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칠흑의 어둠을 뚫고 현관 앞에 당도한 프레시백은 우리에게는 일종의 ‘구원’의 강림이다. 클릭 한 번, 태핑 한 번이면 필요한 모든 물품이 내 눈앞에 도착해 있는 마법. 우리는 이 달콤한 마취에서 깨어나는 법을 잊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이 신비한 풍요와 편익은 누구의 피와 땀으로 제공되는 것일까?”
쿠팡(Coupang). 대한민국 유통 지형을 송두리째 바꿨다는 이 거대 플랫폼은 이제 혁신의 아이콘이 아니라, ‘착취와 오만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거대한 괴물을 해부해 보자. 그것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탐욕 앞에 무력해지기 일쑤인 국가 시스템과 학벌과 간판 뒤에 숨은 엘리트들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편익’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해 온 우리 사회의 집단적 묵인을 향한 뼈아픈 성찰이다.

서울 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6년 1월호=원광연 기자] 디지털 판옵티콘(Panopticon)의 서막
3,379만 개의 영혼이 털리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쿠팡이 소비자를 대하는 오만한 태도다. 최근 발생한 3,379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쿠팡이라는 기업이 얼마나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지’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지만, 이것은 차라리 ‘빙산의 일각’이라 불러도 좋다. 대한민국 성인 인구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수치의 인구가 이름, 주소, 연락처는 물론이거니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민감한 구매 내역까지, 사실상 국민 전체의 개인정보가 만천하에 발가벗겨졌다.
문제의 본질은 유출 그 자체보다, 그 이후 쿠팡이 보여준 대응 방식에 있다. 그들은 외부 해킹도 아닌, 퇴사한 개발자의 ‘서명키(Signing Key)’를 방치해 대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전문가들이 “호텔 마스터키를 길바닥에 버린 꼴”이라고 비탄할 정도의 기본적인 수준의 보안 붕괴였다. 더욱 통탄할 일은 그들이 보여주는 기만적인 태도다. 쿠팡은 5개월간이나 정보가 새어 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그제야 늑장 대응에 나섰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유출’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노출’이라는 말장난으로 축소하려 들었다. 사과문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옅은 회색 배너로 구석에 처박아 두고 그 자리를 화려한 크리스마스 광고로 채우는 대담함을 보였다. 고객의 정보가 털려 보이스피싱의 표적이 되었는데, 기업은 연말 대목을 놓칠세라 마케팅에 열을 올린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처사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소비자를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 아닌, 이윤 추구를 위한 ‘데이터 덩어리’로만 인식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지난 5년간 수차례 개인정보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쿠팡이 한국의 법과 소비자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소비자의 영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열심히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육체라고 귀하게 여길 리 만무하다.

쿠팡에서 3천만건이 넘는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 고객 계정 약 3천370만개가 유출된 것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판옵티콘의 감옥, 피로 쓴 ‘로켓’의 신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Panopticon)’을 언급했다. 중앙탑에서 감시자는 죄수들을 일거수일투족 관찰할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자를 전혀 볼 수 없는 원형 감옥을 의미한다. 작금의 쿠팡 물류센터는 21세기 최첨단 기술로 구현된 완벽한 21세기 한국 노동자의 판옵티콘이다.
쿠팡의 자랑인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은 유통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을 한계치까지 쥐어짜는 '전자 채찍'으로 기능한다. 현장에서는 “1초에 바코드 하나씩 찍어라”, “걷지 말고 뛰어라”라며 관리자들은 다그치고 고성이 난무한다. 화장실을 가는 시간조차 시스템에 기록되고 통제받는 이곳은 물류센터가 아니라 ‘노예 수용소’를 방불케 한다.
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 속에서 노동자들은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진다. 2020년 이후 과로 등으로 사망한 쿠팡 노동자가 최소 25명에서 29명에 달한다. 전쟁터도 아닌 일터에서 젊은 청년과 가장들이 쓰러져 죽어나가는데 기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더욱이 경악스러운 것은 노동자의 죽음 이후 쿠팡이 보여준 태도다. 유족들이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과로사의 핵심 증거인 ‘노동 강도 자료(UPH, 시간당 생산량)’를 요청했을 때, 쿠팡은 이 자료가 “노동 강도가 높았다는 근거로 활용되거나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흉기를 감추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심지어 그들은 고인의 존엄마저 짓밟았다. 산재 소송 과정에서 쿠팡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업무 과중이 아닌, 고인의 평소 ‘과도한 음주’ 탓으로 돌리려는 패륜적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부검 결과 고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24%, 음주운전 단속 기준에도 미치지 않는 수치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돌리고 망자의 명예까지 훼손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행태는 기업 윤리를 논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마저 저버린 짓이다.
자본지상주의자에게 인간은 한낱 사물화된 객체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연합뉴스


