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협력해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의 두 번째 인물로, 대한의용군 제1소대장 강위(다른 이름 강신우) 선생의 항일투쟁과 공훈을 조명한다.

강위 선생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생년월일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1921년 12월 4일 연해주 이만전투에서 전사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연해주 독립유공자를 찾아서 ‘강위’/사진=고려인마을 제공

공훈록에 따르면, 1921년 3월 이후 서간도 군비단(軍備團)은 본거지였던 길림성 장백현을 떠나 연해주 이만에 집결했다. 자유시참변 이후 각지로 분산됐던 독립군 가운데 연해주로 모인 인사들과 연합해 독립군 재건과 인재 양성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같은 해 9월 이만에서 고려의용군사의회를 조직하고, 산하에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고려의용군사의회는 이 사관학교에서 교육받은 생도들을 중심으로 대한의용군을 편성했으며, 강위 선생은 이 과정에서 제1소대장으로 임명돼 현장 지휘를 맡았다.

1921년 말, 이만 남쪽 스파스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과 러시아 백군은 하바롭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했다. 첫 공격 지점이 바로 이만이었다.

12월 4일, 대한의용군 제2중대는 이만 방어를 위해 전투에 참가했으며, 일본군의 지원을 받는 백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병력과 장비에서 크게 열세였던 제2중대는 단 3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 전원 전사하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에서 제2중대 중대원 박배근, 그리고 제1소대장이었던 강위 선생은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다 전사하며 순국했다. 이만전투는 연해주 독립군이 처한 극한의 현실과 동시에, 끝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던 독립군의 의지를 보여준 전투로 기록돼 있다.

강위 선생의 이름은 오랜 시간 기록의 이면에 머물러 있었다. 연해주 독립군의 활동은 냉전과 분단, 자료 부족 속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는 선생의 전사 기록과 항일 무장투쟁 공적을 확인해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며 국가 차원의 예우를 완성했다.

한편,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대표 이철수)과 협력해, 국내 입국 후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려인동포 가운데 연해주 독립유공자 후손을 발굴·지원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고려신문이 국내외 사료를 수집·정리해 제작한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서」 자료는 한글본과 러시아어 번역본으로 제작돼 광주 고려인마을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시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후손 확인과 지원 연계가 진행 중이다.

광주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연해주 독립유공자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다시 기록하는 일은 단순한 과거 정리가 아니라,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고려인동포의 정체성과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며 “강위 선생과 같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널리 알리고, 그 후손들이 사회적 보호 속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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