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 또 하나의 따뜻한 희망 이야기가 피어올랐다. 다름아닌 2012년 부모를 따라 국내로 귀환하며 광주에 정착했던 고려인동포 4세 청년 덴마리나(24)의 이야기다.
그는 언어도, 친구도, 익숙한 환경도 없던 낯선 땅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전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을 앞둔 예비 의료인으로 당당히 서 있다.
고려인마을 산하 광주새날학교 졸업생이기도 한 덴마리나는 학업 내내 ‘누군가를 돕는 삶’을 꿈꾸었다. 그 꿈은 고려인광주진료소에서의 자원봉사 경험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2018년 개소한 진료소에서 러시아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진료소를 찾아 도움을 구하는 고려인동포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다.
광주 고려인마을의 희망 고려인동포 4세 청년 덴마리나/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덴마리나는 “진료소에서 의료진 선생님들이 동포들에게 건네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함을 전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세계 디아스포라 고려인동포 55만명과 소통하는 지상파라디오 고려방송(FM93.5Mhz) 라디오 진행자로도 활동하며 공동체 안에서 언어·문화 장벽을 넘어 소통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왔다. 동포들에게 정보를 전하고, 공동체 소식을 알리는 일 역시 그의 또 다른 사명감이었다.
덴마리나의 이야기는 광주 고려인마을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귀환을 선택한 고려인동포 몇 가정이 국내 입국 후 광주 광산구 월곡동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세월이 흘러 이제 약 7천여 명으로 늘었고, 그들은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고, 아이들을 키울 학교를 세우고, 문화·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며 하나의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기관들은 주민지원센터,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문화센터, 학교, 방송국, 고려인마을특화거리, 고려인문화관, 문빅토르미술관, 김블라디미르문학관, 인문사회연구소, 합창단·오케스트라·극단, 콘텐츠사업단, 한국어학당, 집수리봉사단, 장학회 등 40여 개에 이른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공동체의 눈물과 손길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 낸 기적이다. 그리고 그 긴 여정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오늘, 한국에서 새로운 미래를 세우고 있다.
덴마리나는 그 상징적인 얼굴 중 하나다. 전남대 간호학과 졸업을 앞둔 지금, 덴마리나는 그저 개인의 성공을 넘어 고려인마을 전체의 희망 서사가 되어주고 있다.
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는 덴마리나 같은 청년들이 마을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조상의 땅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또 다음 세대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모습은 광주 고려인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결실이다” 고 말한다.
덴마리나 역시 “앞으로도 진료소와 지역사회에서 동포들과 함께하는 의료인의 길을 걷고 싶다” 고 소박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 꿈은 소박함을 넘어, 마을이 걸어온 역사와 미래를 잇는 소중한 다리가 되고 있다.
강제이주의 상처에서 시작된 고려인의 역사는 이제 낯선 조상의 땅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의 이름으로 자라나고 있다.
덴마리나. 그의 이름은 이 마을이 품어온 지난 시간과, 앞으로 피어날 수많은 미래를 상징한다. 희망은 멀리 있지 않았다. 마을의 한 소녀가, 한 청년이 따뜻한 마음 하나로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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