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와 관련한 키워드는 ‘빈 집’입니다. 단어만 봐도 눈치 빠른 분들은 충분히 취재 방향과 의도를 눈치챘을 것입니다. 도시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전국 곳곳에 빈집이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방치된 빈집은 도시 미관을 해치고 범죄와 안전사고의 온상이 되지만, 반대로 잘 활용하면 지역 재생의 새로운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빈집을 단순히 철거 대상이 아닌 ‘지역 자산’으로 전환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도시 구조가 축소되는 시대에 빈집은 낭비가 아닌 가능성의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빈집 활용은 지역 공동체 회복과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정책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마엔차 성에서 바라본 마엔차 시 전경


[시사의창 2025년 12월호=정용일 기자] 도시의 풍경은 더 이상 화려한 스카이라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때 사람들의 삶과 꿈으로 가득 차 있던 거리, 불빛이 꺼진 창문과 낡은 현관문은 인구감소 시대의 침묵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세계 각지의 도시들이 버려진 공간을 되살리며 ‘사람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심고 있다. 빈집은 더 이상 쇠락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도시 재생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텅 빈 집, 차오르는 공동체, 모두가 배워야 할 도시의 부활법
시간이 멈춘 집...그곳에서 다시 시작된 도시의 유쾌한 이야기
빈집이 부른 도시의 붕괴와 부활, 생존을 위한 재생의 실험
텅 빈 골목에 찾아온 이웃, 마엔차의 작은 부활이 주는 교훈
“투자는 거절, 이웃을 원합니다” 마엔차를 통해 본 도시재생
충주 관아골의 화려한 변신, 빈집에서 시작된 ‘로컬 르네상스’
지독하게 고요했던 남해 초전마을을 관광성지로 바꾼 젊은이들


세계 곳곳에서 사라지는 마을들이 마지막 불빛을 지키기 위해 ‘빈집’을 꺼내 들었다. 커피 한 잔보다 싼 1유로, 혹은 상징적 가격으로 매물을 내놓거나, 아예 수천만 원대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라도 새로운 주민을 끌어들이려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실험의 공통된 배경은 단 하나, 인구 감소, 그리고 소멸의 공포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으며, 그중 이탈리아의 사례로 세계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 90킬로미터, 자동차로 한 시간 반가량 달리면 오래된 성곽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작은 도시 마엔차(Maenza)가 모습을 드러낸다. 석양이 내려앉은 언덕 위로 중세의 성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골목마다 회색빛 석조 주택들이 층층이 이어져 있다. 이곳은 한때 로마를 지키는 군사 요새로 번성했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산업화된 이탈리아에서 마엔차는 잊혀진 마을이 되었고, 닫힌 창문과 비어버린 집들이 세월의 흔적처럼 남았다.
그러던 마을이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것도 단돈 1유로(약 1400원)짜리 집들 덕분에.
‘1유로 프로젝트(1 Euro Project)’라 불리는 이 실험은 낡고 방치된 주택을 1유로라는 상징적 가격에 매매해, 외부 인구를 유입하고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려는 유럽형 도시재생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싸게 팔겠다는 의미를 넘어, “마을의 불을 다시 켜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투자는 거절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원합니다.”
마엔차 시청이 2021년 내건 슬로건은 도발적이었다. “투자는 거절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원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마엔차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돈벌이를 위한 외부 투기세력보다는, 실제로 마을에 거주하며 삶을 함께 꾸려갈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마엔차에서는 개인은 물론 법인도 1유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단, 조건은 까다롭다. 주택을 구매한 뒤 3년 안에 리모델링을 완료해야 하고, 이를 보증하기 위해 5000유로(약 720만 원)의 보증금을 납부해야 한다. 공사 기간을 넘기면 이 보증금은 반환되지 않는다.
거래되는 주택의 대부분은 오랜 세월 방치돼 기본적인 개보수가 필수적이다. 리모델링 비용은 ㎡당 약 600~700유로(약 86만~100만 원) 수준으로, 완공된 주택을 그대로 사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이탈리아에서 ㎡당 1000유로(약 143만 원) 정도 하는 일반 주택 가격을 감안하면, ‘손수 고쳐 사는 집’이 훨씬 현실적인 선택이다.
빈집을 내놓는 집주인들도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는 2주택 이상 보유 시 재산세 부담이 높다. 도심에 실거주 주택을 가진 이들이 시골의 낡은 집을 방치하기보다, 차라리 처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들이 맞물리면서 마엔차의 1유로 프로젝트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첫해에는 단 두 채의 빈집이 매물로 나왔지만, 신청자는 무려 105명에 달했다. 경쟁률 50대 1이 넘는 셈이다. 이탈리아의 젊은 건축가 한 명이 나란히 붙어 있던 두 채를 사들여 허물고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시청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마엔차의 클라우디오 스페르두티 시장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조심스레 평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고, 상속자가 수십 명에 달하는 복잡한 소유권 문제가 발목을 잡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마엔차라는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실제로 지난 2년간, 1유로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27채의 주택이 거래됐다고 밝혔다. 이 중 6채는 미국, 노르웨이 등 외국인 매입이었다. 그들은 숙박업소나 카페를 열어 새로운 생계를 꾸리려 하고 있다. 마엔차는 이렇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사람이 돌아오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 마엔차에서 1유로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1유로에 거래된 빈집. 행정안전부 제공


