능감(Political self-efficacy)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치적 자기 효능감이란 시민 개인이 정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정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 세력은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과 비판적 사고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만이 국가를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국가가 무너진다’는 왜곡된 정치적 자기 효능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서로 간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은 사라지고 적대적 대결만이 팽배한 일종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이다.
내수부진·가계빚에 계엄사태까지…한국 경제는 다중악재에 짓눌려 있다. ©연합뉴스
바보들아, 문제는 경제야! 먹고 사는 문제가 진짜
가짜뉴스와 일부 극우 유튜버들의 논리에 편승한 윤석열은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등한히 하고 보수의 ‘파쇼’화를 강화시키는데만 혈안을 두었다. 그 결과 한국의 경제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중국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부정적 인식과 마치 일본 정부의 조종을 받는 듯한 풍성한(?) 친일 매국 정책은 수많은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30년 넘게 흑자 연속이었던 교역국 1위 중국은 2년 연속 ‘적자 교역국’으로 돌아섰다. 공고하던 러시아 내 한국 제품의 브랜드 입지도 급전직하했다.
부자 감세를 핵심 경제정책으로 추진한 결과 2022년 396조 원이었던 국세 수입은 2024년 338조 원으로 2년 만에 약 14%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 리먼 브러더스 사태, IMF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큰 세수 감소 폭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4분기 경제성장률은 0.1%로 종전 예상치의 5분의 1로 토막이 났고, 지난해 연간 GDP 성장률은 간신히 2% 턱걸이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마저 기존 1.9%에서 1.6-1.7%로 하향 조정됐다.
내란 사태와 정치적 혼란 사태에 따라 국제 신인도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주요 외교 행사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코리아 패싱’도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는 한국이 윤석열의 등장과 몰락으로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사꾼이 편향성을 드러내면 과연 장사에 도움이 될까? 이러한 질문은 현재 한국 정치와 경제의 복잡한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우리는 부존자원이 적고 오로지 장사를 잘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다.
세계 10위의 무역 대국이라는 위상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동시에 고객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대 어느 보수 정권도 먹고 사는 문제, 실사구시를 가장 우선적인 정책 순위로 설정했다. 노태우 정권은 한국전에 참전했고 역사적 혈맹 관계였던 대만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중국과의 수교를 단행했다. 심지어 보수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박근혜마저도 시진핑, 푸틴과 함께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의 동맹국 정상 자격으로는 유일한 참석이며 북핵 문제 해결과 경제적 실리를 위해 내린 결단이기도 했다. ‘이념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尹과 극우 보수 세력들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자칭 보수를 표방하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1월 14일 관저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민족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위험천만하기만 하고 먹고사는 문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념적 편향’과 결별해야 한다. 왜 한국의 보수단체 집회에서는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성조기가 나부껴야 하는가? 수많은 해외 사람들도 이점을 의아해하고 있다.
진짜 보수는 민족의 자존심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우리만의 전통과 가치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지점부터 한국의 보수는 어긋나 있다. 민족의 자존심은 버리면서 매국적 굴종 외교가 판을 쳐도 외면하고 사대(事大)에 기반한 이념적 동맹만을 강조하는 정치 세력이 목소리를 점점 키워가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진다.
이념에만 몰두했던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따르던 국민들은 결국 패망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민족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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