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기관장 회의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박지향에게 “환빠 논쟁을 아냐?”는 질의를 하며 “동북아 역사재단은 고대사 연구를 안 합니까?“ 라고 물어본 것이 논란이 되어 80~90년대를 풍미하였던 환단고기 논쟁이 소환되었다. 이에 한겨레 신문에서는 우려한다는 기사가 실리고 여러 신문에서 국가의 리더가 위서로 확실시되는 환단고기의 역사관을 믿는 것은 잘못된 역사관을 퍼뜨릴 수도 있다고 비판하였다. ‘80년도 이정빈 소설 ‘단’의 열풍에 이어 단군조선 이전의 국가 배달국과 인류 시원의 큰 나라 환국의 주도 세력이 한민족이라는 역사서 환단고기의 등장은 그야말로 국뽕이 차오르는 일대 사건이었다. 환단고기의 기세는 20여 년이 지나면서 꺾이기 시작하였다. 환단고기가 위서이며 환단고기를 믿는 이들을 환빠, 국뽕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첫째, 옛 문헌 삼성기 상하, 단군세기, 북부여사, 태백일사를 엮은 환단고기의 저자 계연수가 실존 인물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둘째, 일 제국주의가 서양 산업선진국의 정치. 사회 용어들을 번역한 근대 한자 용어를 사용한다. 셋째, 서지학적으로 원본이 없고 환단고기를 전한 이유립의 전력이 의심스럽다. 대종교의 영향을 받은 태백교의 교주로서 고성이씨 가계의 성스러움과 정통성을 위한 위작이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환단고기를 땅에 묻고 밟아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과연 환단고기라는 역사서가 그렇게 매장당해야 마땅한 역사서인가? ‘환단고기 위서 열풍 시대’에 찬물을 부어가며 냉정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 부처 업무보고 발언 모습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6년 1월호=민관홍 궁 해설사] 대통령 질문의 의미는?
경복궁 근정전의 근정은 일국의 최고 지도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정사를 하고, 왜 일하는지 그 일하는 바도 알아야 한다며 과로사로 순직할 정도의 노동강도를 요구하고 있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이에 부합하는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동북아 역사재단의 박지향 이사장의 발언(지금 한국인의 수준은 1940년도 영국인의 수준보다 못하다.)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고, 동북아 역사재단이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단체인데 그 성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성과가 없는 것뿐 아니라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다는 일제 역사학자의 연구 답습, 임나 일본부에 대한 연구, 동북아역사 재단이 제시한 지도에 독도를 표기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질책성으로 물어봤을 것이다.
거기에 요동, 만주, 산동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 세형동검 발견지에서의 역사적 관계, 홍산 문화의 석기문화에서 발견되는 국가 형성의 가능성과 홍산 문화와 단군조선 혹은 그 윗대의 국가와 연결되는 연구도 되었으면 하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발언이 그 의미와 상관없이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의 신봉자인 것처럼 과도한 비판을 하고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 책 표지


환빠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환단고기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
환단고기는 단군조선 이전에도 왕조로 배달국이 있고 그 이전에는 환인이 다스리는 환국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단군조선을 곰과 호랑이의 마늘(달래)과 쑥의 신화로 배웠기 때문에 단군이 왕조였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이전에 배달국과 환국이 있었다는 역사는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황당하고 밝혀진 바도 검증될 어떤 것도 없다면 일단 없는 것으로 하자. 그렇다고 역사 연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위만조선 이전에 고조선과 위만조선 멸망 이후 고조선 유민은 위만조선의 유민인가? 단군조선의 유민인가? 흉노에 망명한 한나라 노관의 부하 위만이 접수한 위만조선의 유민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우리는 위만의 후손인가?
이런 의문이 드는 한국 역사의 제문제에 대해 우리는 연구할 수 있는 모든 역사 자료는 다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환단고기에는 단군세기가 있는데 단군조선의 역대 왕과 일들을 간략히 정리해 놓은 것이다. 단군조선의 역대 왕을 정리한 역사서로는 단기고사와 규원사화가 있다.
