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2025년 12월호=양상문 작가] 겨울의 끝자락, 오래된 집 담장 아래에 연탄 더미가 조용히 쌓여 있다. 새벽마다 불씨를 일으키며 사람의 하루를 데우던 존재는 이제는 기억 속 한편으로 밀려난 채, 검은 침묵으로 남아 있다.
손끝에 묻어나는 검은 그을음, 피워 올리던 불 냄새, 그 모든 것이 한때는 생의 냄새였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 냄새로 하루를 맞는다. 그 냄새 속에는 삶의 고단함보다 더 깊은 온기가 있다.
연탄을 한 장, 한 장 옮길 때마다 바람은 덜 스미고, 누군가의 방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그 무거운 원형 속에는 묵묵히 견뎌온 사람들의 겨울이 담겨 있다.
연탄은 말이 없다. 타오를 뿐, 다 타면 조용히 재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짧은 생애 동안 누군가의 밤을 밝히고, 숨결을 이어주며 한 세대의 시간을 온기로 채운다.
시대는 변했고, 난방의 방식도 세련되어졌지만 연탄이 남긴 온기만큼은 여전히 사람들 사이를 돌고 있다. 그 온기는 겨울을 견디게 하고, 이웃의 문틈 사이로 스며들며, 세상과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된다.
나는 종종 그 검은 원의 표면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 마음속에도 그런 온기가 남아 있을까.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타오르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그 오래된 이름.
연탄더미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버티게 한 불씨이자, 세월이 남긴 가장 따뜻한 기억이다.
사람의 마음도, 결국 그런 연탄 한 장 같아서 자신을 조금씩 태워야 비로소 누군가의 추위를 덜어준다. 오늘도 그 검은 온기를 떠올린다. 잿빛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무언가가 살아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어쩌면 우리가 다시 사람으로 서게 하는 불씨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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