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내란특검보가 10일 특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초구 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과 김용현, 여인형 등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북 간 무력 충돌 위험을 증대시키는 등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저해했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내란·외환 의혹 수사를 개시한 지 180일 만에 공식적인 수사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사건의 무게중심은 이제 법정으로 완전히 옮겨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권력 핵심부와 군·정보·치안 라인을 포괄한 이번 수사는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27명을 재판에 넘기며 헌정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기록됐다. 특검의 손을 떠난 사건들은 이제 법원의 판단만을 남겨두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가운데 가장 이른 시점에 사법적 결론이 나올 사건으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을 꼽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내달 21일 한 전 총리에 대한 1심 선고를 예정하고 있다. 앞서 결심 공판에서 특검팀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헌법적 책무가 있음에도, 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를 저지하지 않고 사실상 방조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8월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 사건은 비상계엄 관련 내란 사건 가운데 처음으로 내려지는 법원의 본격적인 판단이라는 점에서 향후 재판의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의 ‘본류’로 지목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특검팀이 수사 기간 중 세 차례에 걸쳐 기소를 단행했다. 가장 먼저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사 개시 한 달 만인 지난 7월 기소됐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의 외형만 갖추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만 소집해, 참석하지 못한 9명의 국무위원이 헌법상 보장받는 계엄 심의·의결권을 침해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비상계엄 해제 이후의 행위 역시 주요 쟁점이다. 특검은 계엄 해제가 한덕수 전 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부서로 이뤄진 것처럼 꾸민 허위 계엄 선포문을 작성하고, 이를 대통령기록물이자 공용서류임에도 파쇄·폐기한 혐의를 적용했다. 권한 남용의 시작부터 사후 은폐 시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 전체를 범죄로 구성한 셈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기소 사건 두 건은 현재 정식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른바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 사건은 일반이적 혐의가 적용됐다.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북한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뒤 이를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삼기 위해 지난해 10월경 드론작전사령부에 평양 무인기 침투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일 공판준비기일이 열렸으며, 정식 재판은 내년 1월 12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국가기밀이 다수 포함된 사건 특성상 일부 공판은 비공개로 진행될 전망이다.
또 다른 사건은 위증 혐의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한덕수 전 총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무회의 관련 사항에 대해 허위 증언을 했다고 판단해 지난 4일 추가 기소했다. 이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내달 13일로 예정돼 있다.
내란 혐의의 핵심으로 꼽히는 ‘우두머리’ 사건 역시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윤 전 대통령 사건을 김용현 전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 군·경 수뇌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과 병합해 오는 29일 결심 공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예정대로 절차가 진행될 경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년 2월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 측근과 당시 권력 핵심 인사들에 대한 재판도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계엄 당시 언론사와 특정 시설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에서 심리 중이며, 내달 12일 결심 공판이 예정돼 있다. 같은 재판부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 사건도 함께 맡고 있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윤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전 이미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인지하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왼쪽부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정치권 인사에 대한 재판도 본격화된다. 특검팀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사건은 오는 24일부터 재판이 시작된다. 추 의원은 계엄 선포 당시 여당 원내대표로서 윤 전 대통령 측의 협조 요청을 받은 뒤, 의원총회 장소를 수차례 변경하는 방식으로 다른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역시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돼 형사합의33부에 배당됐으나, 아직 첫 공판준비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특검이 기소한 사건 가운데 첫 선고는 이미 나왔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할 ‘제2수사단’ 구성을 추진하며 정보사 요원으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노 전 사령관은 이와 별도로 김용현 전 장관 등과 함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대규모 수사를 마친 특검은 무대를 떠났지만, 아직도 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 군·정보기관 수장, 현역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피고인들이 법정에 서 있다.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법적·역사적 평가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