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인문학] 춤추는 오렌지

편집부 승인 2024.08.06 14:55 의견 0
2018년 김향란_전시작품


[시사의창 2024년 8월호=김향란 칼럼니스트] 화가에게 있어 색은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름만 떠올려도 연상되는 색이 있을 만큼, 화풍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보여지는 것이 바로 색이다. 아울러 단색 뿐만 아니라 어울리는 색과의 조합 또한 매우 중요하기에 많은 작가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자기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표현한다. 강렬한 태양을 주의깊게 보았던 반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질감을 부여하는 임페스토 기법을 통해 조각하듯 작렬하는 태양을, 사이프러스 나무를, 초목을 그려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좋은 색은 노래하는 색이야. 멜로디가 울리고 향기가 나야 해”, “색이 푹 삶아져서 흐물흐물하면 못 써”, “색은 집의 기초인 바닥, 벽, 들보, 공간이야. 그것들이 모여서 한 채의 집이 되지” 등 제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색에 대한 철학을 반복하곤 했다고 한다. 색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감각적인 사고와 구성력, 그리고 색을 건축에 비유한 그의 깊은 사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거 마티스는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색에 대해서만큼은 남다른 시선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의 고유색을 지니고 있다. 바나나는 노란색, 오렌지는 주황색, 수박은 초록색이다. 그러나 마티스는 왜 그런 색을 가져야 하는지 늘 의문을 품었고, 사물의 고유색을 본질로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자연을 모방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창의적 표현을 통해 그가 보는 자연을 연출하였다.

2017년 파리 메종오브제 출품작 촬영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그의 시에서 ‘오렌지가 춤춘다’라고 표현한 도전적인 구절을 썼다. 그는 심지어 악기를 약동하게 만드는 오렌지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인상주의 화가,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색을 단순히 자연의 모방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강렬한 감정과 상징을 담을 수 있는 도구로 여겼다. 그의 작품에서 오렌지는 생명력과 활력을 상징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색의 본질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색은 종종 음악과도 함께 회자된다. 뉘앙스나 톤이라는 단어는 음악에서 흔히 사용되듯, 색에서도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드를 나타낸다. 말 역시 허스키하다, 맑다, 투명하다, 청량하다, 진하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소리와 색의 표현이 같은 줄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음색(音色)과 색조(色調), 즉 음이 갖는 특색과 색의 강약이 되는 명도와 채도의 복합 개념은 같은 기본을 가지고 있다. 소리와 색이 파장에 의해 전달되는 원리가 같은 이치이다.

오렌지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색에 비해 역동적인 힘이 매우 강하다. 건강함을 상징하고, 발랄하며 쾌할한 기운이 많은 색으로 이보다 좋은 색은 없을 것이다. 그 건강함 때문에 오렌지는 음악으로도 좋은 영감을 주며, 공간 안에서는 활기찬 에너지를 듬뿍 뿜어내는 에너제틱한 색으로서 스포츠에서도 빼놓을 수 있는 영역으로 사용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추듯 살랑거리는 때론 격한 몸짓으로 온 공간을 휘저으며 열정을 뿜어내는 색, 오렌지!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렌지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때문이리라. 오렌지를 나타내는 다양한 이름들이 있으나 오렌지 자체만으로 색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오렌지는 트렌디하다. 모든 색이 그러하듯 계절마다 색이 품고 있는 뉘앙스가 다르다. 봄은 좀더 가볍고 싱그럽다. 여름은 콘트라스트가 강하며, 가을은 부드럽고 풍성하며, 겨울은 무겁다. 트렌디하게 연출하는 오렌지는 이러한 계절의 특성에 따라 풍성한 표정을 낼 줄 아는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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