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거시경제 지표와 문화적 현상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거대한 역설을 가리키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폭발적인 진화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 코딩 등 지적 노동의 결과물을 무한에 가깝게 복제하고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을 인류에게 부여했다. 맥킨지(McKinsey)의 ‘2025 AI 현황 보고서’가 지적하듯, 기업들은 화이트칼라 직무에서 AI 도입을 통해 실질적인 비용 절감을 실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효율성 증대는 제조 및 유통 전반에 걸쳐 연간 소비자물가지수(CPI)를 0.5~0.7%포인트 낮추는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지능(Intelligence)’의 한계비용이 0으로 수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매끄럽고 효율적인 디지털 풍요의 이면에서, 기이한 경제적 지각 변동이 관측된다. 가장 디지털 친화적인 세대라 불리는 Z세대(Gen Z)와 알파 세대(Gen Alpha)가 ‘불편함’과 ‘결핍’을 찾아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1초면 전송되는 메신저 대신 1년 뒤에나 도착하는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무한한 음원이 존재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잡음이 섞인 LP(Vinyl) 판을 턴테이블에 올린다. 서울 성수동의 팝업 스토어 앞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수백 미터의 줄이 늘어서고, 독립 서점 주인장은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는 ‘나만의 책’을 손님에게 건넨다.
본 칼럼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레트로(Retro) 유행이나 일시적인 향수로 치부하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는 ‘인간성(Humanity)의 프리미엄화’라는 거시경제적 구조 전환의 신호탄이다. AI가 완벽함(Perfection)을 대량 생산할 때, 인간의 불완전함(Imperfection)은 희소성(Scarcity)을 획득하며 사치재가 된다. 본 칼럼은 현재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관측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복제할 수 없는 ‘진짜(Authenticity)’의 가치를 심층 분석하고, 이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개인과 기업의 전략적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한다.
[시사의창 2026년 1월호=김세전 시사의창 전략사업부 대표] 결핍의 경제학…‘인간’이 사치재가 되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능’이 가장 비싼 자원이라고 믿어왔다. 변호사의 법률적 판단, 의사의 진단, 개발자의 코딩 능력, 컨설턴트의 시장 분석은 높은 임금으로 보상받았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이 믿음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생성형 AI의 도입으로 화이트칼라 직군에서의 생산성 향상은 가시화되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해당 기술의 시장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미국의 투자 자문사들은 AI 기반의 물류 최적화와 예측 분석이 운송 및 폐기물 비용을 5~12% 절감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는 제조업과 소매업 전반에 걸쳐 효율성을 높이는 ‘좋은 디플레이션(Good Deflation)’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인간 노동의 단가를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IMF의 2024년 기술 전망에 따르면, AI 주도의 생산성 향상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동시에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디지털 노동력(AI Agents)의 확장은 산출량을 늘리지만, 인간 노동 소득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는 ‘풍요의 역설’을 초래한다. 2035년까지 AI가 미국 경제 생산성 성장의 60~7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은,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임금이나 고용 수준에 연동되지 않고 에너지, 대역폭, 연산(Compute) 비용에 연동될 것임을 시사한다. 즉, ‘평범한 지적 노동’은 더 이상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누구나 AI를 통해 평균 이상의 작문, 코딩,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평균적인 지능’은 ‘무료’에 가까워졌다.
반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콘 페리(Korn Ferry)의 연구에 따르면, 향후 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인적 자본(Human Capital)의 가치는 약 1,200조 달러(약 1.6경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재고, 부동산, 기술과 같은 물적 자본 가치(약 521조 달러)의 2.33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을 운용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인간의 역량이 더욱 귀해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가치 이동은 서비스 산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휴먼 터치(Human Touch)’는 이제 프리미엄 서비스의 척도가 되었다. 2025년 글로벌 여행 트렌드에서 럭셔리 여행객들은 AI 챗봇의 즉각적인 응답 대신, 자신의 미묘한 취향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인간 여행 상담사’를 찾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익스피디아(Expedia)와 같은 여행 플랫폼들은 AI를 도입하면서도, 프리미엄 서비스 영역에서는 인간 상담원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마스터카드(Mastercard)와 같은 브랜드는 시각과 청각을 넘어선 다감각적 경험(Multisensory experiences)을 통해 소비자와의 정서적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화면 너머의 차가운 효율성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전략이다.
