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 강제 이주의 한 세기가 남긴 아픔과 희망을 극작가 김해운(1909–1981)의 삶과 작품을 통해 다시 되살리고 있다.

고려인문화관은 고려극장 100년사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해운과 그의 대표 항일 희곡 〈동북선〉을 중심으로 기록 정리 작업을 진행하며, 디아스포라 연극의 문화·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김해운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범한 한민족 최초의 우리말 전문연극극장 ‘고려극장’ 창립 멤버로서 극작·연기·연출을 두루 맡아 극장의 초석을 다졌다.

망명과 유랑 속 항일 기록자 ‘김해운’(왼쪽 맨 위)/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이후 1939년 타쉬켄트 조선극장 설립에 참여했고, 1950년에는 사할린 조선극장으로 건너가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의 희곡 8편은 현재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돼 있다.

김해운의 대표작 〈동북선〉은 1935년 재소고려인 연극사에서 ‘봄꽃이 만개한 해’로 불릴 만큼 활기를 띠던 시기에 발표된 항일극이다. 작품은 일제가 청진–웅기 간 철도(동북선) 부설을 이유로 조선 노동자를 강제 동원해 가혹하게 착취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다.

춥고 척박한 시베리아 벌판에서 삶을 이어가던 조선 노동자들이 일본의 수탈과 탄압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당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은 강제이주 이전은 물론 중앙아시아·사할린 정착 이후에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르며 고려인 공동체 내부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항일 서사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초 사할린 조선극장에서 촬영된 희귀사진에는 극장장 김기철(1907–1993), 극작가 김해운, 연출가 송 따찌야나가 함께 담겨 있다. 김기철은 고려인을 대표하는 1세대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1948년 사할린 조선극장 초대 극장장을 역임했고, 이후 한글신문 《레닌기치》 문학부장을 맡아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세 사람의 협업은 전쟁·이주·분단으로 흔들리던 고려인 사회에서도 한국어 연극 전통을 지켜낸 중요한 문화적 연결고리였다. 이들은 사할린 조선극장을 중심으로 고려인 공동체의 문화예술 활동을 크게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현재 김해운 기록물 8편을 전시하고 있는 고려인문화관이 보관 중인 국가지정 기록물은 고려인 문인·예술가의 소설, 희곡, 가요필사본 등 육필원고 21권, 고려극장 80여 년의 역사를 담은 사진첩 2권 등 총 23권이다.

해당 자료는 2020년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지정되며, 디아스포라 문화유산의 역사·학술적 가치를 공인받았다.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는 유진오 제헌헌법 초고(1호), 이승만 대통령 기록물(3호),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4호), 도산 안창호 미주 국민회 기록물(5호), 3·1운동 독립선언서류(12호) 등에 이어 지정된 것으로, 해외 고려인 공동체 기록물이 국가 기록물로 등재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김해운의 〈동북선〉은 디아스포라 공동체 내부에서 항일정신과 정체성을 지켜낸 상징적 작품”이라며 “이번 재조명 작업이 해외 동포 예술사의 공백을 메우고, 고려인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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