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와 관련한 키워드는 ‘종묘 앞 재개발’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에서 추진 중인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한 지역 개발 문제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향후 도시 관리 원칙을 둘러싼 총체적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고층 개발을 통해 도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서울시의 구상과, 세계유산 보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가유산청과 전문가들의 경고가 정면으로 맞서면서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세운4구역 재개발 논쟁은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효율과 속도를 우선하는 글로벌 도시로 갈 것인지, 역사와 경관을 핵심 자산으로 삼는 수도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방향 선택에 가깝습니다. 특히 세계유산 종묘와 남산을 축으로 형성된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은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장기적 파급력을 지닌다고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서울 종묘와 세운4구역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6년 1월호=정용일 기자] 종묘 앞 고층건물 개발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도시개발 여부를 넘어, 한국 사회가 역사유산과 미래 성장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와 맞닿은 공간에 고층건물을 허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찬성과 반대 양측은 전혀 다른 가치와 논리를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개발 찬성 측의 주장은 무엇보다 ‘도시의 생존 논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들은 서울 도심이 이미 심각한 공간 포화 상태에 놓여 있으며, 더 이상 외곽 확장만으로는 주거·업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본다. 종묘 인근 지역 역시 노후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저층·저밀 개발을 고집할 경우 도심 경쟁력은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글로벌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서울이 역사 보존만을 이유로 핵심 지역의 고도 이용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불리하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종로 세운4구역 재개발, 지난 20년 가까이 '표류’
최대 변수 ‘세계유산영향평가’에 서울시 "필요 없다"
정치권·정부·학계 강한 비판에도 ‘요지부동’ 서울시
개발·보존 사이에서 커져만 가는 갈등, 해법은 없나
서울시가 꺼내 드는 ‘일본의 사례’, 비교대상 아냐
종묘 ‘열려 있는 하늘선’과 ‘주변의 비움’에서 완성
서울시에 힘 실어주며 재산권 침해 주장하는 상인들
도시 안전 관리 대상vs국가가 지켜야 할 공공 자산
“역사유산 비가역성과 상징성 양보할 수 없는 가치”


찬성 측은 고층 개발이 반드시 문화재 훼손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현대 도시계획과 건축 기술을 활용하면 조망권, 일조권, 시각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설계가 가능하고, 오히려 체계적인 재개발을 통해 주변 환경을 정비함으로써 문화재 접근성과 관리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무질서하게 남아 있는 노후 건축물과 상업시설을 정비하고, 공공 공간과 녹지를 확보한다면 종묘 일대의 도시 경관이 지금보다 개선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더 나아가 개발로 발생하는 수익을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 역시 찬성 논리의 핵심이다.


경제적 효과 역시 중요한 근거로 제시된다. 고층 복합개발은 업무·주거·상업 기능을 집약해 생산성과 세수 확대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고, 침체된 도심 상권을 되살리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층과 기업의 도심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도심에 새로운 기능과 활력을 불어넣는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을 강조하고 있다.

종묘 앞 종묘가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반면 반대 측의 주장은 ‘대체 불가능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종묘는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정신과 의례, 공간 질서가 집약된 상징적 장소이며, 한 번 훼손된 역사 경관은 어떤 방식으로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대 측은 고층건물이 종묘의 물리적 구조를 직접 침범하지 않더라도, 시각적·상징적 맥락을 훼손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세계유산의 가치는 개별 건축물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화 속에서 형성되는데,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순간 그 조화는 근본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리 기준을 둘러싼 우려도 크다. 반대 측은 종묘 인근 고층 개발이 국제사회에서 ‘보존 의지의 후퇴’로 해석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실제로 세계유산 주변 개발 문제로 등재 취소나 위험유산 지정 논란을 겪은 해외 사례들이 존재하는 만큼, 단기적인 개발 이익을 위해 국제적 신뢰와 문화적 위상을 감수하는 선택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주변 곳곳에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설립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도시 정체성과 시민 정서 역시 반대 논리의 중요한 축이다. 종묘 일대는 서울 도심에서 드물게 남아 있는 역사적 시간의 층위가 응축된 공간으로, 고층 스카이라인보다는 ‘비워진 공간의 미학’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종묘 앞 고층 개발은 단순한 건축 행위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켜온 정체성을 스스로 허무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대가로 잃게 될 문화적 자산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쟁점은 ‘선례 효과’다. 종묘 앞 고층 개발이 허용될 경우, 다른 문화재 주변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번 기준이 완화되면, 이후의 개발 압력을 막기 어려워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문화재 보호 체계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세운전자상가 방문을 환영한다는 글구가 유독 쓸쓸해 보이는 요즘이다.