빈집은 짐이 아니라, 미래
마엔차의 골목길 한편, 리모델링 중인 집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페인트칠을 하며 말했다.
“이 집은 내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이에요. 버려진 집을 고치며, 나도 다시 살아나는 기분입니다.” 이 말은 어쩌면 마엔차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요약일 것이다. 빈집은 낡은 돌덩이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시작된 이 실험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외곽, 작지만 단단한 마을 마엔차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곳의 창문마다 새로 칠해진 하얀 커튼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잊힌 마을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다음으로 기자가 시선을 돌린 곳은 이탈리아 남부의 무소멜리(Mussomeli)다. 이곳 역시 이탈리아의 빈집 활용에 있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때 1만 명이 넘던 주민은 이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마을 중심가의 오래된 석조 주택은 오랜 세월 주인을 잃고 버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 게시판에 ‘1유로 하우스(1 Euro House)’ 공고가 걸렸다. 조건은 단순했다. 집을 사서 고치고, 실제로 거주할 것. 그렇게 전 세계의 젊은 예술가, 은퇴자, 디지털 노마드들이 무소멜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려진 골목에 카페가 생기고, 벽화가 그려지고, 시장이 다시 열렸다.
이 실험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번졌다. 남서부의 사르데냐섬(Sardegna)에서는 인구 3000명 미만의 작은 마을에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1만5000유로(약 2475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돈은 오로지 주택 구매와 개조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주민에게는 3개월간 임대료도 면제된다. 마을은 "사람이 오지 않으면 집이 무너지고, 집이 무너지면 마을도 사라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정책을 도입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산간마을 트렌티노(Trentino)에서는 주택 개조 보조금이 최대 8만 유로(약 1억 3250만 원)에 달한다. 단, 10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집을 사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사람을 찾고 있다”는 현지 관계자의 말은, 이 실험이 단순한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공동체의 재건’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남부의 마테라(Matera)는 오랜 세월 동안 ‘버려진 도시’로 불렸다. 195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주민이 곰팡이 낀 석굴 주거지 ‘사씨(Sassi)’를 떠나 신도시로 이주했다. 수십 년간 폐허로 남은 이곳은 이제 세계유산으로, 그리고 예술인들의 공동 창작 공간으로 부활했다. 지방정부는 사씨 지구 내 빈집을 예술가들에게 장기 임대하는 대신, 일정 기간마다 전시나 공연을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했다. 그렇게 마테라는 ‘빈집이 문화가 된 도시’로 변모했다. 관광객 수는 불과 20년 사이 10배 이상 늘었고, 이탈리아 내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된 인구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를 둘러싼 유럽 각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동유럽 크로아티아의 레그라드(Legrad)라는 마을은 헝가리 국경 인근의 외딴 시골이다. 한때 1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는 이제 20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마을은 낡은 주택을 단돈 1쿠나(약 215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수리비용으로 최대 2만5000쿠나(약 537만 원)를 지원한다. 단, 구매자는 15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그 결과 젊은 부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레그라드의 시장은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되찾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남서부의 앙베르(Ambert) 역시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인구 6500명의 이 소도시는 무소멜리처럼 1유로 주택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낙후된 주택을 1유로에 판매하고, 이주자에게 개조비를 지원한다. 도시의 한 상인은 “옆집에 불이 다시 들어오는 걸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른다”며 환하게 웃었다.
스페인 북부의 산골 마을 암브로즈밸리(Ambroz Valley)에서는 이주민에게 2년간 최대 1만5000유로(약 2475만 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스페인 정부는 "빈집 재생은 지역의 존속을 지키는 사회적 계약"이라고 강조한다.

