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에서는 지난 2일 한 세기 넘게 “자기의 땅”을 빼앗기고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려인들의 피어린 역사를 시를 통해 되돌아보는 인문강좌가 열렸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이번 강좌의 제목은 ‘유랑하는 영혼들 – 고려인 시문학에 나타난 장소와 장소상실’ .이었다. 강연을 맡은 이는 고려인 문학과 디아스포라 연구의 권위자인 송명희 국립부경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였다.

송명희 교수는 시몬느 베이유의 ‘뿌리에의 욕망’을 먼저 꺼내 들었다. “한 사람이 한 장소에 뿌리내린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볼 안전지대를 갖고, 그곳에 나의 삶을 걸어도 된다는 약속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인의 역사는 이 뿌리에의 욕망이 잔인하게 부정되고, 또 부정되는 과정이었다.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에서는 지난 2일 한 세기 넘게 “자기의 땅”을 빼앗기고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려인들의 피어린 역사를 시를 통해 되돌아보는 인문강좌가 열렸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 연해주로, 다시 1937년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소련 해체 이후에는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또 한 번 주변으로 밀려나는 시간들. 송 교수는 “고려인들은 단지 공간을 옮겨 다닌 것이 아니라, 살아갈 자리를 빼앗기는 경험을 세대에 걸쳐 반복해 온 사람들이다. 그 피어린 상실이 시문학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고 강조했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의 시 '우슈또베에서'에서는 이곳은 슬픔과 부끄러움이 시작된 자리이자, 다시 슬픔과 부끄러움이 끝나야 하는 자리로 그려진다. 짐짝처럼 화물칸에 실려 와 얼어붙은 황무지에 버려졌던 고려인들은 뼈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피땀으로 거름을 이겨 버려진 자의 땅을 푸른 논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피어린 노동으로 간신히 만들어낸 ‘고향’은 소련 해체와 민족주의의 확산 속에서 또다시 흔들린다.

또한 김병학의 시 「계단에 서서」에서 고려인들은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어미와 아비를 파묻고/ 아이는 가슴에 품은 채/ 계단을 오르듯 끝없이 삶의 비탈을 오른다”를 통해 그 계단은 사실 장소를 향한 길이지만, 언제나 도착하지 못한 채 미끄러지는 삶의 비유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 시를 . “고려인의 삶에는 ‘안착’이라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거의 없다.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학교를 세웠지만 정치와 권력은 번번이 그 토대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그들의 시에는 늘, ‘얼마를 더 걸어야, 얼마를 더 넘어져야’라는 물음이 되풀이되고 있다.” 고 해석했다.

이 스따니슬라브의 시에는 두 고향 사이에서 찢기는 심장 두 겹의 장소가 늘 겹쳐 있다. 지금 자신이 살아온 중앙아시아의 초원, 그리고 할아버지가 살았던 연해주 뽀시예트. 초원은 “이보다 더 가까운 고향이 없는 듯”한 삶의 터전이지만, 마음 깊은 곳의 원향(原鄕)은 언제나 연해주 바다와 함께 떠오른다.

그에게 연해주는 “바다가 뾰족하고 짠 혓바닥을 들이미는” 상처의 장소이다. 강제이주의 기억이 바다의 혓바닥처럼 날카롭게 밀려와 손자 세대의 심장까지 핥고 지나간다.

송 교수는 이 대목을 짚으며 “이 세대의 고려인은 고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가슴에는 조상의 고향이 피멍처럼 박혀 있다. 장소 상실은 단지 한 세대의 사건이 아니라, 세대에 걸쳐 번져 가는 정체성의 상처라는 것을 이 시가 보여주고 있다.” 고 말했다.

1997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시인 최석의 시에는“낯섦에 익숙해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주자의 삶”이 등장한다. 그의 시 「더께」에서 화자는 알마티의 한 주소를 가리키며 “여기가 우리 집”이라 말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이곳은 좀처럼 삶의 더께가 끼지 않는 낯선 장소다. 사람이 낯설고, 냄새가 낯설고, 심지어 자신의 몸과 욕망까지 낯설어지는 삶이었다.