‘아이비리그의 괴물들’
우리는 여기서 대한민국 경제를 좀먹는 거대한 ‘엘리트 카르텔’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일련의 사태를 보자. 최근 정산 지연 사태를 야기한 티몬의 설립자 신현성은 코인사기로 전 세계 투자자를 울린 권도형과 함께 ‘테라·루나’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 그리고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요리저리 한국의 규제와 법 망을 피해다니고 있는 쿠팡의 김범석.
이 세 사람에게는 소름 끼치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바로 ‘명문대 간판’과 ‘특권 의식’으로 무장한 채, 대한민국을 비즈니스의 가치사슬이 역동하는 생태계가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만 전락시킨 왜곡된 엘리트주의자들이다
첫째, 신현성은 박정희 유신 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둘렀던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자다. 신직수가 누구인가. 인혁당 사건 조작 등 민주주의를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사법 살인으로 몰아넣은 유신 헌법의 하수인이다. 그의 손자 신현성은 미국의 명문 와튼스쿨을 나와 ‘티몬’을 설립하며 혁신이라는 허울을 쓰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 혁신의 끝은 무엇이었을까? 할아버지가 정치권력으로 국민을 억압했다면, 손자는 금융과 플랫폼이라는 자본 권력으로 소비자와 투자자를 기만하고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혔다. 권력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대중을 수단으로 여기는 그 집안 특유의 DNA는 그대로 유전된 듯하다.
둘째, 스탠퍼드 출신의 천재라 불리던 권도형이다. 그는 코인이라는 허상을 팔아치우며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 자신의 오만함을 ‘혁신’으로 포장하고, 피해자들의 비명에는 조소를 날렸다.
그리고 셋째, 하버드 출신의 김범석 의장이다. 그 역시 앞선 두 사람과 궤를 같이한다. 김범석은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철저히 ‘미국인’이라는 법적 지위를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한다. 국회가 그를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자 ‘글로벌 비즈니스 일정’을 핑계로 불출석하고, 대신 한국말도 서툰 외국인 임원을 내보내 국회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이는 대한민국 입법권에 대한 모독이자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다.
이들 ‘미국 명문대 유학파 3인방’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명확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자신이 헌신하고 기여해야 할 조국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규제가 허술하고, 소비자가 순진하며, 돈을 뽑아내기 좋은 ‘사냥터’이자 ‘식민지’로 인식한다. 김범석 의장이 내부 임원들에게 ‘전시 지도자(War-time leader)’가 되라며, ‘의도적으로 욕설을 사용하고, 무관용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하라’고 지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기업 경영이 아니라, 점령군이 피지배 계급을 다스리는 방식과 흡사하다.
김 의장은 주식을 팔아 약 5,000억 원의 현금을 챙겼다. 한국 노동자들의 뼈와 살을 갈아 만든 수익이지만, 그 돈은 대부분 미국에서 소비되고 기부된다. 돈은 한국에서 벌고 생색은 미국에서 내는, 전형적인 ‘검은 머리 외국인’의 약탈적 자본주의. 이것이 하버드와 스탠퍼드에서 배운 그들의 ‘경영학’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범석 쿠팡 의장 ©연합뉴스


기업가 정신의 부재, 오만한 기업은 망한다는 진리
기업의 존재 목적은 오로지 이윤 추구에 있다고 하지만, 그 기업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당장의 이익을 버리고 위기 앞에서 솔직하게 사과하고 겸허하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기업의 행보는 어떻게 다시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과거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7 발화 사건 당시 보여주었던 대응을 기억한다. 당시 삼성은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감수하고, 수조 원의 손실을 떠안으며 전량 리콜을 단행했다. 경영진은 고개 숙여 사과했고, 뼈를 깎는 쇄신을 약속했다. 기대수준에 완벽하게 부합되지는 않았을지언정, 최소한 기업이 발생시킨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진다’는 자세가 있었기에 소비자는 다시 그들을 신뢰했다.
반면 쿠팡은 어떠한가. 사건 사고가 터지면 대형 로펌의 전관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선임해 유족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인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해도, 기어이 소송을 걸어 산재 승인을 취소하려 든다. 실질적인 이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악의적인 목적으로 유족을 괴롭힌다. ‘사과하면 패배한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길을 택한다.
비교 대상이 되는 신세계 정용진 회장을 보자. 그는 SNS에 ‘멸공’ 발언 등을 쏟아내며 오너 리스크를 자초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적어도 정용진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여론의 질타를 온몸으로 맞는다. 그의 기행은 때로 조롱거리가 되지만, 김범석처럼 시스템 뒤에 숨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지는 않는다. 정용진이 시끄러운 이웃집 사고뭉치라면, 김범석은 우리 집 기둥뿌리를 갉아먹으면서도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는 ‘보이지 않는 포식자’다. 김범석의 오너 리스크는 개인의 일탈 수준이 아니다. 그는 기업 전체를 ‘법적 책임 회피에 최적화된 요새’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훨씬 구조적이고 악랄하다.