딥페이크와 AI 생성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진실성(Authenticity)’에 대한 갈증이 폭발했다. 어도비(Adobe)의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의 93%가 콘텐츠의 생성 과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71%는 AI로 인해 콘텐츠를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AI가 쓴 매끄러운 글보다, 다소 투박하더라도 인간의 땀과 고민이 묻어나는 결과물이 더 높은 신뢰를 얻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마케팅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소비자의 90%는 브랜드를 선택할 때 진정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으며, AI가 생성한 가상의 인플루언서보다는 실제 소비자의 목소리(UGC)를 훨씬 더 신뢰한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AI를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장인정신(Craftsmanship)과 같은 인간 고유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브랜드의 아우라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2025년의 경제학은 ‘예측 가능한 것(AI)’의 가격 하락과 ‘예측 불가능한 감동(인간)’의 가격 상승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철학적 방어…불완전함은 생존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인 것에 끌리는가?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 AI 시대에 인간 존재의 의의를 찾으려는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몸부림이다.
TED 강연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워싱턴대 최예진 교수는 AI가 엄청난 지능(IQ)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멍청한(Shockingly Stupid) 실수를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거대 언어 모델(LLM)은 확률적으로 단어를 조합하여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지만, 그 단어가 가진 사회적 맥락이나 도덕적 무게, 즉 ‘상식’을 온전히 체화하지 못한다. 최 교수는 이를 “지능의 암흑 물질(Dark Matter of Intelligence)”에 비유한다. 인간의 상식은 수만 년의 진화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의 총체이며, 이는 텍스트 데이터만으로는 온전히 학습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판단력과 도덕적 직관, 그리고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최후의 보루로 남는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기술이 완벽을 지향할수록,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인간의 가치가 있다”고 역설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우주에서 생명체가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경이로움이며, 인간은 실수하고 방황하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독창성을 발휘한다. AI는 ‘정답’을 찾도록 설계되었지만, 예술과 혁신은 종종 ‘오답’과 ‘일탈’에서 탄생한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 역시 인간과 AI의 공존에 대해 통찰을 제시한다. 그는 AI를 ‘새로운 지적 종(New Intellectual Species)’으로 규정하며, AI에게 인간의 규범과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도구로써 기능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이젤 카메론(Nigel Cameron)의 말처럼, ‘적어도 일부 인간의 심장은 항상 우리의 불완전함의 가치에 끌릴 것’이다. 4K 디지털 영상보다 필름 카메라의 거친 입자(Grain)가 더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 불완전함이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이 AI의 판단을 때로는 인간의 판단보다 더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예: 대출 거절)이 내려졌을 때 사람들은 인간보다 AI가 내린 결정을 더 공정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AI가 ‘감정이 없다(Unemotionality)’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Human-in-the-Loop)을 강력히 원한다. 이는 우리가 AI의 객관성을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이해해줄 ‘주관적 공감’을 갈구하는 이중적인 존재임을 시사한다.
Z세대의 반란…디지털 네이티브, 아날로그에 투항
가장 디지털 친화적인 세대인 Z세대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의 부활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에게 디지털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공기’와 같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연결로 인한 피로와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수동적인 디지털 해독(Detox)을 넘어, 능동적으로 물리적 실체(Physicality)를 찾아 나서고 있다.
음악 산업에서 LP의 부활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았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LP 매출은 18년 연속 성장을 기록했다. 스트리밍이 전체 매출의 69%를 차지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물리적 음반 시장의 하락세 속에서도 LP만은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특히 한국 시장의 데이터는 매우 흥미롭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음악 시장으로 성장했으며, YES24 데이터에 따르면 LP 구매자의 70% 이상이 40대 이하, 즉 MZ세대다. 이들은 턴테이블이 없어도 LP를 산다. LP는 음악을 듣는 도구를 넘어, 아티스트와의 물리적 연결 고리이자 인테리어 소품, 그리고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는 ‘굿즈’로서 소비된다. 미국 시장에서도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앨범 판매가 LP 매출을 견인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서울 성수동과 서촌 등지에서는 고가의 빈티지 스피커와 앰프를 갖춘 ‘리스닝 바(Listening Bar)’가 성행하고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대화조차 자제하는’ 이 공간들은, 무한한 선택지가 주는 스트리밍의 피로감에서 벗어나 누군가가 큐레이션 해준 음악에 온전히 몰입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터넷 기능이 없는 ‘덤폰’이나 ‘폴더폰’을 찾는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스마트폰 의존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은 스마트폰 중독 점수가 31.62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Z세대는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되찾기 위해 레트로 폰을 구매한다.
