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역·해운 강국이다. 국가 경제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수출입 물동량의 99.7%가 바다를 통해 이동한다. 에너지·식량·광물·부품·완제품 등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는 거의 모두 넓은 바다를 지나온다. 바다는 그 자체가 국가의 혈관이다. 그럼에도 한국 해군은 지난 수십 년간 연안 중심의 ‘근해해군’ 체계를 유지해 왔다. 분단 이후 육지 위협에 집중해야 했던 특수한 안보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략적 구조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북핵·SLBM 위협, 중국의 해양 팽창, 일본의 재무장,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영향력 재확대 등 복합적 해양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 해군의 전략적 목표는 자연스럽게 핵추진 잠수함(SSN) 확보와 대양해군(Blue-water Navy) 건설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동해상에서 열린 함대급 해상 기동훈련에서 함정들이 전술기동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시사의창 2025년 12월호=송상교 기자] 최근에는 한국 해군 전략의 지형 자체를 바꾸는 중대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원칙적으로 협력한다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결정은 한국 해군이 수십 년간 꿈꿔왔던 핵잠수함 확보의 문을 열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전략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연안에 머물 수 없다. 대양으로 나아가는 해군, 즉 ‘대양해군(Blue-water Navy)’ 체계 구축이 불가피한 전략 과제다. 그 중심에는 핵추진 잠수함(SSN)과 항공모함, 그리고 기동함대가 놓여 있다.

지난 11월10일 동해상에서 실시한 '해군 함대급 해상 기동훈련'에서 함정들이 전술기동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왜 한국 해군은 핵추진 잠수함(SSN)을 필요로 하는가
북한은 지난 10년간 SLBM을 반복 시험하며 핵·미사일 전력의 은폐성·기습성을 비약적으로 강화했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탐지·예측이 어렵고, 기습성이 극대화 되는 무기이다.
문제는 디젤잠수함(SSK)의 한계다. 디젤잠수함(SSK)는 공기 의존 특성상 장기 잠항이 어렵고 속도도 제한적이다. 북한의 SLBM 탑재 잠수함을 실시간 감시·추적하기에는 전력적·기술적·지속성 측면에서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핵추진 잠수함(SSN)은 사실상 무제한 잠항, 고속 기동, 한반도 주변 장기 체류 능력을 갖추어 북한 SLBM 전력을 압박하고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실시간 수중 감시 플랫폼이다.
중국은 이미 항공모함 2척을 실전 배치했고 최신형 항모를 추가 건조 중이다. 핵잠수함·전략잠수함·대형 구축함·상륙함 등 총 70척 이상의 잠수함·주력함 전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은 항모급 함재기 도입도 추진 중이다.
일본은 과거 태평양전쟁에서 항모전쟁의 본질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나라다. 기동함대 기반의 해상 전력을 늘리며, 최근 헬기호위함을 사실상 경항모로 개조하고 F-35B 도입을 추진하는 등 사실상 항모국으로 재편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연안 중심 전략에 머문다면 해양력 공백과 전략적 취약성이 불가피하다.
대한민국의 에너지·자원·식량·수출품 대부분은 중동–인도양–말라카 해협–동해로 이어지는 초장거리 해상항로를 경유한다.
해상교통로는 국제분쟁·강대국 경쟁·해적·테러·재해 등 다양한 위험에 놓여 있다. 대양에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경제 기반 전체가 흔들린다.
핵추진 잠수함(SSN)은 이러한 해상 생명선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방패’가 된다.

