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교 / 시사칼럼니스트


유튜브를 켜는 순간, 청년 앞에 펼쳐지는 것은 ‘정보의 바다’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알고리즘이 골라준 파도일 뿐이다. 그리고 그 파도는 점점 깊어지고, 점점 거세지고, 점점 더 극단적이다.

최근 여러 연구들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관심을 단순히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더 자극적이고 더 극단적인 콘텐츠로 사용자를 밀어 넣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클릭 수와 시청시간이 수익의 핵심인 플랫폼 구조가, 결국 청년들을 ‘더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는 콘텐츠’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콘텐츠가 대부분 선동, 혐오, 왜곡, 극우적 내거티브라는 점이다.

1. 극단화는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다

유튜브는 사용자가 한 번 클릭한 영상을 기준으로 ‘비슷한 영상’, ‘더 자극적인 영상’을 연쇄적으로 추천한다.
예를 들어, 사회 이슈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 영상을 클릭하면 이후 추천 목록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팩트체크”를 표방하지만 편향된 영상

특정 정치세력이나 인물을 ‘악마화’하는 영상

“진실을 가르쳐주겠다”는 음모론적 영상

분노를 자극하는 극우 정치 콘텐츠

이것이 반복되면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거대한 ‘정보의 굴레’ 속에 갇혀 버린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균형이 사라지고, 결국 현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왜곡된다.

2. 청년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이유

청년세대는 스마트폰 사용량이 가장 높고, 유튜브를 정보 습득 경로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사회에서 분노·불만을 자극하는 메시지가 더욱 쉽게 먹힌다는 점이다.

“나라가 망했다”

“정치인은 다 썩었다”

“기득권이 너희를 착취한다”

“강력한 지도자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는 청년의 불안을 파고들어 급속히 확산된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지역적 소외·정치적 냉소가 쌓인 청년에게, 극단적 콘텐츠는 ‘통쾌함’이라는 감정적 보상을 준다.
그 순간, 알고리즘은 판단한다.

“이 콘텐츠를 더 보여줘라.”

이렇게 청년은 점점 더 깊은 극단의 계곡으로 밀려난다.

3. ‘극우화’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생존 문제

극우화·극단화된 청년층은 특정 정치세력이 원하는 ‘즉각적인 지지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약해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다.

타협과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한다.

가짜뉴스와 혐오 콘텐츠가 신념화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 관용, 사실에 대한 존중이라는 보이지 않는 토대 위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알고리즘에 의해 극단으로 내몰린 사회는 이 토대를 잃어버린다.

4. 해법은 단순하지 않지만, 분명한 방향이 있다

우리는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힘을 단숨에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접근은 반드시 필요하다.

① 플랫폼 책임 강화

알고리즘 투명성, 추천 시스템 점검, 극단적 콘텐츠 차단 등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법과 제도로 요구해야 한다.

② 청년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학교·지자체·시민단체가 함께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왜곡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③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콘텐츠 확충

정부·언론·교육기관이
청년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④ 지역 기반 공동체 회복

고립된 청년은 알고리즘의 먹잇감이 된다.
지역사회에서 정치·경제·문화 활동을 통해
청년이 사람과 대면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경험을 넓혀야 한다.

결론|알고리즘은 중립이 아니다

알고리즘은 ‘청년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관심을 이용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기계적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청년을 극단화의 길로 밀어 넣는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청년의 판단 능력을 갉아먹는 플랫폼의 논리,
그리고 이를 방치한 사회적 무관심이다.

청년을 지키는 것은
정치 이전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