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배 대표(좌측) 김민기 관장, 고명안 무술감독


[시사의창=조영섭 기자]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링 설치 전문업체인 <링 만드는 사람들> 대표이사 박춘배 사장이었다. 사연은 경기도 별내에 사는 고명안 영화 무술감독과 함께 오찬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때 필자는 고명안 무술감독 자택이 있는 별내역과 가까운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역에서 함께 만나자고 약속했다. 동구릉역 근처에는 국내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김민기 관장이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속 장소로 적합했다.

약속 장소에서 박춘배 사장, 고명안 무술감독을 만나 함께 김민기 관장이 운영하는 체육관에 도착했다. 1962년 충북 음성태생으로 강직하면서 정도를 걷는 박춘배는 1974년 상경 왕십리에 정착. 그곳에서 프레스 공장에서 직공(職工)으로 일을 하면서 일과가 끝나면 성동중앙체육관에서 복싱을 수학한 경기인 출신이다. 그는 페더급 국내 챔피언 고(故)현수만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1979년 서울 신인대회에 출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16전 12승(3KO) 4패의 평범한 전적을 기록하였다.

국내 최고 링설치 제작사 박춘배 사장(좌측)과 SM 목동 소현우 관장


박춘배가 프레스 공장에 다닐 때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복싱을 배운 동료 복서가 한명 있었다. 그가 훗날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김철호 (대원체)였다. 김철호는 얼마후 프로복싱 유망주로 부각되면서 직장을 접고 박춘배와 헤어졌다. 박춘배가 현역 시절 1층 중앙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울 때 3층에 위치한 태권도 체육관에서 훈련한 수련생이 바로 2살 연상의 고명안 무술감독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두 분은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박춘배는 복싱을 접고 1987년부터 왕십리에서 복싱링을 포함한 복싱용품 판매업을 시작 링 제작 분야에선 <국내 최고>라는 명성을 얻으면서 38년째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월평균 15개 전후의 링 설치 주문이 밀려와 그는 월평균 7.8백만의 수익을 올렸다. 또한 절정기인 25년 전에는 다이어트 열풍에 편승 천만원대 고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달에 링 철거만 6, 7개 주문이 들어오는 역현상(逆現象)으로 최악의 상태에 직면 중고 용품과 월세만 눈처럼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침체와 맞물려 링 설치 및 복싱용품 대금을 재때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어 현재는 평수를 줄여 답십리로 업체를 이전 재기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이날 박춘배 사장과 동행한 무술감독 고명안 (용인대)은 태권도 7단 합기도 8단도 유단자다. 또한 그는 중앙체육관에서 복싱에 입문 프로테스트 자격증도 취득 1987년 9월 IBF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한 최창호(극동) 스파링 파트너로 활약할 정도로 복싱 스펙도 뛰어난 종합무술인이다. 고명안 감독은 1989년 영등포에 종합 무술 체육관을 개관 <텔런트 이훈> 정흥채 터보 김종국 등에게 복싱과 종합 무술을 지도 명성을 높혔다.

무술감독 고명안과 복싱 수제자 텔런트 이훈


특히 복싱을 집중 지도한 텔런트 이훈은 2019년 <TV는 사랑을 실고> 라는 프로에서 고명안 무술감독과 재회(再會)하면서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잊지 못할 사부(師傅)님이라고 고백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프로에서 이훈의 아버지가 암 수술을 받고 퇴원했을 때 밀린 병원비를 대신 지불 해준 고마운 사부님이 바로 고명안 무술감독 이라고 이훈은 전했다. 스턴트 코리아 대표인 고명안 감독은 mbc 미니시리즈 남자의 향기 sbs 특별기획 꿈의 궁전 등에서 무술감독을 맡아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영화감독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 핏불테리아, 인생은 술래잡기, 쌈닭 등을 감독하기도 했다.

1971년 해남 출신의 김민기는 서울체고 한국체대 대전중구청을 거쳐 15년간 현역 생활을 하면서 국내에서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왼손잡이 복서다. 그는 1986년 장안중 3학년때 제15회 소년체전 코크급(45Kg)을 석권하면서 8체급 신화 탄생 서문(序文)을 열었다. 이를 발판으로 미세한 화선지 위에 떨어진 먹물이 골고루 번져나가듯 7체급을 석권 영역을 확대시킨 김민기는 1997년 제78회 전국체전에서 슈퍼헤비급 결승전에서 거함(巨艦) 백현만을 상대한다.

8체급을 석권한 김민기관장 성적표


백현만은 아시아선수권 2연패 아시안게임 2연패 88 서울올림픽 슈퍼헤비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슈퍼스타였다. 이대결 에서 대전 준구청(감독 한정훈) 소속의 왼손잡이 복서 김민기는 피지컬의 현격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백현만을 매회 샌드백처럼 두들긴다. 결국 4회 RSC로 제압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국내 최초로 8체급을 석권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송광식 김동길이 기록한 4체급 신창석이 기록한 5체급 석권 기록을 손쉽게 깨면서 창출한 진기록이었다. 당시 정밀기계(精密機械)라 불릴 정도로 정교한 복싱을 구사한 타점 높은 복서 김민기가 근자(近者)에 출현했다면 실업팀 최고연봉 1억 5천은 가볍게 추월할수 있는 수준의 하이테크한 복서였다. 담화를 마치고 오찬을 하기 위해 인근에 위치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음식점에서 김민기 관장 부부


이곳은 음식 솜씨가 발군(拔群)인 김민기 관장 아내분께서 얼마전 창업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식당에서 마주한 국내 최고 링 설치 전문업체 박춘배 사장 그리고 국내 최고 무술감독 고명안 스턴트 코리아 대표. 국내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김민기 관장 그리고 음식 솜씨가 매우 뛰어난 김민기 관장 아내분을 지켜 보면서 고(故) 이어령 교수의 명언이 떠올랐다. 100명의 사람을 한곳에 모아놓고 달리기를 시키면 1등부터 100등까지 순위가 결정된다. 그러나 각자의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자기 길로 직행하면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1등을 할수 있다는 지론(知論)이다.

우리 일행은 헤어지면서 내년 봄에 이곳에서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졌다. 사랑의 가치는 이별속에서 배우고 웃음의 가치는 눈물속에서 경험하고 행복의 가치는 슬픔 속에서 느낀다는 말이있다. 신년에도 실패로부터 학습효과(學習效果)를 체험하면서도 굴 치 않고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모두의 한해가 되길 바란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조영섭의스포츠칼럼 #김민기 #왼손잡이복서 #고명안무술감독 #이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