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가 2023년 9월 12일 근정전 어좌에 앉은 일이 알려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앞서 김건희는 종묘의 망묘루(왕들이 종묘를 바라본다는 뜻인데 사당의 부속건물로 제사를 준비하는 누마루 집)를 외국 지인들을 위한 사적 이용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었다. 김건희에게 금 거북이를 바치고 국가 교육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된 이배용(역사학과 교수 출신)은 근정전 어좌에 앉으면 그 시야나 소리 전달이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해설을 할 때 김건희가 어좌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서 어좌에 앉았다고 하였다. 당시 동행하였던 문화체육 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정용석에 따르면 이배용이 김건희에게 어좌에 앉아보라고 권했다는 말도 있다. 이배용이 역사학자라면 임금이 정사를 보는 전각이나 공식적인 의례나 모임, 혹은 업무를 보는 편전에 임금의 어좌가 있고, 그 어좌의 권위와 권위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는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특히 근정전 어좌의 중요성과 그 권위는 역사학자로서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시사의창 2025년 12월호=민관홍 궁 해설사] 임금의 자리는 북배남면(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것)이며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은 임금의 자리인 북쪽에 있어서 북궐이라 부르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뇌물로 바친 금 거북이는 금전적 가치보다는 북쪽의 공간을 지키는 사신 중에 현무라는 신묘한 거북이를 상징하는 것이다.
왕의 자리인 북배남면과 북쪽을 상징하며 북쪽의 공간을 지배하고 지키는 현무라는 점에서 중의적인 의미를 김건희에게 설명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야 근정전 닫집(대웅전에 석가 본존불이 있는 곳을 높여서 그 위엄과 자비를 강조하기 위해 실내에 지은 높은 집을 임금에게 적용한 집)의 어좌에 앉기를 김건희에게 권하였다는 이유와 연관성이 있는 것이 설명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경회루 2층으로 추정되는 한옥 건물에서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과 함께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양문석 의원실 제공]
경복궁 근정전 어좌의 의미와 어좌의 무게
경복궁 근정전의 의미는 지난 ‘역사 이야기’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어좌의 중요성과 어좌의 무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언급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1392년 조선왕조를 열고 1395년 고려의 남경에 조선의 도읍지를 정하였는데 한양도성을 5부 52방으로 설계하고 경복궁의 이름과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의 작명을 한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시경에서 경복(景福)을 발췌하여 경복궁을 이름 지었는데 왕이 대대손손 큰 복을 받으려면 정치적으로는 덕치로 국가의 안정을, 경제적으로는 귀한 술에 흠뻑 취할 정도의 풍요함을 누릴 민생의 안정을 누려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있다.
경복이 ‘조선 정궁의 슬로건’이라면 북쪽으로 일직선상에 있는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은 왕의 업무 흐름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문과 주요 전각에는 편액을 걸고 왕이 경계하고 해야 할 일을 각인하라는 것이었다.
근정전(勤政殿)은 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일을 하는 바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과로사로 순직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하지만 일의 원인과 결과를 잘 알아야 하는 것까지 왕에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전(思政殿)에서는 왕이 근정으로 국사와 인사를 함에 있어 숙고하고 또 숙고함을 새기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야 깊은 밤에 강녕전(임금의 침전)에서 잠에 들고, 서경 홍범의 오복인 장수, 부, 강녕, 유호덕(덕을 행하고 권하는 삶), 고종명(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정도전은 강조하였다.
왕은 백성에게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정사를 해야 하는데 근정과 사정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혼군(어리석고 무도한 군주)은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왕에게 무서운 경고를 하는 것이다.
왕이 어좌에 오르는 것을 등극이라 하는데 이는 하늘의 질서를 관장하는 북극성처럼 왕을 통해 하늘의 질서를 지상에 구현하는 것을 의미할 정도로 그 책임이 막중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이 혹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그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라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질서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순행하는 북극성처럼 그 질서를 땅에 구현하는 왕이 치밀하고 부지런하지 못하고, 그 권력을 왕 놀음, 권력 놀음에만 쓴다면 그 나라는 도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왕이 아닌 자가 어좌에 앉는다는 것은 삼족을 멸할 역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심리적으로 지배(가스라이팅)하며 국정을 농단한 김건희의 어좌 착석은 역심을 품은 역도이며 현재 시점에서 해석하면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장기 독재자의 길을 가려 한다는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가 경호원 없이 10여 분간 머문 것으로 알려진 명성왕후의 침실이 있는 경복궁 건청궁. ©연합뉴스
어좌의 무게를 감당할 사람은 누구인가?
정도전이 철저한 성리학자로 민본을 강조하며 왕에게 그 기본을 해야 함을 각인시키기 위해 경복궁과 주요 전각에 작명을 하여 편액을 걸어놓았다면 광화문(光化門)과 교태전(交泰殿)은 세종대왕 시대 집현전 학자에 의해 작명되었다.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왕조의 통치이념과 정체성을 집현전 학자들도 이어받아 광화문과 교태전의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1 경복궁’ 편에는 광의 출전과 화의 출전을 밝혀 놓았는데 광(光)은 서경 홍범 편에 뭇 백성이 지극히 밝혀 말 한 바를 행하면 왕의 빛에 이를 것이고 화(化)는 주역 건괘를 풀이하면서 나오는 구절로 세상을 지극히 이롭게 하여도 자랑을 하지 않으면 덕이 넓어 교화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광과 화의 출전은 정도전이 임금의 왕조가 안녕과 번영을 누리는 전제조건을 경복궁과 근정전의 이름 짓기에 보여주었듯이 집현전 학자의 광화문 이름 짓기에도 임금이 요순보다 더 나은 광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걸어 둔 것이다.