일본 사례, 한국과 비교대상인가
종묘 앞 고층 개발 논란에서 서울시가 반복적으로 꺼내 드는 논거 중 하나는 ‘일본의 사례’다. 도쿄와 교토, 오사카 등 일본 주요 도시들이 역사유산과 현대적 고층 건축을 일정 부분 병존시키며 도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종묘 인근 개발 역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반대 측은 “일본과 한국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서울시의 논리가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단순한 해외 사례 인용의 적절성 문제를 넘어, 역사유산을 바라보는 제도·문화·도시 구조의 차이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주장은 비교적 명확하다. 일본 역시 세계적 관광 도시이자 역사유산이 밀집한 국가이지만, 엄격한 관리 기준 아래 고층 건물과 전통 공간을 병존시키는 데 성공해 왔다는 것이다. 도쿄의 경우 황거(皇居)를 중심으로 고도 제한과 경관 관리 구역을 설정하면서도, 인접 지역에는 고층 오피스와 복합시설을 배치해 도시 기능을 극대화하고 있다. 교토 역시 전통 경관을 보호하는 구역과 현대적 개발 구역을 구분해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관광과 경제를 동시에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이러한 사례를 들어 “개발과 보존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반대 측은 이 같은 비교가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역사유산의 성격 차이다. 종묘는 단순한 고궁이나 옛 건축물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제례 문화와 공간 질서가 살아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반대 측은 “종묘의 가치는 건물 자체보다도 ‘열려 있는 하늘선’과 ‘주변의 비움’에서 완성된다”고 말한다. 반면 일본의 많은 사례는 궁이나 사찰 자체의 경계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 외곽에서 고층 개발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즉, 유산이 도시 안에 ‘섬처럼’ 존재하는 구조와, 종묘처럼 도심과 연속적으로 호흡하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도시 형성 과정의 차이도 중요한 쟁점이다. 일본 주요 도시들은 전후 재건 과정에서 대규모 도시 재편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용도지역과 고도 규제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립됐다. 반면 서울은 급속한 산업화와 압축 성장 속에서 역사유산이 고층 개발지와 뒤섞여 남게 된 경우가 많다. 반대 측은 “일본은 애초에 개발과 보존의 경계를 설계한 도시이고, 서울은 사후적으로 이를 조정해야 하는 도시”라며,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접근이라고 비판한다.

세운4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현장에 잡초만 무성한 상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리 기준에 대한 해석 차이도 논쟁을 키운다. 반대 측은 일본의 일부 사례가 국제적으로도 지속적인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일본이 고층 개발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모범 답안’이 될 수는 없으며, 각 유산의 맥락과 주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종묘는 ‘완충구역(buffer zone)’의 의미가 강한 유산으로 평가받아 왔는데, 이 완충구역에 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화적 인식의 차이 역시 반대 논리의 중요한 축이다. 반대 측은 일본 사회가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상대적으로 ‘기능적 조화’의 문제로 다뤄온 반면, 한국에서는 역사유산이 식민지 경험과 전쟁, 급속한 근대화 속에서 훼손된 기억과 깊이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종묘는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역사 회복의 상징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도 했으니 한국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비교는 역사적 감수성을 결여한 접근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대 측은 또 하나의 위험으로 ‘선별적 비교’를 지적한다. 일본 사례 중에서도 고층 개발로 인해 경관 훼손 논란이 이어지거나, 지역 주민 반발이 컸던 경우는 충분히 언급되지 않고, 성공 사례만 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 설득을 위한 단순화된 비교일 뿐, 실제 정책 결정에 필요한 균형 잡힌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해외 사례를 참고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례를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반대 측은 일본 사례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종묘라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상징적 무게를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서울시가 일본을 언급할수록, 오히려 “왜 종묘는 종묘의 기준으로 논의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더 크게 제기되는 이유다.


종묘 앞 개발 논쟁에서 일본 사례는 하나의 참고 자료일 수는 있지만, 결정적 근거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차이를 안고 있다. 반대 측의 주장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해외 도시의 성공담을 빌려오는 대신, 종묘가 지닌 고유한 역사성과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수성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논쟁은 개발과 보존 중 하나를 택하는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귀결된다.

