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광주 고려인마을과 세계적인 고려인 미술거장이자 살아있는 전설 문빅토르 화백의 인연은 한 차례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 인연은 오늘, 예술과 역사, 공동체가 함께 숨 쉬는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가을, 문 화백은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뒤 심각한 수술 후유증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고령의 나이에 치료와 회복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현지 의료·생활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이 소식을 접한 광주 고려인마을은 즉각 움직였다. 디아스포라의 고난을 예술로 기록해 온 동포 예술가를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마을은 2023년 8월 문 화백을 광주로 초청해 재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치료비와 체재비 전액을 지원하며 회복의 시간을 함께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공동체가 한 사람의 삶과 예술을 함께 책임진다는 고려인마을의 정체성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고려극장의 살아있는 전설 ‘ 문빅토르’와 그의 작품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광주에서 치료와 회복의 시간을 보내며 문 화백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자신을 예술가 이전에 ‘동포’로 맞아준 마을, 역사와 기억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따뜻한 품은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오랜 고심 끝에 문 화백은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화법과 예술 세계를 미래 세대에 전하고, 미술관을 통해 한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문화예술 교류의 다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자신의 예술을 공동체에 돌려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문 화백의 뜻에 화답해 광주이주 고려인 동포들은 문빅토르 미술관 건립 모금운동에 나섰다. 대기업이나 거창한 재단이 아닌,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1,800여만 원의 기금이 모였다. 금액보다 더 의미 있는 성과는 “이 미술관은 한 예술가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광주 이주 고려인동포 모두의 기억을 품는 집이어야 한다”는 공동체의 공감대였다.

이후 마을은 고려인종합지원센터 2층에 임시 전시공간을 마련한 후 문 화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고려인 역사와 예술을 함께 조명할 수 있는 본격적인 미술관 건립을 단계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또한 고려인문화관과 문빅토르미술관을 중심으로 문빅토르 특별전을 연중 개최해 왔다. 유화와 아크릴화, 삽화, 역사화, 인물화 등을 통해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와 항일정신, 중앙아시아의 삶, 귀환 이후의 이야기가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 전래동화 삽화 작업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 미술사 특강 등 전승 중심의 문화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고려인 미술거장 문빅토르 화백은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첫 도착지였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1951년 태어났다. 1975년 알마티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국립고려극장과 카자흐스탄 풍자잡지 주임미술가로 활동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그의 작품은 카자흐스탄 대통령궁과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미주·유럽·아시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대표작으로는 ‘1937 고려인 강제이주열차’, ‘우수리스크 나의 할아버지’, ‘홍범도 장군’ 등이 있다.

문 화백의 삶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그 자체이자 고려극장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이제 광주 고려인마을은 전설적인 예술가의 남은 생과 예술을 함께 품은 공동체가 됐다. 한 번의 수술, 한 번의 초청, 한 번의 결심이 모여 오늘, 예술이 곧 역사가 되고 공동체가 곧 미술관이 된 독특한 국내외 유일의 역사마을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광주 고려인마을은 앞으로도 문빅토르 화백의 작품과 삶을 통해 고려인의 기억과 연대를 다음 세대와 세계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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