임금의 덕치가 온 세상을 밝히고 왕조의 안녕과 번영을 누리는 조건은 많은 백성이 지극히 원하는 목소리를 잘 들어서 행해야 하며, 세상을 지극히 이롭게 하고도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한 나라 최고 지도자뿐 아니라 지도층에게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교태전의 교태(交泰)는 주역의 11번째 지천태 괘로 하늘인 건(乾)이 아래, 땅인 곤(坤)이 위에 있는 것인데 하늘은 올라가는 성질이 있고 땅은 내려가는 성질이 있으니 가장 큰 음과 양이 크게 화합하고 태평성대가 지속된다는 괘이다. 이는 왕이 아래 위치하고 낮은 자세로 백성을 우러러보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날씨가 안 좋아 흉년일 때도, 이상 기후 현상이 일어날 때도, 심지어 일식과 월식을 과학적으로 예보할 수 있어도 일식이나 월식 일에 자신의 부덕을 하늘에 용서하며 근신을 하였다. 하물며 “대한 민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헌법에 있음에도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외교적으로는 국익을 해치는 자해행위를 하며 그러한 행위를 부추기는 각료들이 득실거리는 정부라면 맹자의 역성 혁명론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퇴출되어야 할 것이다.
어좌의 무게를 크게 느끼는 왕이나 지도층이 경복(큰 복)을 위해 광화의 국민 소통과 실행, 겸손한 태도로 근정과 사정을 해야 강녕과 고종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5년 동안 국가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그러한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막중한 무게를 느끼고 그 권한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어좌의 무게와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국내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안정과 대외적으로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외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을 겨를도 없이 과로로 순직할 수 있다는 자세로 국가 대계를 세워 행하고, 사회적 아픔에 공감할 수 있으며 인적·자연적 재해에 신속한 대책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종묘 앞 고층건물 허용을 두고 서울시와 정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나가는 글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은 고종 때 대원군에 의해 중건(1865~1868)되기까지 273년간 폐허로 있었다.
정도전이 왕이 해야 할 일들과 철학을 경복의 전제조건으로 작명하고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전각에 편액을 달아 업무의 흐름도처럼 왕에게 각인하게 하였다. 집현전 학자들의 광화문과 교태전의 의미도 그에 못지않음을 앞서 살펴보았다.
고종 때 경복궁 중건의 총책임자 대원군은 조선 초기에 건조된 근정전에 왕권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상하 월대에 특별한 의미가 담긴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돌난간의 동서남북 난간 돌기둥에는 공간을 관장하는 사신과 동서남북 시간과 방향을 나타내는 십이지신 중에 토끼, 닭, 말, 쥐를 28수 별자리 중에 동서남북 칠수에 소속된 낙과 교룡, 유인원과 상상의 이리 랑과 상상의 동물 들개 안과 해치 등 14쌍 28수를 배치하여 동서남북의 칠수 합 28수를 상징하였다.
이는 근정전 보개천장에 매달려 있는 금박 황룡 한 쌍이 칠조룡(발톱이 일곱 개 있는 용)으로 한 쌍의 앞 발 발톱의 총 숫자 28개는 28수가 북극성을 상징하는 여의주를 보필하고 있는 것과 같다.
청나라의 눈치를 보며 청나라 건륭제 홍력(弘曆)의 피휘(왕의 이름과 같은 한자를 피하는 것)로 홍례문(弘禮門)을 흥례문(興禮門)으로 바꾼 것으로 볼 때 황제 등극의 의미가 있는 북극성과 28수의 상징을 형상화하여 월대와 보개천장에 남긴 이유를 기록에 남길 수 없었다는 추론은 가능하다.
대원군은 고종을 제후가 아닌 어좌에 등극하는 황제로 북극성에 비유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러므로서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높이려는 은밀한 설계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은밀하게 그러한 설계와 장치를 하였어도 정도전이나 집현전 학자들이 경복궁과 중요 전각에 이름을 짓고 편액을 걸어놓은 의미를 먼저 새기고 체득하여야 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그 의미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애민과 국익을 위한 진심과 충심이 없다면 하늘의 질서든 땅의 질서든 엉망이 되어 나라는 절단나고 국민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연산군조차 후대에 기록될 역사가 두렵다고 말했고, 뉴라이트 계열의 사람들도 역사의 무서움을 말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말조차 장식품으로 자기합리화를 위한 말장난에 불과한 자들이다.
국가 유산으로 남은 조선왕조의 어좌에 왕의 기운을 받기 위해 앉는 일보다 그 의미를 깊이 새기는 게 중요하다. 지난 달에 서울 개발업자인지 서울시장인지 모르는 자가 종묘 앞에 142미터 고층빌딩을 짓게 허가를 내주었다.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취소가 우려된다는데 국가 유산의 보존과 보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기를 바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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