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가 14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에서 '(가칭)대전충남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수도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을 확정해 대전시와 충남도에 공식 제안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정재근 민관협 충남 공동위원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 김태흠 충남도지사, 이장우 대전시장,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이창기 민관협 대전 공동위원장./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모범적 통합’ 발언을 계기로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를 하나의 통합특별시로 묶는 행정통합 논의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의 핵심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간 야당 주도로 추진돼 온 통합 논의에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공감을 표하면서, 정체돼 있던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정치적 셈법도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충남과 대전을 모범적으로 통합해보는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단순한 원론적 차원을 넘어, 정부가 제시한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구상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대통령은 이어 대전·충남 지역구를 둔 여당 의원들과의 오찬 회동도 예고하며, 관련 논의에 힘을 실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현재 대전시와 충남도의 행정통합 추진은 야당인 국민의힘이 주도하고 있다. 대전시장과 충남지사 모두 통합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혀왔고, 세종시·충북도와 함께 ‘충청광역연합’을 구성해 초광역 협력의 틀을 이미 가동 중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교육계 일각에서는 충분한 공론화 없이 속도전에 치중할 경우 행정 혼선과 교육자치 훼손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제기해왔다.

이 같은 입장 차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과도 맞물려 있다. 야당은 통합 추진을 통해 현 지자체장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반면, 여당은 통합 국면이 본격화될 경우 유력 인사를 전면에 내세워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합이 행정 논의를 넘어 선거 구도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가 24일 대전시청 세미나실에서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대전시 제공


실제 대전시는 대통령 발언 직후 통합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전시의회와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는 공동으로 시민 촉구대회를 열어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의 조속한 국회 심의와 처리를 요구했다. 대전시장은 대통령이 통합의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이제는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정치권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국회에서는 이미 관련 법안이 발의돼 행정안전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법안은 대전과 충남이 생활권·경제권·교통망 등에서 사실상 하나의 권역으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행정구역이 나뉘어 중복과 비효율이 발생해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통합특별시 설치를 통해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실현하고, 경제·과학 중심의 초광역 도시를 조성함으로써 수도권 집중 구조에 대응하겠다는 목표도 담겼다.

민관협의체는 통합의 효과로 인구 360만 명 규모의 초광역 혁신 클러스터 형성을 제시하고 있다. 광역교통망 확충과 생활권 통합을 통해 주민 체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지역내총생산 190조 원에 달하는 경제권이 구축되면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라는 이중의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협의체는 지난해 출범 이후 통합 특별법 초안 마련과 주민설명회 개최 등을 통해 여론 형성에 주력해왔다.

역사적 맥락에서도 대전과 충남의 관계는 깊다. 대전은 일제강점기 충남 일부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됐고, 충남도청 역시 오랫동안 대전 중심부에 자리해 왔다. 충남도가 내포신도시로 도청을 이전한 것은 불과 2013년의 일이다. 이런 점에서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단순한 행정 개편을 넘어 ‘재통합’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통합의 명분과 기대 효과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행정조직 개편에 따른 혼선, 교육·재정 자치의 재설계, 주민 동의 확보 등은 통합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가균형발전과 주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가 24일 대전시청 세미나실에서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대전시 제공


내년 7월 통합 출범을 목표로 한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통합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설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역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대전·충남 통합 논의가 정치 이벤트를 넘어, 초광역 균형발전의 성공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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