빈집만 덩그러니. [강진군 제공]


빈집, 복지·통합의 공간으로의 전환은
단순 주거정책 아닌 ‘사회 치유의 과정’

유럽의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독일의 라이프치히는 또 다른 답을 제시한다. 구동독 시절 산업 쇠퇴로 인구가 급감한 이 도시는 1990년대 초반에 전체 주택의 20% 이상이 공가였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시는 이 빈집을 젊은 세대에게 ‘실험 공간’으로 내줬다. 예술학교 졸업생, 음악가, 도시농업가들이 모여 빈 건물 한 채 한 채를 공동체로 재구성했다. 버려진 아파트 단지는 카페와 공동 작업장으로, 낡은 공장은 농산물 직거래 시장으로 바뀌었다. 도시정부는 ‘빈집 점유 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인 점거를 인정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건물의 소유권 일부를 커뮤니티가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지금의 라이프치히는 ‘유럽에서 가장 창의적인 도시’로 꼽히며, 젊은 층 유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프랑스의 보르도 역시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이 도시는 빈 아파트를 활용해 난민과 저소득층을 수용하는 사회적 주거 모델을 구축했다.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이 참여해 낡은 건물의 외관을 보존하면서 내부를 공동주거 형태로 개조했다. 주민들은 새로운 이웃과 함께 살면서 문화행사를 열고, 지역 상권을 되살렸다. 보르도 시 관계자는 “빈집을 복지와 통합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단순한 주거정책이 아니라 사회 치유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산업 붕괴와 인구 유출로 8만 채가 넘는 빈집이 방치된 도시였다. 그러나 시민 주도의 ‘어반 프레리(Urban Prairie)’ 운동이 이 도시를 바꿔놓았다. 지역 주민들은 철거 예정이던 빈집을 공동 텃밭과 교육 공간으로 바꿨고, 그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가 복원됐다. 지금의 디트로이트는 “텅 빈 도시에서 자급하는 도시”로 불리며 도시 회복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 흐름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확산됐다. 그렇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초고령화사회 진입과 인구감소문제를 겪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은 어떠할까.
일본은 빈집 문제의 ‘실험실’이라 불린다. 전국적으로 약 900만 채의 빈집이 존재한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별로 ‘아키야 뱅크(空き家バンク)’ 제도를 도입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이 제도를 통해 젊은 창업자, 예술가, 귀농인들에게 빈집을 무상 혹은 1엔(약 10원)에 임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도쿠시마현 가미야마 마을의 경우, 도쿄에서 내려온 IT 스타트업 직원들이 빈집을 개조해 원격근무 사무실로 활용하면서 마을 전체가 디지털 노마드 거점으로 바뀌었다. 버려진 집이 스타트업 허브로 변신한 것이다. 주민 수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늘어났고, 젊은 부부들의 이주로 초등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사람 떠난 강진군 빈집. [강진군 제공]


한국과 사회 구조가 비슷한 대만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타이난시의 ‘빈집 사회혁신 프로젝트’는 버려진 주택을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카페·공방·도서관 등으로 개조할 수 있게 했다. 타이난의 좁은 골목길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대만 정부는 빈집을 문화산업의 인큐베이터로 보는 시각을 제도화했고, “사람이 돌아오면 도시가 산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한국 역시 인구감소의 파고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전국 지자체의 절반 이상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빈집 활용 실험’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전북 군산은 해상도시의 쇠락을 상징하던 근대거리의 빈 건물을 리모델링해 청년 예술가에게 임대하고 있다. 이들은 낡은 일본식 가옥을 게스트하우스, 공방, 작은 책방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주말이면 인근 지역에서 젊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거리가 다시 살아났다.
경남 통영의 경우, 빈집을 청년 창업 공간으로 전환하는 ‘리빌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때 조선업 침체로 인구가 급격히 줄었던 도심에는 이제 커피숍, 수공예 공방, 바닷가 서점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통영시는 “빈집을 버리는 대신 청년에게 빌려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도시 재생”이라며, 빈집 소유자에게 세금 감면과 리모델링 비용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일대에 강진군의 주거 지원정책으로 리모델링된 빈집들이 모여 있다.