여기에 있는 천문기록을 천문학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연구하여 발간한 책이 서울대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2002.11. 김영사)이다. 이 책에 의하면 천문현상을 조작하여 정확하게 기록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천문기록의 정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중국사서의 기록을 베꼈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일축하였다.
필자는 이 책을 처음 접하였을 때 감동하였다. 우리나라도 각 부문에서 역사와 접점을 찾는 학자들이 등장하여 제대로 된 역사를 복원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들이 많아지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은 오산이었다. 천문학자의 고대사 복원에 등장한 과학적 연구에 감동하여 2002년에도 그가 어려움을 토로하던 내용은 잊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사실 지금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행해질 만한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경계 학문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가 몸담을 기관이 거의 없으며, 이 분야에 대한 정부의 학술지원도 극히 인색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천문학계나 역사학계에서도, 심지어 과학사학계에서도 이 분야를 해당 학문 분야로 인정하는데 여전히 높은 벽이 존재한다. 이 분야의 연구를 한낱 시간 낭비나 학문적 외도에 불과하다고 보는 주위의 시선 속에서 극소수 학자들이 취미 삼아 연구를 해야 하는 처지이다. 이 분야 연구는 학술적 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도태를 걱정하는 현실이다. 이 분야를 지원하는 소수의 학생이 대견하면서도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든다.”
2002년 11월 그의 저서를 보면, 역사 관련 학문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했으며 2026년 1월 우리 역사와 관련된 천문역사 후속 연구의 흔적이 없다. 그 후학도들의 역사 연구 흔적도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뉴라이트가 장악한 정부 산하 역사 관련 기관 ⓒ 민족문제연구소


뉴라이트 역사관 그들의 카르텔
우리는 누가 만든 한국사를 배우고 있는가?

3.1운동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 편찬할 필요성이 있었다. 일제는 이에 부합하기 위해 조선의 역사를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에 기반을 두고 조선사편수회라는 단체를 1925년 6월 8일 만들었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총독부 직속기관이 되어 회장은 조선총독부 정무 총감이 맡고 을사오적 이완용, 권중현, 변절자 박영효는 고문, 최남선, 이능화는 위원으로 홍희와 신석호는 수사관, 이병도는 수사관 보로 참여하였다.
일본 실증주의 역사학의 태두인 이마니시 류(삼국사기 조작, 광개토대왕비, 점제현신사비, 모두루비의 비문조작등 황국 식민사관의 수장)가 이병도를 수사관 보로 임명하였다.
이병도는 이완용의 친척 조카로 치밀한 황국사관 이론가인 쓰다 소키치(신공황후 삼한정벌, 임나일본부 설치, 삼국사기 초기 불신론)를 만나 역사 전공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병도를 조선사 편수회에 소개한 사람은 이케우치 히로시(삼국사기 불신론) 동경제국대 교수였다. 이병도에게 영향을 준 스승들은 모두 일제 식민사관을 창안하고 체계화한 인물들이었다.
신석호는 1929년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조선사 편수회에 들어가서 1937년 수사관으로 진급하고 해방될 때까지 일제의 식민사관에 충실한 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민족정신을 말살하는 식민사관 이론의 충실한 주구노릇을 하던 이병도, 신석호는 해방 이후 친일파로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반민특위가 와해되자 ‘국사의 제문제’를 연구하는 이승만의 찬양자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친일 행위 단죄의 대상자가 항일 의병사, 독립운동사 등을 연구 발간하고 국가유공자 선정을 하는 수장이 되었으며, 박정희의 찬양자로 변신하였다. 이병도, 신석호는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역사학도를 양성하는 역사학계의 절대적 권위자로 자리를 잡고, 그들의 후예들이 한국 역사학계를 그들만의 굳건한 카르텔로 장악하였다.