찬성 측이 말하는 도시 경쟁력과 경제 논리는 분명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반대 측이 강조하는 역사유산의 비가역성과 상징성 역시 쉽게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종묘 앞 고층건물 개발 논란은 서울이 ‘효율적인 글로벌 도시’와 ‘역사적 수도’라는 두 얼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이며, 이 선택의 결과는 단지 한 지역의 스카이라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가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를 오랫동안 규정하게 될 것이다.

세운4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현장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우리 땅과 집을 두고 왜 정쟁 벌이나...”
기자는 현장의 분위기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지난 18일 오후 종묘 일대를 거닐며 주변 상인들을 만나 보았다.
종묘 담장을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면, 서울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잠시 잊힌다. 오래된 기와지붕과 낮은 상가, 간판 빛이 바랜 식당과 인쇄소, 공방들과 세련된 카페나 식당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 거리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서순라길’이다.


이날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종묘 담장 밑에서 걷고 있었다. 담장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종묘 입구가 나온다. 이날 종묘 안에는 단체 외국인 관광객들로 보이는 20여명이 한 곳에 모여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종묘에서 누군가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도심 속 한가운데의 종묘는 상당히 매력적인 장소로 여겨지는 듯했다. 종묘를 등지고 반대편을 바라보면 정면으로 세운상가와 좌측에 종로3가 세운4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현장이 보이고, 우측으로 세운2구역 재개발 사업지가 보인다.


요즘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화제는 단연 ‘앞으로 여기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이다. 종묘 앞 고층 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주변 상인들의 시선은 기대와 불안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종묘 인근에서 20년 넘게 작은 한식당을 운영해 온 상인은 개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고 말했다.

손님이 뜸한 평일 오후, 그는 “솔직히 처음엔 반가웠다”고 했다. “사람이 좀 더 와야 장사도 되는 거 아니냐”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이 일대는 주말을 제외하면 유동 인구가 많지 않다. 관광객들은 종묘를 둘러본 뒤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주변 상권까지 발길을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문화재는 옆에 있는데, 장사는 늘 제자리”라는 푸념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개발 찬성 쪽으로 기운 상인들은 이 같은 현실을 먼저 꺼낸다. 종묘 근처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50대 상인은 “이 동네가 조용한 건 좋지만, 너무 조용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건물도 낡고, 시설도 오래돼 젊은 사람들은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며 “고층이든 뭐든 사람이 들어올 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발이 이뤄지면 사무실과 주거 인구가 늘고, 자연스럽게 상권도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다. 이들은 “문화재를 망가뜨리자는 게 아니라, 공존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 공사현장 2번 게이트


하지만 종묘와 인접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종묘 담장과 거의 맞닿아 있는 곳에서 공예품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은 개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그는 “이 동네에 오는 손님들은 높은 건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이 분위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며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지금의 장점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줄어들면 장사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걱정이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 사이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옆에 고층 빌딩이 보이면 실망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임대료에 대한 걱정도 곳곳에서 들린다. 개발 기대감이 커질수록 땅값과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는 불안은 상인들 사이에서 공통된 화두다. 10년 넘게 작은 카페를 운영해 온 한 상인은 “지금도 빠듯한데, 개발이 본격화되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건물주들은 좋아질지 몰라도, 세입자는 밀려나는 것 아니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일부 상인들은 개발이 ‘활성화’가 아니라 ‘정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늘어나기 전에 기존 상인들이 먼저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상인들 사이의 입장 차이는 업종과 위치에 따라 더욱 선명해진다. 종묘에서 조금 떨어진 대로변 상인들은 상대적으로 개발에 호의적인 반면, 담장과 가까운 골목 상인들은 반대 의견이 많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솔직히 여기는 이미 주변이 다 바뀌었다”며 “이제 와서 여기만 멈춰 세우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종묘와 인접한 곳에서 오래 장사를 해온 상인은 “여기가 다 똑같아지면, 우리는 어디로 가느냐”고 되물었다.