충주 관아골, 한국형 ‘1유로 프로젝트’의 가능성
한국 또한 인구감소와 빈집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마엔차의 사례는 본받을만하다. 마엔차의 사례는 단순히 건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시사점이 매우 크다. 행안부에 따르면 국내 등록된 빈집은 이미 13만2000호에 달한다.
한국에도 앞서 언급한 마엔차와 비슷한 실험이 있다. 충북 충주시 관아골은 한때 점포의 절반 이상이 빈집으로 남아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 국토교통부, 충주시, 그리고 행안부가 협력해 청년 창업가들이 빈 점포를 개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로컬 브랜딩 사업’으로 불린 이 프로젝트를 통해 관아골의 공가율은 2016년 60%(70채 중 42채)에서 2024년 12%(9채)로 급감했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두 시간을 달리면 충북 충주시의 관아골에 다다른다. 몇 년 전만 해도 70채 중 42채, 즉 60%가 비어 있는 ‘빈집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골목마다 삶의 흔적이 되살아나고 있다.
청년들이 작은 카페를 열고,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쓰며, 주민과 방문객이 뒤섞이는 소소한 활기가 느껴진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국토교통부와 충주시, 행정안전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빈집 활용 프로젝트가 있다. 2015년, 관아골의 공가율은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당시 청년 창업가와 예술가들은 공간은 많지만 임대료가 부담되는 현실에 좌절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빈 점포와 빈집을 저렴하게 임대하거나 개조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을 내놓았다. 공가율이 높았던 마을에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강진군 병영면의 빈집을 리모델링한 곳에서 시골의 애환을 담아내는 유튜버 김현우(32) 씨의 작업실


“처음엔 여기 골목이 텅 비어 있어서 조금 무서웠어요. 그런데 오래된 집을 고치고 카페를 열자 손님이 오기 시작했죠.”
빈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기회로 재탄생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통해 초기 임대료 부담이 낮아지고, 소규모 인테리어 비용도 일부 보조되면서 청년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창업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이곳의 변화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2016년 12월, 관아골의 빈집 비율은 60%였지만, 2024년 기준 총 70채 중 9채, 12%로 줄었다. 몇 년 사이 골목의 절반 이상이 다시 채워진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골목에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마을의 안전과 공동체 의식이 살아났다고 입을 모은다.
관아골 사례는 단순한 건물 활용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실험으로 평가된다. 빈집을 활용한 창업과 예술 활동은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골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되살린다. 특히, 청년 창업가와 예술가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주민들과의 세대 간 교류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충주시 관계자는 “빈집은 단순히 방치된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자산”이라며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머무는 것을 넘어 정착하려는 의지를 갖는다”고 말했다.
관아골의 사례는 한국형 1유로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저렴한 임대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삶과 지역의 미래를 연결 짓는 시도라는 점에서 마엔차의 철학과 닮아 있다.

관아골 초입


취재진은 이곳 관아골의 상징과도 같은 세상상회 이상창 대표를 직접 만나 관아골의 변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 대표의 고향은 경상북도 구미, 그의 아내 고향은 인천이다. 충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부부가 어떻게 이곳에 둥지를 트게 되었을까.
이 대표가 서울에서 지역 활성화 컨설턴트로 재직 중에 2015-2016년 충주 첫 번째 도시재생사업구역인 관아골 프로젝트 총괄계획 일을 맡으며 충주를 방문하게 된 게 충주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여러 지역을 둘러보던 이 대표는 여행의 좋은 추억들이 서려있던 제주, 통영, 강릉, 속초, 남해 등은 창업을 통해 진입하기에는 너무 경쟁이 치열한 관광도시로 변모해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 대표가 당시 스터디하며 다녔던 ‘충주’가 떠올랐고. 당시 충주 하면, 전국 어딜 가도 흔하게 맛볼 수 있는 사과로만 읽히거나 이웃하는 청주라는 도시와 이름이 헷갈릴 정도로 애매한 도시 이미지의 포지션이었다. 충주를 선택하면 사과 말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잘만 만들어 낸다면 굉장히 주목받기 좋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는 충주를 선택했다.
그는 “그나마 저의 젊음과 컨설턴트로서의 전문 이력이 이 도시에서는 어쩌면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왔죠. 실제로 최근 강의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충주 하면 뭐가 떠오르시죠? 라고 물어보면, ‘충주맨(김선태 충주 공무원)’을 이야기 합니다”고 말했다. 공무원 1명이 충주 사과를 잊히게 만든 것이다. 이 대표는 언젠가 충주 하면, 관아골, 이상창, 세상상회를 떠올리는 등 다양한 이야기 중 하나였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충주 관아골의 변화를 이끈 세상상회 이상창 대표


