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토요일(20일) 송파여성회관 6층 대강당에서 만능 텔런트 이동준의 신곡 발표 콘서트가 열렸다. 이자리에는 ㈜ 거츠 이창훈 회장 ㈜ 동보 ENC 전무이사 임동술 ㈜ 영농법인 대표이사 성낙영 ㈜ 경인 오피시 회장 최규언. 프로복싱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충재 등 평소 친분이 두터운 동료 선후배들이 대거 참석 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1958년 10월 충북 청주출생의 이동준은 83.85.87 세계 선수권 3연패를 달성 해낸 태권도 종목 달인이다. 쾌남아(快男兒) 이동준은 이를 바탕으로 연금 혜택. 군 면제. 태극훈장 백마장을 수상 3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1989년에는 만능 텔런트답게 스크린으로 대뷔 김호선 감독의 서울 무지개에 출연 제27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였다. 임동술의 소개로 알게된 이동준은 2011년 제19회 대한민국 문화 연예 대상 우수연기상을 받으며 스포츠맨의 품격을 높이면서 연예계에서도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 되었다.
이창훈 회장(좌측) 이동준 임동술 성낙영 최규언 회장
며칠전 비운의 천재 복서 이일복이 모처럼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 오찬을 함께 하며 담화를 나눴다. 1958년 2월16일 전남 신인군 비금면에서 태어난 이일복은 수려한 외모 깔끔한 매너를 발판으로 연예인이 되는게 꿈이었다. 유소년기에 상경한 이일복은 1977년 어느날 노량진 동아체육관이 시야에 포착되자 어릴 때 익힌 격투기(태권도)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당시 동아체육관은 그해 MBC 신인왕 미들급에서 우수신인왕을 수상한 박종팔을 위시하여 황준석 오민근 서성인 이상봉 유병래 김환진 등이 포진되어 훈련하고 있었다. 이일복은 복싱 입문 1년 만인 1978년 제31회 전국 신인대회(페더급)에 출전 7연승(4KO)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MVP)상을 들어 올린다. 1978년 천호상전에 입학한 이일복은 제3회 김명복배에 출전 결승에 진출 전남체고 김동길과 일전을 펼친다. 1회 2차례나 죽창 같은 스트레이트를 김동길의 안면에 명중 다운을 탈취 주도권을 잡았지만 후반에 역전을 당해 은메달에 머문다.
여담이지만 생전에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한 고(故) 김동길은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로 첫 번째 고희룡 두 번째 호계천 세 번째로 이일복을 꼽았다. 이 경기를 매의 눈으로 지켜본 극동 프로모션의 러브콜을 받고 계약을 맺은 이일복은 장정구 김철호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 복싱계 대모 심영자 회장 자택(워커힐 APT)에서 합숙 훈련을 한다.
1979년 9월 프로에 대뷔 그해 11월 펼쳐진 제9회 MBC 신인왕전에 출전한 이일복은 5연승(3KO)을 질주 4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복병 안현에게 일격을 당해 탈락한다. 이일복은 그후 홍수환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일취월장 동양 챔피언 후끼다.류(일본) 최문석을 KO로 잡은 복병 어닝. 그라페(필리핀) 김득구와 무승부를 기록한 난적 김종표 등 강자들을 차례로 잡으며 파죽의 9연승 (4KO)을 달리며 세계랭킹에 진입한다. 특히 1981년 3월 베네주엘라에 원정 갈렌데스를 원투 직격탄으로 2회 KO로 잡은 경기는 압권(壓卷)이었다.
WBA J. 라이트급 2위에 오른 이일복은 1981년 12월 27일 동급 1위 알바라도와 세계타이틀 결정전을 갖는다. 그러나 이 경기를 보름 앞두고 사달이 일어난다.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의 3차방어전(마루야마) 파이트 머니 미지급으로 인해 심영자 후원회장과 전호연 극동 회장이 대립각(對立角)을 세운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이일복은 심영자 회장의 지시로 지방으로 잠적한다.
세계챔피언 김철호 (좌측) 장정구 스파링 장면
결국 경기 전날 극적으로 생포(生捕)된 이일복은 이뇨제를 복용하면서 경기 당일 체중을 맞추고 링에 오른다. 결과는 예상대로 판정패였다. 이일복은 그후 8연승을 질주한다. 특히 1983년 6월 필리핀의 게론 포라스를 샌드백 두들기듯 때리면서 완봉승을 거두면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일복에 패한 게론 포라스는 86년 12월 현대 프로모션 간판 김성윤을 12회 KO승을 거두고 동양 타이틀을 획득한 복서였다 그리고 1차방어전에서 12승 (9KO)를 기록한 정은의(88체)를 7회 KO로 잡아낸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다음 경기는 문태진의 빈납으로 공석이 된 동양 J.라이트급 결정전으로 상대는 한차례 꺾은 로드 세큐난(필리핀) 이었다. 이일복은 컨디션 조절 실패로 12회 판정패를 당하면서 사실상 복싱을 접는다. 그는 홍수환도 인정한 천부적인 복싱 자질과 센스를 지닌 복서였다. 그러나 게으른 천재 복서 이일복 그가 밤의 화려함에 취해 코끼리처럼 슬렁슬렁 움직일 때 장정구 김철호는 굳건한 의지와 강인한 노력으로 에베레스트산보다 더 높은 정상을 치타처럼 달려 정복에 성공했다. 그는 복싱 대통령 장정구가 세계 타이틀전을 펼칠 때 챔피언 장정구의 벨트를 들고 선두에서 입장할 때 세계 1위와 챔피언은 엄청난 간극(間隙)으로 벌어짐을 피부로 느꼈다고 전했다.
34전 30승 (17KO) 4패를 기록한 이일복은 4패가 모두 다 여운(餘韻)이 남는 안타까운 패배였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그는 노력하지 않았기에 운(運)도 따르지 않은 자업자득의 업보였다. 그가 만일 그가 훈련에 매진 폭주 기관차처럼 정상을 향해 달렸다면 서강일 김태호 오영호 문태진 최충일 등이 정복하지 못한 마(魔)의 체급 J.라이트급 세계 정상에 올랐을 것이다. 만일 이일복이 지난날 세계 챔피언이란 이력을 쌓았다면 오늘날 이일복의 위상은 김대중 대통령. 한화갑 국무총리.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 신안군이 배출한 4대 인물로 부각 되었을 것이다. 비운의 천재 복서 이일복은 여수에서 개인사업을 하면서 지난 시절 아쉬운 미련을 속 잠바에 깊숙이 감추고 개인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조영섭의스포츠칼럼 #천재복서이일복 #이동준 #이창훈회장 #태극훈장 #신안군비금면 #동아체육관 #장정구 #김명복배 #슈퍼플라이급 #김대중대통령 #천정배 #한화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