이는 단순한 힙(Hip)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주체적인 ‘디지털 망명’의 일환이다. 실제로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으며, 이는 2022년 대비 2025년에 18% 증가한 수치다. 또한, ‘디지털 디톡스 관광(Digital Detox Tourism)’ 시장은 2025년 약 6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2034년까지 연평균 24.5%의 고성장이 예견된다. 이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기기를 끄는 것을 넘어, 강제적으로라도 디지털과 단절된 환경을 구매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수동의 공간 경제학…아날로그 트렌드의 물리적 거점
서울 성수동은 이러한 ‘아날로그 트렌드’가 집약된 거대한 실험실이다. 타임아웃(Time Out)이 ‘세계에서 4번째로 쿨한 동네’로 선정한 이곳은 낡은 공장 지대와 최첨단 팝업 스토어가 공존하며 독특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수억 화소를 자랑하는 시대에, 성수동의 젊은이들은 한 번 찍으면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코닥(Kodak)’ 일회용 카메라를 산다. 코닥 어패럴(Kodak Apparel)의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는 빈티지한 아메리칸 감성을 내세워 2023년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하며 패션과 아날로그 감성의 결합을 증명했다. 이곳에서 소비되는 것은 단순한 카메라나 옷이 아니다. ‘불편함’은 이제 ‘과정의 즐거움’으로 재해석된다. 사진이 인화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AI가 제공하는 즉각적인 결과물(Zero-click)과는 정반대의 가치, 즉 ‘기다림의 미학’을 제공한다.
‘올리브영N 성수’와 같은 대형 팝업 스토어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1,400평 규모의 이 공간은 퍼스널 컬러 진단, 메이크업 시연, 홈케어 클래스 등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한 경험’으로 채워져 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 클릭 한 번으로 살 수 있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 수 시간을 기다린다. 한 트렌드 분석가는 이를 두고 “현대판 럭셔리는 ‘실시간(Real-time)’에 있다”고 정의했다. 지금, 이 장소에 있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희소성이야말로 디지털 복제가 불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팔란티어(Palantir), 레노버(Lenovo)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조차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가장 아날로그적인 공간인 성수동을 선택하여 팝업을 여는 것은 이러한 공간의 힘을 방증한다.
비효율의 비즈니스 모델…마찰(Friction)이 돈이 된다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은 ‘마찰 제거(Frictionless)’가 핵심이었다. 아마존의 원클릭 결제, 우버의 자동 배차 등은 고객의 수고를 덜어주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의도된 비효율’과 ‘불편한 마찰’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서울의 ‘널담은공간(Nuldam Space)’은 이 트렌드의 정점에 있다. 이곳은 방문객이 미래의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실링 왁스로 봉인하여 원하는 날짜(주로 1년 뒤)에 발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보내는 즉시 소비되고 휘발된다. 그러나 1년 뒤에 도착하는 편지는 쓰는 순간부터 도착하는 순간까지 긴 시간 동안 발신자의 마음속에 머문다. 이는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최악의 통신 수단이지만, 감정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최고의 수단이 된다.
이 공간에서 방문객들은 펜을 들고 종이에 잉크를 묻히고, 뜨거운 왁스를 녹여 봉투를 밀봉하는 일련의 물리적 의식(Ritual)을 수행한다. 이러한 과정은 디지털 기기가 줄 수 없는 촉각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카페 ‘널담’의 모델은 싱가포르 등 해외로 진출하며, 디지털 피로감을 느끼는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수출하고 있다. 이는 ‘편지’라는 가장 고전적인 매체가 현대적인 체험형 콘텐츠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트렌드는 기록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닌, 자기표현과 치유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온라인 플랫폼 29CM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초 문구 및 사무용품 거래액은 전년 대비 75% 급증했으며, 특히 프리미엄 만년필과 고급 노트의 판매량은 2.4배나 늘었다.
성수동의 문구 편집숍 ‘포인트 오브 뷰(Point of View)’는 문구를 ‘창작의 도구’로 정의하며, 마치 갤러리처럼 제품을 전시한다. 김재원 대표는 문구점을 “‘어른들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이곳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영감’을 파는 곳으로 인식된다”고 했다.
AI가 몇 초 만에 일기를 써주는 시대에, 사람들은 굳이 비싼 펜과 노트를 사서 손수 일기를 쓴다. 이는 결과물보다 ‘쓰는 행위 자체’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소비하는 것이다.