[다음은 이상창 대표와의 1문 1답이다.]
Q. 충주시에 둥지를 틀고 매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A. 귀촌 9년 차인 지금까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인즉 제가 충주를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과도 귀결됩니다. 충주는 사람 좋고, 자연 좋고, 안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가 갖춘 경쟁력에 가끔씩 놀랄 정도라니까요.

Q. 죽어가던 골목이 활기를 되찾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고 있다. 이상창 대표처럼 지방 중소도시에서의 창업(카페/식당)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A. 지원사업 의존형 창업가가 되지 마세요. 제가 귀촌하던 9년 전만 해도 지방 중소도시로 오는 청년들의 스펙이라곤 ‘푸념과 하소연(서울 살이가 힘들어, 도시생활에 스트레스가 어쩌고 저쩌고’) 뿐이었다면, 현재는 나름 외부에서의 경력과 전문성을 겸비한 후 지방 도시로 올 시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틈새에 나의 쓸모를 어떻게 매워 넣어볼까 철저히 준비하고 오는 청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방소도시에서 롱~런 하려면 첫째, 남다른 관점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제가 충주사람이 아니라서 충주가 매력적으로 보였듯) 지역 청년들이 지방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내몰리듯 대도시로 유출되지만, 저와 같은 우물 밖 개구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충주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답니다.
둘째, 색다른 매력과 이야기를 발산해야 합니다. 위의 남다른 관점과 태도를 가졌다면, 충주 하면 사과 말고 새로운 이야기를 꾸준히 생산하는 것이 다음의 목표입니다.
셋째, 오롯한 본캐와 쓸모 있는 부캐 활동의 밸런스 조화가 필요하죠. 지원사업 의존형 사업가가 되지 않으려면, 자립형 BM을 선 구축한 이후, 필요에 따라 스스로가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지원사업을 보조받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넷째, ‘빨리 건물주가 돼라’입니다. 지방으로 내려올 때 수도권에 비해 착한 가격의 부동산가격은 예비창업가들에게 사업 초기 안정적인 본인 공간 확보에 도움이 됩니다. 쉽게 말해, 지방소도시에 빈집 문제가 증가추세이지만, 이 유휴공간의 새로운 쓸모를 보탠다면 얘기는 달라지죠.(지금은 저렴하고, 쓸모를 다한 곳이라도~ 추후에는 과연?)

Q. 현재 관아골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청년사업가들이 많다. 총 30여 개의 매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청년 사업가들의 협의체 같은 게 있는지, 있다면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A. 기존 전통시장 상인회, 청년협의체 등과 같은 관련단체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느슨한 정서적 울타리 ‘we, 관아골’이라는 멤버십과 ‘충주 반상회’라는 이름으로 지역 내 다양한 소상공인 프리랜서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이들은 365일 중 80% 정도는 본인들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충실한 일상을 보내다. 연 중 20~30% 정도는 골목을 위한, 동네를 위한, 지역을 위한, 이웃을 위한 일에 함께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담장마켓, 충주잔치, EME론칭(최근 서울 을지로에서 팝업을 실행), 글로컬 교류(대만, 말레이시아, 미국 등)

Q. 관아골이 활기를 되찾는 과정에서 지자체의 협조는 잘 이루어졌는지
A. 저희가 하는 활동들을 오랜 기간 지켜봐 주셨고, 시장님을 포함 많은 부처의 관계자, 중간지원조직(도시재생센터, 문화도시센터 등)에서 적재적소에 서포트를 해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가 관아골에서 빈집을 매입하고, 고치고, 다양한 이벤트를 만드는 것에 약 30억 정도(대출포함) 자부담하여 투자하였습니다. 이후 다양한 전국 공모사업에 참여하여 2억 정도 지원받았고요.
각종 중앙부처 공모사업(문화도시사업-문체부, 도시재생사업-국토부, 생활권단위로컬브랜딩사업-행안부, 로컬브랜드창출사업-중기부 유치를 위해 파트너기업으로 함께 참여(밤새워 계획서 쓰고, 발표자료 만들고, 발표까지도 하는 등)하여 300억 정도의 예산을 지자체에 유치해 왔습니다. 저희는 어설픈 갑을 관계 보단 확실한 파트너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동네를 알리는 방법 중 하나이고, 충주 하면, 사과 말고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저희들의 초심과도 맞닿기 때문에 했던 활동입니다.

