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소순일기자]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시민의 판단을 수치로 드러내고, 권력의 방향을 점검하는 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여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과보다 더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시사의창 전북동부취재본부장 소순일 기자


최근 전북 진안군을 둘러싼 여론조사 논란은 이 기본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안심번호’ 수치 변화가 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진안군의 안심번호 수는 2024년 12월 7,586개, 2025년 5월 7,436개, 7월 7,412개로 큰 변동 없이 유지돼 왔다.

그러나 2025년 8월 말 기준 1만 436개로 급증했다. 불과 한 달 사이 약 3천 개가 늘어난 셈이다. 통신사별로 보면 SK텔레콤 약 600개, KT 약 1,000개, LG유플러스 약 1,400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수치는 해석을 요구한다. 실제 인구 이동이나 자연스러운 회선 증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변화 폭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누군가를 특정하기보다, 이러한 변화가 어떤 경로와 관리 체계 속에서 발생했는지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는 데 있다.

여론조사에 활용되는 안심번호는 통신사와 제도 운영 구조에 의해 생성·관리되며, 그 과정이 불투명할 경우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안심번호 제도는 개인정보 보호를 목적으로 설계됐다. 통신사가 실제 번호를 가상번호로 전환해 제공하고, 조사기관은 이를 통해 조사에 접근한다. 그

러나 이 방식은 통신 회선 정보에 의존한다는 구조적 특성을 갖는다. 주민등록이 아닌 휴대전화 회선 정보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주소 정보 변경이나 회선 관리 방식에 따라 조사 대상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진안군 사례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짧은 기간 동안 대규모 변동이 발생했다면, 그 배경과 경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통신사별 증가 규모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 역시 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이는 특정 행위자를 지목하기 위한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검증해야 할 사안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런 현상이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여론조사 응답 구조의 변화,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응답 양상, 조사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반복돼 왔다. 여론조사가 정치 전략의 일부처럼 인식되는 순간, 공적 제도로서의 신뢰는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는 숫자를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적 판단을 뒷받침하는 제도다.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결과는 설득력을 잃는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작은 의문 하나가 전체 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기 쉽다.

관리 체계가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점검하는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안심번호는 어떤 기준으로 생성되고, 누가 이를 관리하며, 이상 변동이 발생했을 때 어떤 절차로 검증되는가. 통신사와 조사기관, 관리 주체 사이의 책임 구분은 명확한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여론조사는 신뢰의 근거가 아니라 논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론은 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다. 숫자가 늘고 줄어드는 현상 자체보다, 그 변화가 설명되지 않는 구조가 문제다.

진안군 사례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전반을 향한 경고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신뢰를 얻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가 아니라 점검이고, 침묵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설명이다.

시사의창 소순일 기자 antlaan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