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의 산실,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5년 12월호=김문교 시사칼럼니스트]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는 숱한 영광과 상처, 그리고 수많은 실패와 적은 성공의 기록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치인”이라는 표현을 쉽게 쓰지만 정작 그 의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허상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 정치의 질곡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국민에게 남긴 성과와 유산이 무엇이냐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진정한 성공은 생각보다 드물다.
정치인의 성공은 단순히 선거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선거는 ‘잠정적 합의에 이른 권력의 위임’일 뿐, 국민이 느끼는 진짜 성공은 권력을 갖고 무엇을 했는가에서 비로소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순간을 성공으로 착각하거나, 권력의 방패막이 뒤에 숨어 국민을 외면한 채 사익을 추구하는 행태가 반복되어 왔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깊은 병이자, 정치인들이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첫째, 국민의 눈높이를 앞질러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낸 정치인이다. 한국은 늘 빠르게 변화해왔다.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민주화에서 정보화로, 그리고 지금은 AI·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읽지 못한 정치인은 결국 국민과 어긋난다. 반면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해 국가의 방향성을 새로 설정한 정치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높아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방분권·균형발전’ 의제, 김대중 전 대통령의 ‘IT혁신·벤처육성’, 최근 이재명 정부의 ‘AI 기본사회·과학기반 국정운영’ 등이 미래를 향한 방향 설정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는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반복적인 장면은 ‘권력의 사유화’다. 권력을 쥐면 제왕처럼 군림하려 하고, 사적 네트워크와 사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다가 결국 몰락한다. 최근 드러난 내란 모의, 국정 개입, 권한 남용 사건들이 국민을 분노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위법’ 때문만이 아니라 권력자가 국민의 신뢰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정치인은 권력을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다룬다. 그는 권력을 국민의 삶을 바꾸는 도구로 사용하고, 법과 제도를 존중하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엄격하다.
셋째,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다. 정치는 결국 ‘신뢰’의 문제이다. 아무리 큰 비전이라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공허한 슬로건일 뿐이다. 선거 때는 민생을 외치다가도 당선 이후에는 당리당략으로 돌아가는 정치가 오늘날 정치 혐오의 가장 큰 원인이다. 성공한 정치인은 오히려 자신의 말 때문에 스스로를 묶어버린다. 스스로 부과한 짐을 책임으로 짊어지고 결과로 답한다. 그래서 그의 실패조차 국민에게 존중받는다.
넷째, 평가를 시간에 맡길 줄 아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진정한 평가는 대부분 퇴임 이후에 이루어진다. 권력자의 말보다 행동이, 지지층의 열광보다 정책의 지속성이 더 오래 남는다.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 정치인은 결국 국가 시스템과 국민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남긴 사람이다. 단기적 인기보다 장기적 국가 이익을 우선한 정치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재평가된다. 반대로 자신의 안위와 정파적 승리만 좇은 정치인은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잊히거나 역사 속에서 오류로 기록된다.
다섯째, 위기의 순간에 국가를 지켜낸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위기는 반복되었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국정농단, 그리고 최근 내란사태까지. 위기 앞에서 국가를 지켜낸 정치인, 흔들리는 국민을 안정시키고 정확한 결정을 내린 정치인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도 존경을 받는다. 위기 때 권력을 사유화하거나 정치 보복에 몰두한 정권은 국민에게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위기 속에서 ‘국가’를 우선한 정치인, ‘국민’을 기준으로 판단한 정치인만이 성공한 정치인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반대자마저 인정하게 만드는 정치인이다.성공한 정치인은 지지층만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를 포용할 줄 알고, 갈등을 조정할 줄 아는 능력이 국가 운영의 핵심이다. 정치적 반대자도 그의 진정성·능력·겸허함을 인정하게 만드는 정치인은 결국 국민 전체의 지도자로 남는다. 이는 단순한 화합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성공한 정치인은 ‘국민의 마음에 남는 사람’이다
권력은 순간이지만 평가는 영원하다. 성공한 정치인은 높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사람이다.
그가 떠난 뒤에도 국민이 그의 정책을 말하고, 그가 남긴 변화가 국가와 지역을 움직이고, 그의 진정성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를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정치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이 정치인의 이름 앞에서 한숨이 아닌 희망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희망을 만드는 정치인이 더 많이 등장할 때,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도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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