또 다른 상인은 “찬반을 떠나, 상인들 대부분이 불안해하는 건 사실”이라며 “정확한 계획도, 보상이나 보호 방안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쟁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세운상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세운상가 2층 좁은 통로를 따라 전자제품 가게들이 이어진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손님은 뜸하다. 가게 안에 앉아 있던 60대 상인 김모 씨는 진열대 위 먼지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여긴 늘 이렇게 기다리는 곳이에요.” 그는 세운4구역과 세운상가 재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길어질수록, 자신들의 시간만 멈춰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15년 전 종로구 예지동에서 장사를 하다 재개발을 이유로 세운상가로 옮겨왔다. 당시에도 ‘곧 개발된다’는 말이 돌았지만, 어느덧 세월은 훌쩍 흘렀다. 그는 “이제는 세운상가 재개발보다 세운4구역이 먼저 끝날 줄 알았다”며 “그런데 철거까지 다 해놓고도 공사를 못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며 다소 짜증 섞인 말투로 기자에게 반문했다. 정부와 서울시, 문화재 당국이 엇갈린 목소리를 내는 사이, 상인들은 또다시 불확실성 속으로 밀려나고 있다.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 공사현장 앞에 공사 반대에 대한 주민과 상인들의 항의성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던 세운4구역 주민들도 요즘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종로구 장사동 일대에서는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라’, ‘세운4구역 주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이들은 재개발 찬반을 떠나, 자신들의 삶이 정치적 공방의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온 상황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한 주민은 종묘와의 거리 문제를 언급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세운4구역은 종묘 정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도 아니고, 측면에 위치한 곳”이라며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갑자기 ‘높이 규제’를 외치고, 개발이 진행되면 세계유산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땅과 집을 두고 정치인들이 정쟁을 벌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개발이 멈춰 선 사이, 주민들이 떠안은 현실적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인숙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 상근위원은 철거 현장을 가리키며 “벌써 3년 전 철거를 끝냈지만 아직 첫 삽도 못 떴다”고 말했다. 그동안 매달 발생하는 금융 비용만 20억 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2023년 3월 이후 누적된 금융 비용이 이미 600억 원을 넘었다”며 “이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재산상의 손해가 단순히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상근위원은 “서울시를 믿고 사업에 참여하면서 세입자들이 모두 나갔고, 월세 수입도 끊겼다”며 “일부 주민들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개발을 선택한 대가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분노와 불안이 교차한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 피해는 정작 현장에서 살아가는 주민과 상인들에게 집중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 상근위원은 “국가유산청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세운4구역 재개발을 정치적 싸움터로 만들고 사업을 가로막는다면, 주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손해배상과 직권남용을 포함한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의 낡은 외벽 아래로 사람들이 오간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이곳에 남아 있는 주민과 상인들의 마음은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다. 재개발이 도시 경관과 세계유산 보존이라는 거대한 논쟁으로 확장된 사이, 현장의 목소리는 종종 뒤로 밀려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찬반의 명분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이 더 이상 정치적 계산의 도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언뜻 보면 종묘 주변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상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큰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개발이 이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아니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삶의 터전을 흔들어 놓을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 공사현장 앞에 공사 반대에 대한 주민과 상인들의 항의성 현수막이 걸려 있다.


훼손되면 복원 불가능한 비가역적 자산
이러한 상황에서 종묘 앞 재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이번에는 ‘세계유산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강화’라는 새로운 쟁점으로 확장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일대 재개발을 추진 중인 서울시가, 국가유산청이 준비 중인 관련 법규 개정 움직임을 두고 ‘과잉 규제’라고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인식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서울시의 문제 제기는 규제의 ‘취지’보다는 ‘방식’에 맞춰져 있다. 시는 세계유산 보존의 필요성과 가치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전제로 하면서도,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기존 도시계획 체계 위에 또 하나의 규제를 덧씌우는 형태라고 본다. 이미 높이 제한, 경관 관리, 문화재 영향 검토 등 다층적인 관리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유산 반경 500m 이내 사업을 일률적으로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으로 묶는 것은 행정 편의적 중복 규제라는 주장이다. 서울시는 이를 사실상 중앙정부의 ‘사전 허가제’로 해석하며,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세운4구역을 둘러싼 논리는 서울시 입장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미 정비계획이 고시된 사업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 원칙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시는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권고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제기구의 권고가 국내 법 절차와 주민의 권리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세계유산 보호가 물리적 보존에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의 동의와 지지를 전제로 해야 지속 가능하다는 점도 서울시가 반복해 강조하는 대목이다.


