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적 시각에서 보면 요즈음 대한민국의 정치가 50년은 후퇴하는 게 선명하게 보인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로 세계 경제 순위 6위 국가에서 일어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목불인견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광란의 칼춤’이란 말이 떠도는 게 실감 난다. 작금의 정치판에서 대권 경쟁을 하면서 국가 안보, 경제 안보, 민생문제는 안중에도 없이 날벼락처럼 떨어진 ‘탄핵’이란 큰 절벽 앞에서 그들이 부릴 수 있는 온갖 권모술수와 선동이 난무하고 있어서 그렇다. 원인이야 천 가지가 넘겠지만 지도자를 뽑는 선거제도에서 기인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선거 때마다 ‘묻지마식 내 편 찍기’와 ‘무조건 되고 보자’는 양측의 심리가 맞아떨어지면서 또, 그런 인물을 가려내지 못한 유권자들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인물을 보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측면을 보면, 선거법 위반 등으로 다소간 법정에서 수난을 겪겠지만 대부분이 살아나는 우리나라 선거법 위반 재판제도와 ‘엿가락 휘듯 늘어지는’ 재판 기간, 법 제도의 엉성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줄여서 말하자면 ‘시련은 있되 낙마는 없다’라는 믿음에서 온 듯하다. 이는 후보자가 자신이 ‘획득한 득표수 만큼의 유권자에 대한 빚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아무런 부채의식이 없고, 당선되면 나 몰라라 하는 심리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보자나 유권자의 잘못된 의식도 한 몫 하지만,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공직선거법 위반자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이다. 지지부진한 수사에 한없이 늘어지는 재판과정에서 공직선거법 제270조의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의 재판기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례가 거의 없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이미 매스컴이나 다른 공중 매체를 통해 재판받으며 임기를 끝내는 웃지 못할 사례들을 보면서 답답한 가슴을 쿵쿵 쳐왔지만 좀 더 지난 사례를 되짚어 보며 같이 고민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시사의창 2025년 1월호=오운석 전북본부장]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6.3.3 강행규정)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을 보면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이며 이 규정의 개정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2000년 2월 16일자이다.
자세히 보면 공소시효 6월, 재판기간 12개월로 도합 18개월 이내에 공직선거범은 수사와 선고를 마쳐야 한다는 내용이다.

강행규정 불구 재판의 지연 또는 선고가 늦어지는 문제
첫째, 강행규정이지만 재판장들의 선고가 늦어져도 벌칙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강제조항의 또다른 보완장치 역시 없다는 점이다.
둘째, 재판 당사자인 원고 검사측과 피고측간 유리한 증인을 재판정에 세우고 재판부는 피고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피고측 변호인들의 연환계 전략에 뻐져들기 일수라는 점이다.
그러한 제반 사정을 수용하다 보면 재판 일정은 길게 늘어날 수밖에 없어 이러한 전략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재판장들의 공직선거법 제270조를 강행규정이 아닌 일종의 훈시 규정 정도로 치부하는 점에서 270조 자체가 이미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생각에 관심이 간다.

선거사범(PG) ©연합뉴스


2022년 6월 치러진 지선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에 섰으나 대부분 살아난 사례(전북 중심)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에 섰던 전북의 정헌율 익산시장, 강임준 군산시장, 최경식 남원시장, 이학수 정읍시장 등 4인의 단체장이 무죄를 선고받거나,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만원 이하의 형을 선고받아 단체장 직을 유지하게 됐다.​
정헌율 익산시장의 경우 선거 운동 기간 중 열린 TV 토론회에서 민간공원 특례 사업 협약서 등에 ‘초과수익 환수 규정’이 있다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23년 2월 14일 판결을 통해 ‘정 후보가 토론회의 주제 또는 맥락과 관련 없이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학력을 잘못 표기해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최경식 남원시장은 1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아 시장직을 유지했다.
​최 시장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전북 한 대학에서 소방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선거 명함 등에는 소방행정학 박사로 표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전주지법 남원지원은 23년 1월 19일 후보자의 학력의 경우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되지만, 최 시장의 행위가 유권자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볼 수는 없다며 벌금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 전 A의원에게 선거를 도와달라며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2심에 이어 23년 9월 7일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1·2심 재판부는 금품을 받은 날짜나 상황 등 A의원의 진술 내용에 일관성이 없어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는데,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1·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아 벼랑 끝 위기에 내몰렸던 이학수 정읍시장은 24년 10월 31일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로 돌려보내면서 기사회생했다.
​대법원은 ‘TV 토론회에서는 상대 후보가 이를 반박하거나 해명할 기회가 주어진 상태였다’며 ‘이 시장이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문제가 된 표현들은 전체적으로 ‘의견의 표명’에 해당한다’며, ‘진실에 반하거나 과장된 일부 표현을 근거로 허위사실공표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까지 4가지 사례는 ‘시련은 있되 낙마는 없다’는 기막힌 풍자가 맞아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서거석 전북 특별자치도 교육감은 상대 후보가 제기한 ‘동료 교수 폭행 의혹’에 대해 방송 토론회 등에서 ‘폭력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은 벌써 30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전북의 단체장 선거에서 당선된 후 법정에 섰던 4명의 기초자치단체장은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으로 단체장 직을 유지했다. 하지만 서거석 교육감은 23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오는 25년 1월 2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어서 어떤 결과가 나오던 3심인 대법원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또한 이미 30개월을 초과한 시점에서 임기 4년이 넘어서야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이 많다.

전북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제270조 사문화 관련 폐해 사례
재판을 진행 중인 단체장 입장에서는 자신의 앞으로 행로가 불안해 어떤 ‘안전욕구’나 ‘보상심리’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시각에사 바라보면서 거론하고 싶다.
지적하고 싶지 않은 사례지만 가장 큰 폐단으로 들 수 있는 첫 번째 사례는 재판을 받고 있는 단체장(당선자)의 선거조직에 몸담았던 인사들의 지자체 내 침투를 통한 점령군과도 같은 조직 장악을 획책하며 발생하는 인사 전횡, 같은 인사들의 지자체 사업·공사·용역 등 독점, 평소 친한 인사들로 이뤄진 사업 카르텔이다. 이는 재선, 3선을 노리는 소위 주군(단체장)을 위한 총알(선거자금) 마련을 위한 극성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인 배타적 행동이다.
둘째, 이러한 비정상적 사업과 인사로 인한 올바른 행정이 진행되지 않아 행정 공백을 초래하는 일이다. 선거 운동 당시 부르짖고 외쳤던 선거 공약이나 비전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을 할수가 없다는 말이다.
셋째, 특수시책 시행, 예를 들면 2차전지업체 유치, 투자유치, 예산 확보 등 치열한 경쟁 끝에 이루어지는 정책 추진이 과연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까? 비전문가, 캠프 요원 등이 외국기업 유치, 첨단산업 유치 등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경제성장률이나 인구 유입 정책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발전이 아닌 후퇴로 시민들의 행정에 대한 피로감이 극대화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폐해에 대해 대책까지 논의치 않겠지만, 이미 우리 국민의 머릿속이나 단체장들의 머릿속, 그리고 국회의원, 지자체 의원들은 그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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