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협력해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이 네 번째 인물, 고창근(1861~미상) 선생의 삶과 항일투쟁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번 연재는 이름조차 기록 속에서 희미해져 버린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들의 발자취를 하나씩 복원해 가는 기억의 여정이다. 그 네 번째 주인공 고창근 선생은, 조국 독립을 위해 국경 밖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던졌던 연해주의 실천적 독립운동가였다.
고창근 선생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다. 국내 기록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 독립운동사, 특히 고려인 사회의 항일 무장투쟁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사진:광주 고려인마을과 1918-1922 시기 연해주 독립운동 관련 기록사진
그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항일무장단체 혈성단(血誠團) 소속으로 군자금 모집과 조직 운영에 헌신했다. 혈성단은 1920년 11월 만주 흑룡강성에서 결성된 항일 무장단체로, 일제의 간도 침략과 청산리전투 전후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밀산으로 이동해 대한독립군단 결성에도 참여했다. 이후 일본군의 집요한 감시를 피해 러시아 이만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 활동을 이어갔다.
1922년 2월경, 고창근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 이만의 자유촌에서 혈성단 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또 다른 형태의 투쟁을 시작했다. 그는 단체 운영을 위한 군자금을 모으는 한편, 학교를 설립해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졌다. 총과 칼뿐 아니라 교육과 조직,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 독립의 불씨를 지켜낸 것이다.
선생의 삶은 화려한 전투 영웅의 서사가 아니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금을 모으고, 인재를 키우고, 조직을 지탱한 그의 역할은 독립운동의 숨은 뿌리였다. 혈성단의 경비를 책임지고 공동체를 지켜낸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연해주의 항일 무장투쟁 역시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창근 선생은 현재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로 남아 있다. 묘소 역시 미확인 상태다. 오랜 세월 그의 이름은 기록 속에서만 남아 있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며 뒤늦게나마 응답했다.
이번 연재를 통해 광주 고려인마을과 고려신문은 묻혀 있던 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시 현재로 불러낸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 아니라, 연해주 고려인 사회 전체가 조국 독립을 위해 감내했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는 과정이다.
역사는 이름을 부르는 일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고창근 선생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름을 잃은 독립운동가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총성이 멎은 자리, 기록이 끊긴 자리에서도 독립운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연해주의 작은 자유촌에서, 학교와 모금함 앞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어졌던 고창근 선생의 투쟁은 오늘 우리에게 ‘기억의 책임’을 남긴다.
이에 광주 고려인마을은 이번 연재를 통해, 역사 속에서 잊혀져 온 고려인 독립유공자 고창근 선생을 비롯한 고려인 독립운동가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기억을 복원하는 첫걸음이자, 사라진 역사를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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