지난 10월 22일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에서 공개한 장보고‑Ⅲ Batch‑Ⅱ 1번함 장영실함 [해군제공]


기술은 이미 준비됐고, 외교는 문이 열렸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 SMR 개발 능력, 초정밀 조선 능력을 모두 갖춘 국가다.
도산안창호급(3,700톤) 잠수함 건조를 통해 고난도 수직발사관(VLS) 탑재 능력, 장기 작전 능력, 통합 전투체계 구축을 이미 입증했다.
전문가들이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SSN)을 ‘가장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국방사업’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핵잠수함 건조의 가장 큰 난제는 한미 원자력협정(123협정)이었다. 군사용 고농축우라늄(HEU) 생산·공급 문제는 한국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25년 1월 29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LEU 기반 핵잠수함 건조를 위한 양국 협력을 공식 합의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합의는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SSN) 프로그램의 공식 정책화, LEU 기반 해군 원자로 협력 가능성 확보, 123협정 조정 및 절차적 협력 기반 확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숙원 사업이던 핵추진 잠수함(SSN) 확보가 기술 가능성 → 외교적 동의 → 정책 실행 준비 단계로 넘어간 역사적 분기점이다.

•예상되는 한국형 핵추진잠수함(SSN) 제원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SSN)은 단순한 함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전략적 억제력과 해양 주권을 지탱하는 ‘국가전략자산’이 될 것이다.

대양해군 전략의 핵심…핵잠수함–항공모함–기동함대의 ‘해양 삼각축’
대한민국이 대양해군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구축해야 할 3대 전략축은 핵추진 잠수함(SSN), 항모전단, 해군기동함대사령부다.
2025년 2월 1일 창설된 해군기동함대사령부는 한국 해군 전략의 대전환이자, 1989년 전략기동함대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이후 36년 만에 실현된 결실이다.
기동함대는 해상 기반 한국형 3축체계를 완성하는 핵심 전력으로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억제, 주요 해상교통로 보호, 청해부대 파병 등 국제안보 기여 임무까지 수행하게 된다. 특히 경항모와 중형항모, KDDX·이지스 구축함, 대형 보급함으로 구성될 전단 체계는 대한민국이 국제 해양안보에서 ‘책임 있는 중견 해양국가’로 역할을 확대해 가는 실질적 토대가 된다.
항모전단을 보호하고 적 잠수함을 추적·무력화하는 핵심이 핵추진잠수함(SSN)이다. 핵추진잠수함(SSN)은 적 잠수함 추적, 정보감시정찰(ISR), 장기 잠항 작전의 핵심이다. 항모전단이 구축되더라도 핵추진잠수함(SSN) 없이는 원양 작전의 생존력과 지속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항모는 바다 위의 이동식 공군기지다. 현대전에서 항공전력은 필수이며, 그 항공전력의 기초가 바로 항모발진 함재기다.
장거리 해상초계기(P-8급), 원양보급함, AUV·UUV 기반 무인전력, 극초음속 타격체계 등은 대양해군 체계를 완성하는 비대칭 전력이다.

‘장보고-Ⅲ 배치-Ⅱ’ 주요 제원 ©연합뉴스


대양해군을 떠받치는 세 기둥…인력·산업·재정 혁신
핵잠수함은 ‘원자로를 품은 군함’이다. 원자로 운영·정비·안전관리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해군사관학교 핵공학 트랙 신설, 원자로 안전운영 자격체계 마련, 항모 갑판요원·함재기 조종사 훈련체계 구축이 장기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한국 조선·원전 기술력을 해군 전력에 통합해 ‘해군–조선–원전 복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군사력뿐 아니라 차세대 원전·극지·해양산업에도 파급력을 가진다.
핵잠수함 1척 4~6조 원, 경항모 2조 원. 수십 조 원이 투자되는 사업이지만, 15~20년에 걸쳐 분산되는 구조다. 국가 경제 규모와 국방비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
정부와 국회는 단기 예산 논쟁을 넘어 20년 장기 재정계획을 법제화해야 한다.