갤럭시노트7 배터리 불량 사태 일지 ©연합뉴스


혁신이 아닌 ‘약탈’, 상생 지원 1조 원의 허구
쿠팡의 악행은 노동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입점 업체들의 판매 데이터를 무단으로 들여다보고, 잘 팔리는 상품을 베껴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만든다. 남이 힘들게 개발한 영업 비밀을 가로채 ‘카피 제품’을 만들고,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원조 상품을 화면 뒤로 밀어버린다. 이것은 자유 시장 경제의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플랫폼 권력을 이용한 ‘디지털 해적질’이다.
특히, 쿠팡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중소기업 1조 원 지원’이라는 문구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허구이자 대국민 사기극에 가깝다. 쿠팡은 판매 대금 정산을 두세 달씩 늦추며 영세 소상공인들의 자금줄을 말려 죽인다. 그래놓고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것이 바로 ‘선정산 서비스’다.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자신들이 줘야 할 돈을 담보로 연 4.8%에 달하는 이자를 뜯어가는 ‘팩토링 금융업’이다.
병 주고 약 주는 척하면서, 그 약값마저 바가지를 씌우는 꼴이다. 자기들이 마땅히 제때 줬어야 할 돈을 인질로 잡고, 돈이 급한 소상공인들에게 고리대금놀이를 하는 것이 과연 ‘상생’이고 ‘지원’인가? 이것은 유통 혁신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지위를 악용한 현대판 고리대금업일 뿐이다. 한국의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을 얼마나 우습게 알면 이런 조삼모사 식의 기만을 ‘사회 공헌’이라고 포장할 수 있는가.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이 국가 주권마저 흔들려 한다는 점이다. 쿠팡은 미국 본사를 통해 지난 5년간 약 159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미국 정가 로비에 쏟아부었다. 미국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여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무력화하고, 한국 정부의 통상 정책에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다. 한국 땅에서 장사하면서 한국 법을 지키기는커녕, 외세를 끌어들여 치외법권의 지위를 누리려 하는 행태. 이것이야말로 21세기판 ‘매국(賣國)’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정감사에서 쿠팡cfs 관련 질의에 답변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문지석 검사. ©연합뉴스


대관업무의 하이라이트, 검찰의 두 얼굴
엄희준의 결탁 VS 문지석의 양심

우리는 이 거대한 카르텔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사법 권력의 그림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 쿠팡이 이토록 오만방자하게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자본과 결탁한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두 명의 검사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엄희준과 문지석이다. 쿠팡의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된 수사 과정에서, 엄희준 검사는 쿠팡 측의 입장을 대변하며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외압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자본의 편에 서서 노동자의 죽음을 덮으려는 권력의 민낯이다.
반면, 문지석 검사는 달랐다. 그는 검찰 내부의 외압과 부당한 지시에 맞서 양심선언을 강행했다.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그의 폭로는, 쿠팡이라는 거대 자본이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을 어디까지 오염시켰는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정의의 최후 보루여야 할 검찰이 자본의 사설 경비업체로 전락한 현실 앞에서, 문지석 검사의 외로운 투쟁은 우리 사회가 아직 완전히 썩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불씨다. 우리는 엄희준의 외압을 철저히 규명하고, 문지석의 용기를 격려해야 한다.

“내란도 이겼는데, 네까짓 게 감히...”
문성근은 SNS에서 이렇게 말했다. “계엄도 막았는데 쿠팡, 네깟 게 뭐라고”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구체적인 ‘탈팡’ 실천법을 공유하며 행동에 나섰다. 그는 쿠팡 앱을 삭제하고, GS SHOP이나 네이버 쇼핑 같은 대체 플랫폼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김의성·윤일상 씨 같은 유명인도 ‘탈팡’ 행렬에 동참했다. “기꺼이 불편하리라”는 선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오만한 기업의 폭주를 지켜만 볼 것인가. 촛불을 들어 부패한 정권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는 위대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고작 쇼핑몰 하나의 편리함에 굴복해 불의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사냐”고 묻지만, 대체재는 도처에 깔려 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호구 소비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탈팡에 일찌감치 참여했다.
다행히 변화의 바람은 이미 불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탈팡’ 운동의 불길이 지펴지고 있다.
“하루 이틀 늦게 받으면 어떤가. 누군가 죽지 않고 배송할 수 있다면 기꺼이 기다리겠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소비자의 품격이다. 우리가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할 때, 비로소 기업은 공포를 느낀다.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것만큼 자본가에게 무서운 형벌은 없다.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의 급감은 이미 그들에게 경고가 되고 있다.

