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광복80주년을 맞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 강제 이주의 한 세기가 남긴 아픔과 희망을 한 명의 작가를 통해 다시 되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한 빛을 발하는 이름은 고려극장 최초이자 유일한 프로 극작가, 한진(본명 한대용, 1931~1993)이다. 한진은 중앙아시아 찬바람 속에서도 언어를 잃지 않기 위해 밤마다 원고지를 지켜냈던 사람이다.

그의 원고 한 장의 떨림은 기억의 파편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한글을 지키려던 디아스포라의 마지막 불씨였다.

1950~60년대, 북한 국비유학생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되었던 한진은 재입국을 거부하고 소련 망명길을 택했다. 돌아가면 생존도 보장되지 않던 시대, 그가 선택한 것은 체제가 아니라 문학과 인간의 자유였다.

망명 이후 그는 부모가 부여한 이름 대신 스스로 ‘한진(韓眞)’이라 적기 시작했다. “眞(진)”, 진실의 ‘진’. 같은 시대 국비유학생에서 망명한 리경진(=리진), 허웅배(=허진)과 함께 신념을 이름에 새긴 지식인 세대였다. 그들은 조국을 떠났으나 조국의 언어만큼은 끝내 놓지 않았다.

고려극장 최초이자 유일한 프로 극작가, 한진(본명 한대용, 1931~1993)/사진=고려인마을 제공

1964년 고려극장에 입단한 한진은 1993년 생을 마칠 때까지 수십 편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며 재소고려인 문학의 중추가 되었다. 그의 등장은 고려극장의 예술적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재소고려인 문학평론가 정상진은 그를 두고 “비교할 대상을 찾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한진의 작품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리얼리즘,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문장력, 강제이주 이후 공동체의 상처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작품을 본 소비에트 관객들은 “연극이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이번 기획전에서 가장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 전시물은 한진의 희곡 ‘의붓어머니’ 등 육필원고 8편이다. 2020년 1월, 고려인마을이 보관한 21권의 육필원고와 고려극장 사진첩 2권 등 총 23권이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되었다.

이는 유진오 제헌헌법 초고, 조선말 큰사전 원고, 3·1운동 독립선언서류와 같은 국가적 상징 기록물들과 나란히 선 영예였다. 그의 작품 중 ‘의붓어머니’ 는 전통 설화에서 계모를 악으로 규정하던 관념을 뒤집는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깊다”는 휴머니즘을 정면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작품 속 ‘장화홍련전’의 인용은 전통 서사와 이주 현실을 연결하는 데 탁월한 상징 장치로 평가된다.

카자흐스탄의 혹독한 겨울, 난방조차 부족한 작은 방에서 한진은 밤마다 한글 원고지를 펼쳤다. 그 글쓰기는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민족의 언어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 곁에서 리진은 기록을 남기고, 허진은 시를 쓰며 문학적 연대를 이루었지만, 공동체가 의지한 무대 언어를 완성한 사람은 한진 한 사람이었다. 이번 기획전에서 그의 원고들이 다시 공개된 것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작가를 넘어 한 시대의 증언을 역사 속으로 복원하는 일이다.

따라서 전시장을 나서는 관람객들은 한진의 이름을 결코 잊지 못한다. “중앙아시아의 찬바람 속에서도 한글을 끝내 꺼뜨리지 않은 사람.” 그의 원고는, 그의 희곡은, 그의 문학은 한국과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잇는 가장 빛나는 다리가 되어 오늘도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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