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제목:일본 침략자들과 투쟁한 날

사람들이여, 우리는 이것을 해야 한다!/아마도 원수는 공포를 잊어버렸을 것이다./힘을 내고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아직까지 우리를 이기지 못했던 자들에게.

사람들이여, 형제들이여! 지키러 나가자/우리 땅에서 우리의 불결함을 씻어내고/잿더미에서 조국을 일으켜 세우자/원수에게 우리 땅을 내주지 않으리라

많은 이들이 이 전투에서 죽을 것이다/전쟁터로 전진하자!/ “만세”를 외치면서./조국을 위해, /자유를 위해, /승리를 위해/우리는 죽으러 간다, 나의 동지여!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흘렀고/일본인들이 쫓겨 난지도 이미 오래,/그 시기가 재난의 해들이었음은/서적과 영상물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바로 그날에서 시작되었다/그날이 없었으면 나라도 없었으리라/이날은 해방을 기리는 축일이며/한반도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 우리는 그때처럼 만세를 외친다,/누구도 우릴 이길 수 없음을 모두가 알도록./우리가 원수에게 처음 저항했던 사실을/친구들이여, 우린 그 언제든 잊지 않는다.

한국에서 종이 울린다, /그것은 원수와 싸우다 순국한 이들을 기억하는 의식./우리는 더 친목하고 더욱 강해진다/하나님도 우리 공동의 집을 축복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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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에서 활동하는 김블라디미르 시인이 매년 광주고려인마을이 진행하는 3.1절 만세운동 재현 행사에서 낭독하는 그의 시 〈일본 침략자들과 투쟁한 날〉은 3·1독립만세운동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시는 3·1절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되는 공동체의 시간으로 소환하며,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간직해 온 저항의 기억을 현재형 언어로 호출한다. 그렇게 이 작품은 독립의 의미를 오늘의 질문으로 되돌려 놓는다.

제목부터가 강렬하다. ‘3·1절’이라는 제도화된 명칭 대신 시인은 이 날을 ‘일본 침략자들과 투쟁한 날’이라 부른다. 이는 중립적 기념을 거부하고, 역사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하려는 태도의 선언이다. 시의 첫 연에서 반복되는 “사람들이여”라는 호명은 1919년의 군중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를 향한다. 독자는 관찰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시가 열어 놓은 참여의 자리로 이끌린다.

중반부에서 시는 투쟁의 대가를 숨기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 전투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장엄하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이는 죽음을 미화하는 언어가 아니라, 자유가 결코 공짜가 아니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증언의 문장이다. “조국을 위해, 자유를 위해, 승리를 위해”라는 반복은 구호가 아니라, 한 세기를 견뎌 온 신념의 리듬으로 읽힌다.

후반으로 갈수록 시의 시간은 현재로 수렴한다.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흘렀고”라는 구절이 역사적 거리감을 환기하지만, 곧이어 “그러나 오늘은 바로 그날에서 시작되었다”는 선언이 과거와 현재를 포갠다. 이 작품에서 3·1절은 끝난 날이 아니라 모든 시작의 날이다. “그날이 없었으면 나라도 없었으리라”는 고백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진술로 확장된다.

광주 고려인마을이 매년 재현하는 삼일만세운동/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종소리의 이미지다. 한국에서 울리는 종은 단순한 의례음이 아니라 “원수와 싸우다 순국한 이들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이 종소리를 통해 시는 기억을 애도로, 애도를 연대로 바꾼다. 고려인 공동체는 이 기억 속에서 “더 친목하고 더욱 강해진다”고 말한다. 신의 축복 또한 개인의 신앙을 넘어,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모여 살아가는 공동의 집 위에 내려진다.

이 시는 광주 고려인마을이 매년 3·1절을 맞아 광주이주 고려인동포들과 함께 진행하는 3·1만세운동에 맞춰 지어졌다. 따라서 이 작품은 문학 작품이기 이전에 현장의 언어이자 의식의 언어다. 낭독되는 순간, 시는 종이 위를 떠나 사람들 사이를 걷기 시작한다.

〈일본 침략자들과 투쟁한 날〉은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으로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김블라디미르 시인의 ‘오늘의 시’는 이에 조용하지만 단단한 답을 내놓는다. 만세는 끝나지 않았다. 기억하는 한, 저항은 계속된다.

한편 김블라디미르 시인은 한때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문학대학 교수이자 의과대학 러시아어문학과 학과장으로 30여 년간 강단에 섰던 지식인이었다. 현재 그는 광주 인근에서 공장과 농촌 현장을 오가며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사과와 배, 감을 따고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그의 오늘은, 이 시를 단순한 문학적 성찰을 넘어 삶의 증언으로 읽히게 만들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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