카카오톡 사용자를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는 프로필 사진 이미지


사상누각(沙上樓閣)의 허상, 퇴출이 답
쿠팡이 쌓아 올린 화려한 성채는 겉으로 보기에 거대하고 견고해 보이나, 그 실상은 허황된 모래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수천억 원의 외국 자본을 유치해 진행했던 쿠팡 초창기의 마케팅 사례들을 복기해 보면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일 것이다. 당시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쿠팡은 유명 대형마트의 상품권을 액면가 수준에서 대량 매입한 뒤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수십만 장씩 살포하는 기괴한 전략을 취했다. 구체적으로는 10만 원권 상품권을 제값에 사들여 7~8만 원이라는 상식 밖의 가격으로 시장에 뿌려댄 것이다. 물론 당시 쿠팡뿐만 아니라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3사 모두가 시장 주도권 쟁탈을 위해 ‘현금 깡’에 비견될 정도로 파괴적 마케팅을 자행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팬데믹 포비아’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닭대가리 마케팅’이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의 피와 눈물, 소비자 기만, 그리고 법질서 유린이라는 진흙탕 위에 세워진 성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뿌리가 썩은 거목은 미풍에도 쓰러지는 법이다.
이제는 김범석 의장을 향한 엄중한 경고가 필요하다. 아니 경고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 확실한 제재에 나서야 한다.
5,000억 원의 현금을 챙겨 미국 속으로 숨어버리면 그뿐이라 생각하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분노와 사법 당국의 심판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권과 사법부에도 촉구한다. 엄희준 검사를 비롯한 전관 출신들이 쿠팡의 방패막이로 나서 정의를 왜곡하는 현실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즉각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엄격히 적용하여 김범석 의장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미국에서라면 수천억 원의 배상금을 물고 기업 문을 닫았을 범죄를 저지르고도 한국에서는 떵떵거리는 이 불합리한 현실을 뜯어고쳐야 한다.

쿠팡사태 범부처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 ©연합뉴스


다만 쿠팡에서 구하소서
2017년 미국의 신용평가사 에퀴팩스(Equifax)는 1억 4,70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했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해 최대 7,000억 원(약 5억 7,500만 달러) 이상의 합의금을 물어내야 했다. 페이스북 역시 개인정보 문제로 5조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미국이었다면 쿠팡은 이미 천문학적인 배상금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을 것이다. 그러나 김범석 의장은 한국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웃으며, 미국 본사를 통해 159억 원이라는 막대한 로비 자금을 뿌려 한국 정부의 규제를 무력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대관(對官) 로비를 통한 국기 문란 행위다.
지난 12월, 느닷없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예정됐던 한미 FTA 공동위원회 회의를 전격 취소한 사태는 그가 구축한 ‘방탄 로비’가 얼마나 치밀하고 위협적인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미국 측은 한국 공정위의 플랫폼 규제와 쿠팡에 대한 제재 움직임을 두고 “미국 상장사에 대한 부당한 대우이자 FTA 위반”이라며 노골적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이는 김 의장이 고용한 미국 로비스트들이 미 행정부를 움직여, 대한민국 정부의 정당한 법 집행을 무력화하려는 ‘통상 압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추측된다.
한국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돈을 벌어들이면서, 정작 한국의 법적 규제가 들어오자 미국 정부의 힘을 빌려 조국의 사법 주권을 짓밟으려 드는 이 치졸한 행태야말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자존심마저 팔아넘기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매국적 생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소비자 없이 성장한 기업은 없다. 노동자의 피를 연료로 날아다니는 로켓은 결국 추락하게 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그 로켓의 엔진을 멈춰 세워야 할 때다. 쿠팡의 퇴출, 그것은 공정 경제를 향한 첫걸음이자 인간 존엄을 회복하는 시민 혁명의 시작이다.
“편리함이 곧 최선은 아니다.”
거대한 댐도 작은 균열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당신의 스마트폰 속에 있는 그 붉은 앱을 삭제하는 순간, 비로소 인간을 위한 진정한 혁신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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