서울시가 내세우는 또 다른 논리는 도시 경쟁력과 주거 문제다. 세계유산 반경 500m 규제가 적용될 경우, 강북 5개 구와 강남 1개 구, 약 38개 구역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세운 2~5구역뿐 아니라 이문·장위 일대 재정비 사업,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까지 규제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시는 주택 공급 지연과 투자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미 노후화된 주거 밀집 지역이 많은 상황에서 사업이 장기 지연될 경우,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는 물론 안전사고 위험과 생활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세운상가


반면 국가유산청의 문제의식은 전혀 다른 지점에 있다. 종묘는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 국제적 보호 의무가 부여된 공간이며, 개별 사업 단위의 도시계획만으로는 경관과 맥락 훼손을 충분히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제도화하는 것은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예방 차원의 관리 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지구’ 지정과 함께 통합적 관리 틀을 마련하려는 배경에는, 개발 압력이 반복될수록 개별 판단만으로는 유산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결국 이번 충돌은 ‘세계유산 보호의 범위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서울시는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주민 반감을 키워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주변 지역이 낙후된다”는 인식을 고착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산 보호에 부정적이라는 논리다. 반대로 국가유산청은 보호 기준이 느슨해질 경우 단기 개발 이익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국제적 신뢰와 세계유산의 지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렇다면 현 상황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도시설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될 경우 서울 도심이 지녀온 고유한 경관 체계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개발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고도와 용적률 완화를 중심으로 한 서울시의 접근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구조적·상징적 자산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짚는 지점은 서울 도심 경관의 핵심 축이다. 김경민 서울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심 한가운데 남산 규모의 산을 품은 인구 1천만 도시라는 점에서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도시”라며 “서울의 랜드마크는 초고층 빌딩이 아니라 남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경관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남산을 기준으로 완만하게 형성된 고도 질서가 서울 도심의 정체성을 규정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세운4구역에 적용된 높이 완화가 일회성 조치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한 구역에서 기준이 풀리면 이후 2구역, 3구역, 5구역, 6구역 등 인접 지역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도심 한복판에 대규모 고층 건물이 연쇄적으로 들어서면서 사실상 ‘빌딩 숲’이 형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높이 완화가 경관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도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종묘


사업성 논리를 둘러싼 비판도 거세다. 김경민 교수는 세운4구역의 경우 건물 높이를 90m에서 145m로 상향하면 용적률이 600%에서 1,000%까지 급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용적률을 단숨에 400%포인트 올리는 결정은 도시계획 차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며 “공공이 감수해야 할 경관 훼손 비용에 비해, 민간 개발이 얻는 이익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김세훈 서울대 환경설계학과 교수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초고층 개발만이 사업성을 담보한다는 전제 자체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역사적·공간적 가치는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자산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개발 논리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운4구역 정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용적률 상향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서울시의 접근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라는 평가다.


해외 사례를 둘러싼 해석에도 전문가들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김세훈 교수는 “해외 주요 도시를 보면 초고층 일변도가 아니라, 중층과 일부 저층, 제한적 고층을 혼합해 밀도를 확보하면서도 도시 맥락을 지켜낸 사례들이 적지 않다”며 “고층화만이 글로벌 도시의 조건이라는 인식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강조해 온 ‘녹지생태도심’ 구상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김세훈 교수는 “도심에 녹지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거대한 마천루 사이에 끼인 선형 녹지가 과연 이 공간에 어울리는 공공 공간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서울 도심이 종로·청계천·을지로로 이어지는 동서 축을 중심으로 형성돼 온 도시라는 점에서, 종묘에서 충무로로 이어지는 남북 녹지 축이 필수적인지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은 명확하다. 세운4구역 재개발은 필요하지만, 현재 제시된 고도·용적률 중심의 해법은 서울 도심이 오랜 시간 쌓아온 경관 질서와 도시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유산 종묘와 남산을 축으로 한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한 번 훼손되면 복원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개발의 속도보다 방향과 기준이 더 중요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종로3가 세운2구역 재개발 사업지 전경


종묘 앞 재개발 논쟁은 이제 개별 사업의 타당성을 넘어, 서울이 어떤 도시 경관을 미래 세대에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종묘 앞 재개발과 시행령 개정 논란은 단순한 규제 강도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유산을 ‘도시 안의 관리 대상’으로 볼 것인지, ‘국가가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공공 자산’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 차이가 제도 충돌로 표면화된 사례다. 과잉 규제와 보호 공백이라는 상반된 프레임 속에서, 핵심은 획일적 기준과 무제한 개발 사이의 회색지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7일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 과정에서 종묘 경관 훼손 논란을 언급한 데 대해 피상적인 문제 제기라고 비판하며, 세운4구역 개발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 시장은 SNS를 통해 대통령의 질문이 충분한 이해 없이 던져졌다고 주장했고, 국가유산청장 역시 사실과 다르게 서울시가 종묘 보존을 훼손한 것처럼 설명하며 법 개정으로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과도하게 단정했다고 지적하면서 서울의 미래 도시개발이라는 중대한 사안이 가볍게 다뤄졌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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