그들은 일제 관변학자의 민족 말살 식민사학의 계승자로 단군을 단순한 전설로 만들고, 한사군의 위치는 한반도 내로, 만리장성의 동단은 황해도 수안군으로 비정, 임나 일본부에 대한 연구 등 지금도 학계에 논란이 일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식민사관이 청산되지 못한 역사 교과서를 배워왔다. 디지털의 발달은 일반 연구자들도 문헌학적 접근이 쉬워져서 기득권 역사학자들이 놀랄만한 연구와 연구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의 기득권자들은 그들을 유사 사학, 유사 사학자로 매도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역사학계의 진보적 인사들이 다른 분야의 친일파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성토하면서 정작 내부의 이병도, 신석호와 그들의 후예들에게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이유이다.
이들은 친일 행위 단죄라는 민족적 과제를 역사학 권력의 계승이라는 사적 이익으로 전환하여 파벌과 인맥과 친분 앞에서 식민사관 청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사학계의 공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학계의 문제가 청산되지 않고 오는 동안 ‘일제강점기가 한국에 축복이었다’는 새로운 해석과 연구들이 각계각층에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명박 정권에서 태동된 뉴라이트는 사회 각 부문에서 암약하다가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국가와 민족의 정신에 관련된 국가기관의 기관장으로 임명되어 일제강점기 찬양의 스피커를 높이 들고 있다.
그림표에 있는 기관장 외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내란수괴 윤석열의 인권을 존중하고 여성을 폄하, 성희롱 발언)과 김용원 위원(헌재 탄핵 인용시 부수자. 는 SNS 기록) 독립기념관장 김형석(광복절이 건국절이며 해방은 연합국의 선물이라고 발언) 등이 있다. 이들의 역사 인식은 일베나 펨코의 10~ 20대의 친일 역사 인식, 약자 혐오와 강자에 공감, 여성 혐오 인식, 군사쿠데타 전땅크의 마초 동경, 군부독재 찬양, 인권 의식 결여 등과 상당 부분 겹쳐진다. 이들은 왜곡된 역사 인식과 사회적 슬픔에 공감 능력이 없는 짝퉁 보수진영의 사이버 정책과 결합되며 오늘의 지경에 이르렀다.

종묘 앞 고층건물 허용을 두고 서울시와 정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나오는 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삼황오제의 신화, 그리스 로마신화, 구약성서, 신약성서, 불경, 이슬람교에서 보이는 수많은 이적과 신화, 전설의 전승들이 비현실적이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역사와 경전 전체를 부정할 수 있는가?
환단고기가 우리가 배워온 역사와 다르고 12환국의 서사가 황당하다고 환단고기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은 역사의 가는 실타래를 우리 스스로 싹둑 잘라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환단고기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표면적인 흠결뿐 아니라 없는 흠결도 창작하여 위서라고 비판을 하고 있다. 환단고기도 문헌학적으로 교차검증하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언급만 해도 환빠, 국뽕이라는 수백만 발의 화살이 내리 꽂힌다.
환단고기 자체가 위서인지 진서인지가 문제가 아니다. 수박 겉 핥기로 환단고기를 읽거나 한 번도 읽어 보지 않고 환단고기를 매장하려는 강단사학 기득권자들의 주장에 기대거나 난 환빠나 국뽕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인지?
지식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에 떠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해방 이후 일본 식민학자가 만들어 놓은 덫을 제거하지 않고 그 덫을 공고히 하는 동안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10~20대의 사이버 놀이문화와 짝퉁 보수당의 사이버 정책과 결합하여 대한민국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있다.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의 일제강점기가 축복이였다. 는 주장은 ‘학문연구의 다양성’이라 말하면서 환단고기의 대통령 발언에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더 심한 말로 비판하려는 현상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경구를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발언에 대한 논란에는 교훈으로 삼을 수 없는지? 통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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