큐레이션의 르네상스…알고리즘을 넘어선 ‘안목’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가뒀다. 알고리즘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보여주기 때문에,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의 기쁨을 앗아간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의 안목’이 들어간 큐레이션이 부상하고 있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은 베스트셀러와 AI 추천 도서를 전면에 배치한다. 그러나 독립 서점들은 주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책을 배열한다. 서대문구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나 ‘책방 연희’ 같은 곳들은 책마다 주인이 직접 쓴 추천사가 적힌 메모를 붙여둔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서점 주인과 독자 간의 정서적 대화다. 방문객은 알고리즘이 분석한 ‘데이터’로서가 아니라, 취향을 공유하는 ‘인격체’로서 대우받는다.
어떤 책인지 표지를 가리고 키워드만 보여주는 ‘블라인드 북’이나, 책과 함께 와인, 스낵을 제공하는 ‘룸 서비스’ 패키지 등은 책을 구매하는 행위를 일종의 이벤트로 격상시킨다. 2025년 ‘독립서점의 날(Independent Bookstore Day)’ 행사가 역대급 관심을 받은 것은, 알고리즘이 복제할 수 없는 ‘지역 커뮤니티’와 ‘인간적 큐레이션’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여행 산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2025년, 여행객들은 AI 플래너가 짜준 최적의 경로보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인간 에이전트의 ‘살아있는 조언’을 원한다. 익스피디아(Expedia) 등의 데이터에 따르면 여행객들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진정성 있는 경험을 원하며, 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비즈니스 컨설팅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AI가 일반적인 전략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인간 컨설턴트의 ‘전략적 통찰’과 ‘책임감’의 가치가 상승했다. 한 카페 주인이 챗GPT의 조언만 믿고 고가 커피 머신을 도입했다가 실패한 사례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AI 조언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AI는 정보를 주지만, 인간은 결정을 돕는다’는 명제가 컨설팅 시장의 새로운 규칙이 되고 있다.
미래 전망…‘켄타우로스’ 경제의 도래와 생존 전략
2030년을 향해 가는 지금, 우리는 AI를 거부할 수도, AI에 종속될 수도 없다. 생존의 열쇠는 AI의 효율성과 인간의 진정성을 결합하는 ‘켄타우로스(Centaur) 전략’에 있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트렌드 코리아 팀은 2026년의 핵심 키워드로 ‘말의 힘(HORSE POWER)’을 제시하며, 그 첫 번째 트렌드로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를 꼽을 전망이다. 이는 AI가 모든 것을 자동화하더라도, 최종적인 의사결정과 가치 판단, 그리고 감정적 터치는 반드시 인간이 개입해야 함을 의미한다.
맥킨지 보고서 역시 미래의 업무가 사람, AI 에이전트, 로봇 간의 파트너십이 될 것이라 예견한다. 여기서 인간의 역할은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AI가 내놓은 답의 ‘윤리적, 맥락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으로 이동한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창의성, 공감, 윤리적 판단과 같은 고차원적인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필코노미(Feelconomy)'다. 소비가 단순한 필요 충족을 넘어, 감정적 만족을 위한 행위로 변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는 앞서 살펴본 아날로그 트렌드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1.5인 가구’의 부상은, 혼자 살지만(1인 가구), 취향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관계(0.5)를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 독립 서점이나 LP 바, 취향 기반의 커뮤니티가 이러한 1.5인 가구의 거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럭셔리는 ‘핸드메이드(Handmade)’를 넘어 ‘휴먼메이드(Human-made)’가 될 것이다. ‘이 제품은 AI를 사용하지 않고 100% 인간이 기획하고 제작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최고의 마케팅 포인트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No-AI’ 마크는 현재의 ‘유기농(Organic)’ 마크처럼 프리미엄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기업은 AI를 통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되(Back-end), 고객과의 접점(Front-end)에서는 인간적인 온기를 극대화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진짜(Authentic)가 되라, 그것이 유일한 경쟁력이다
AI가 모든 것을 흉내 낼 수 있는 시대에, 흉내 낼 수 없는 유일한 것은 ‘나만의 고유한 서사(Narrative)’와 ‘진짜 관계(Relationship)’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할 뿐, 고통을 느끼거나 기쁨에 전율하지 못한다.
우리가 성수동의 줄 선 가게에서, 지직거리는 LP 판에서, 삐뚤빼뚤한 손편지에서 느끼는 감동은 바로 그 ‘살아있음’의 증거다.
2026년, 그리고 그 이후의 미래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인 것’이 되는 역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진짜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이 거대한 파도 위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기술은 차갑게 쓰되, 그 끝은 반드시 사람을 향해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의 유일하고도 확실한 생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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