그래서 그는 낯섦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삶의 깊이가 아니라 ‘관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해방 60주년의 점심식사’ 에서는 고려인 통역 아줌마와 함께 먹는 빵 ‘흘레브’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슬픈 상징이 된다.

그녀는 그것을 ‘떡’이라 부르며 고기에 곁들여 먹고, 그는 그것을 ‘빵’이라 부르며 김치와 함께 먹는다. 한 시대, 한 민족이지만 언어와 기억의 지층이 달라져 서로를 향해 “같은 피를 가졌어도 서로 신토불이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타낸다.

송 교수는 여기서 “이주한 한국인과 고려인 사이의 또 다른 장소상실”을 읽어낸다. 같은 ‘조국’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함께 설 수 있는 공통의 장소가 부재한 현실이 시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광주 고려인마을 김 블라디미르 시인은 – 한국에서도,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자’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문학 교수로 살다가 한국에서는 일용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기에 그의 삶은 장소상실이 어떻게 현재형의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시 '나는 열강에서 태어났다'에서는 자신은 한때 ‘열강’ 소련의 국민으로서 러시아어로 공부하고 말하며, 자부심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삶의 터전은 한순간에 국경 선 안에 갇힌 작은 나라가 되었고, 러시아는 비자를 받아야만 갈 수 있는 이국이 되어버렸다.. 그가 쌓아온 학문, 언어, 정체성의 기반은 정치적 격변 한 번에 의미를 잃어버렸다.

한국으로 귀환한 뒤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더 잔인하다. 추석을 맞아 쓴 시 「추석」에서 그는 한국 사회에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도 ‘이것이 내 조국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 달라. 나는 고려인, 나는 한국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는 ‘귀환 동포’도, ‘완전한 내국인’도 아닌 애매한 ‘외국인 노동자’로 불리는 삶을 견뎌야 했다.

송 교수는 이 지점을 두고, “고려인에게 한국은 ‘역사적인 조국’이지만, 그 조국은 여전히 그들을 타자로 부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안아 줄 장소가 없을 때, 장소상실은 곧 존재 전체의 상실감으로 번진다.” 라고 설명했다.

고려인 시문학에 나타난 장소와 장소상실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번 인문강좌는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삶이 단지 유랑이 아니라, 뿌리 뽑힌 자리마다 다시 집을 지어 올린 피어린 역사였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슈또베의 얼어붙은 황무지를 피와 땀으로 논밭과 마을로 바꾸어낸 선배 세대, 세대 간 상흔을 안고도 연해주라는 상징적 고향을 마음속에서 되살려 버티는 후손들, 중앙아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언어와 신분, 직업의 추락을 견뎌내는 이주민 시인들의 기록. 이 모든 삶의 층위가 고려인 시문학 속에서 ‘장소’와 ‘장소상실’이라는 키워드로 서로 얽혀 모습을 드러낸다.

송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고려인들의 피어린 삶은 장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 또 다른 장소를 만들어 오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시는, ‘우리는 여기 있다, 우리는 뿌리 없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이다.” 고 말했다.

이날 강연이 열린 광주 고려인마을은 연해주와 우슈또베, 알마티와 타슈켄트를 거쳐 마침내 도착한 “또 하나의 고향 후보지”와도 같은 공간이다. 완전한 안착이라 말하기에는 아직 제도와 인식의 벽이 높지만, 이곳에서 고려인들은 자신의 언어로 시를 쓰고, 자신의 역사로 전시를 만들고, 자신의 이름으로 골목과 거리를 불러내며 조금씩 ‘장소의 진정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유랑하는 영혼들. 그러나 그 영혼들은 매번 내쫓기는 자리에서, 다시 뿌리 내릴 한 줌의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열린 이번 인문강좌는 그 피어린 삶을 기억하고, 그들이 더 이상 “무장소(placeless)”의 존재가 아니어도 되는 미래를 함께 상상해 보자는 초대장이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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