HD현대의 미래형 전투함 [HD현대 동영상 화면 캡처]


한국 해군 미래 시나리오(2025~2050)
▒ 1단계(2025~2030): 기반 구축기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핵잠수함 도입 협상 공식화 및 착수
▶KDDX 1~2척 배치
▶경항모 기본설계·착공

2025년은 한국 해군 전략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원년이다. 우선 해군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을 통해 항모·핵잠수함·KDDX를 중심으로 한 기동전단 운용 체계가 공식화 된다.
같은 시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형 핵잠수함 도입 협상이 공식화되고 사업 착수 단계로 넘어가며, 이는 해군 전력 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이 된다.
또한 KDDX 1~2척이 실전 배치되며 한국형 이지스급 방공·탄도탄 대응 능력이 강화된다.
경항모 사업도 기본설계를 완료하고 착공 단계에 돌입함으로써 향후 항모전단 창설의 실질적 첫발을 내딛는다.
핵심 키워드는 조직 창설·핵심사업 착수·차세대 구축함 실전 배치 ·항모 건조 개시이다.

▒ 2단계(2030~2040): 전력화 단계
▶한국형 핵추진잠수함(SSN) 1~2척 취역
▶경항모 → 중형항모 확장
▶SMR 기반 해군 원자로 실용화
2030년대는 한국 해군이 실질적 대양작전 능력을 확보하는 시기이다. 먼저, 한국형 핵추진잠수함(SSN) 1~2척이 취역함으로써 대잠수함 추적·SLBM 대응·원양 잠항능력 등 기존 전력으로는 불가능했던 능력을 갖추게 된다.
핵잠수함의 운용은 기동함대 전력의 생존성과 공격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동시에 경항모 사업의 비용 대비 효율성 논란과 최근 드론·AI 무기체계 발전,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를 반영해, 무인 전력 중심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결정이다.
다목적 유·무인 전력지휘함은 2030년대 후반 도입을 목표로, 3만t급 대형 함정에 전투·감시·정찰용 무인기 수십 대를 탑재해 해군의 미래 전력을 혁신하는 신형 지휘함이다. 운용 경험을 기반으로 개량이 진행되어 중형항모로의 확장이 본격화된다. 이는 항모전단의 장기작전 능력·함재기 탑재량·지속성이 더욱 향상됨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는 또한 SMR 기반 해군용 원자로 개발이 실용 단계로 진입하면서 한국형 SSN 건조 체계가 안정화된다.
핵심 키워드는 SSN 취역·항모 확장·해군용 SMR 실용화·실전 운용 개시이다.

▒ 3단계(2040~2050): 대양해군 완성기
▶핵추진잠수함(SSN) 4~6척 순환운용 체계 확립
▶전략함대 창설
▶동북아–인도양–중동을 잇는 국제 해양안보 핵심국으로 도약

2040년 이후 한국 해군은 드디어 완성된 대양해군 체계를 확보하게 된다.
핵추진잠수함은 총 4~6척 체제로 확대되어 순환운용이 안정화되고, 한반도 주변 해역뿐 아니라 태평양·인도양 전역에서 장기작전이 가능해진다. 핵잠수함 전력은 항모전단 보호·전략타격·감시정찰에서 절대적 핵심축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한국 해군의 다양한 원양전력이 통합된 ‘전략함대(국가해양함대)’가 공식 창설되며, 국가 차원의 대양전략이 현실화된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은 동북아–인도양–중동을 잇는 국제 해양안보의 핵심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며, 해상교통로 보호와 글로벌 안보 기여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책임 해양국가로 도약한다.

한미 해군은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동해 해상에서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이 참여한 가운데 연합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해군 제공]


전진하는 배는 가라앉지 않는다
대양해군은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은 그 중심축이다.
대양해군 건설은 단순한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 경제안보, 외교적 영향력, 국제 해양질서 기여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국가전략의 대전환이다. 한국은 이제 연안을 넘어 대양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SSN)은 그 여정의 출발점이고, 항공모함은 그 여정에 찍는 굵은 마침표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SSN) 건조가 합의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해군의 숙원사업이 ‘가능성’에서 ‘실행 단계’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거친 파도와 폭풍 속에서도 전진하는 배는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더 큰 의지로 대양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대양해군의 꿈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 미래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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