Q. 앞으로의 포부나 최종 목표는
A. 첫째, 관아골을 로컬 마이스타운로의 꿈을 꿉니다. 최근 코엑스와 같은 대도시의 대형 전시공간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지방소도시의 마을로 가지고 와서 펼쳐놓으려는 움직임과 니즈들이 있습니다. 이를 위한 수용태세를 갖추려면, 민간에서는 대형 외부손님을 맞이한 공간, 서비스, 콘텐츠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행정에서는 이를 위한 적절한 서포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둘째, 소도시여행을 하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충주로 오게끔 인바운드 로컬관광벤처기업을 준비 중입니다.
아울러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충주는 지금까지도 체류형 관광지 보단, 경유형 관광지 포지션에 가까웠습니다.
체류형 관광도시로의 발전을 위해 큰 덩어리의 개발로 중요하겠지만, 기존의 로컬자원들을 좀 더 매력적으로 어필하고, 새로운 로컬자원들을 지역 내에서 좀 더 지지받을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Q. 마지막으로 지자체에 바라는 점은
A. 구도심 내 쓸모를 다한 유휴 공간 및 시설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를 민간차원에서 매입하여 동네 활성화차원에서의 프로젝트를 시행 시 저금리형 융자 혹은 리모델링비 지원 등이 받쳐주면 훨씬 더 속도를 낼 듯합니다. 최근 청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취지로 연간 3~5천만의 지원금을 청년들에게 쥐어주고, 공동체를 만들고, 다양한 실험들을 해 볼 기회들을 주지만, 지원금 없이는 이 공동체도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은 지원해 주는 주최 측도, 지원받는 청년들도 알 것입니다. 따라서 빠르게 자립할 수 있는 단계별 지원책 모색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Q. 이번 보도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A. 충주 관아골 활성화사례는 ‘민간주도형’ 골목상권구축, -> 구도심 활성화 -> 자생적 커뮤니티 구축 등 다방면에서 전례 없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이 좋은 사례가 전국각지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 로컬 플레이어들에게 고루고루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저희들의 활동 역시 충주 하면, 최근에 들어서야 ‘관아골’이라고 새롭게 읽히는 것처럼 충주를 찾아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충주를 올 이유와 방법을 저희들의 일상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충주시장님, 동장님보다도 저희 동네 관아골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더 애정하거든요.

젊은 분위기로 가득한 매장들이 모여 있는 관아골의 모습


지자체의 적극적 개입과 정책의 효과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빈집을 활용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취재진이 다녀온 경남 남해군 초전마을의 변화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마을 주민들은 “예전에는 해가 지면 마을이 금세 조용해졌는데, 요즘은 평일에도 북적북적하며, 주말의 경우 외지 손님들로 인해 마을이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며 놀라워했다.
식당이나 스콘 전문점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 관광객들이 가득하고, 식당은 평일에도 점심시간이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너티버터 김정철 대표를 주축으로 한 청년들의 도전 정신이 있었다.
강원도 정선군에서는 오래된 주택과 상가를 청년 농업인과 소상공인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필요시 개보수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전북 전주시의 한 골목에서는 빈집을 게스트하우스나 공유 작업실로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빈집이 지역의 공실 문제를 넘어 경제·문화·커뮤니티 재생의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충주 관아골 사례를 벤치마킹해 다른 지자체에서도 공가율 감소와 청년 유입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남해 초전마을 역시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빈집 소유권이 복잡하거나, 상속자가 여러 명인 경우, 지원 정책을 적용하는 데 상당한 행정적 부담이 따른다. 또한 초기 임대료와 개보수 비용이 낮아도 정착 후 유지 관리 문제, 지역 주민과의 갈등 등 현실적인 문제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아골과 같은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사람이 떠난 집도, 관심과 지원만 있으면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빈집은 골칫거리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서 이 오래된 건물들이 ‘사람을 불러들이는 집’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집이 아니라, 그 안에 다시 들어올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구감소 시대의 도시들이 공통으로 찾아낸 해답이다. 텅 빈 집이 도시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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