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지상파 방송사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6년 1월호=김문교 시사칼럼니스트] 한때 지상파 방송은 대한민국 공론장의 심장이었다. 밤 9시 뉴스는 온 국민이 동시에 숨을 고르던 시간이었다. 지상파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곧 ‘국민의 눈’이었고, 지상파의 편성표는 ‘국가의 시간표’처럼 대접받았다.
그러나 지금, 시청률 0%대라는 참담한 숫자는 마치 부도난 기업의 잔고처럼 비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송, 전파를 송출하고 있지만, 그 전파를 받는 이는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지상파의 현실이다.

몰락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다… 내부의 자기부정이 먼저였다
OTT의 성장? 유튜브의 폭주? 물론 외부 환경은 달라졌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지상파는 스스로를 버렸다. 변화를 두려워했고, 혁신을 미뤘고, 기득권의 사다리를 끌어안고 스스로 공룡이 되어 갔다.
시청자와의 대화는 사라졌고, 행정·관료적 조직문화는 그대로 유지됐으며, 창의 대신 순응, 실험 대신 관성만이 남았다. “이렇게 해왔으니 앞으로도 이렇게”라는 한 문장이 지상파를 무덤으로 데려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시청률 0%를 만들었는가
시청자들은 떠난 게 아니다. 떠나게 만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뉴스, 청년의 언어를 모르는 예능,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편성, 공적 가치보다 이해관계에 더 민감한 경영, 지상파의 몰락은 시청자의 배신이 아니라 지상파의 직무유기였다.

공영의 이름으로 공영을 잃다
공영방송이 ‘권력 감시’라는 본분을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공영방송이 ‘시민의 눈’이 아니라 ‘권력의 입’이 되면 그 순간부터 방송은 더 이상 존재 의미를 잃는다. 지상파 시청률이 바닥을 빠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신뢰를 잃은 언론은 좋은 장비를 가져도, 빛나는 스튜디오를 지어도 이미 껍데기뿐인 조직이다.

미디아 생태계는 앞으로도 변한다… 그러나 지상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법이다. 하지만 지상파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OTT는 시청자를 실험의 주체로 삼았다. 유튜브는 제작자에게 무한한 자유를 줬다. 그러나 지상파는 여전히 “이 시간대는 이런 포맷, 이런 분위기, 이런 틀”이라는 30년 전의 표준을 붙잡고 있었다.

지상파가 살아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관성적인 조직, 공영을 가장한 정치성, 시청자를 가르치려는 태도, ‘우리가 만든 것이면 다 본다’는 오만, 혁신을 가로막는 관료주의, 지상파의 구원은 시청자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시청자가 손을 내밀기 위해서는 지상파가 먼저 진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시 묻는다, “지상파는 왜 존재하는가?”
지상파는 여전히 공적 자원을 이용해 방송한다. 그러나 공적 책무는 다하고 있는가? 국민의 시간을 점유할 가치가 있는가? 시민의 눈과 귀를 맡길 만큼 신뢰받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시청률 0%는 일시적 숫자가 아니라 종말의 서막이다.
지상파의 몰락은 기술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시민에게 필요한 방송’이라는 존재 이유를 버렸기 때문이다. 존재 이유를 잃은 방송국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존재의 재정립이다. 지상파가 다시 일어서려면 과거의 영광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시청자를 바라봐야 한다.
그 첫 문장은 이렇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방송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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