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 겨울 첫눈처럼 고운 선율이 내려앉았다. 고려인마을 청소년오케스트라 ‘아리랑’ 제8회 정기연주회가 지난 25일 문예정터갤러리씨어터에서 열리며, 객석을 가득 메운 마을주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낯선 조상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고려인 청소년들이 음악이라는 언어로 자신의 뿌리를 더듬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깊고 단단하게 성장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객석에는 묵직한 설렘이 감돌았다. 아이들이 악기를 맞추고 첫 호흡을 들이키는 순간, 이미 눈시울을 적시는 고려인마을 주민들이 있었다. 이날 단원들이 입은 한복은 국악신문이 기증한 것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고운 빛깔이 아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긴장과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고려인마을 청소년오케스트라 ‘아리랑’ 제8회 정기연주회가 지난 25일 문예정터갤러리씨어터에서 열리며, 객석을 가득 메운 마을주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한 학부모는 “한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는 순간, 우리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이날 무대는 음악을 넘어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첫 무대는 동요 메들리와 ‘아름다운 세상’' 으로 맑은 현악기의 선율이 울려 퍼지며 “우리는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당당히 자라고 있다”는 메시지를 조용하게 전했다. 이어진 1부에서는 ‘사랑의 인사’, ‘할아버지 시계’, ‘고향의 봄’ 이 차례로 연주돼 관객들에게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잊고 지낸 풍경들을 떠올리게 했다.

2부는 캐롤 메들리로 가득했다. 다가오는 연말의 설렘을 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가 울려 퍼지자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어 3부에서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위풍당당 행진곡’과 ‘캐리비안의 해적’의 힘 있는 리듬이 공연장의 에너지를 한층 끌어올렸고,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오케스트라 전체의 웅장함으로 드러났다.

공연의 마지막은 ‘작은별’, ‘환희의 송가’, 그리고 ‘아리랑’. 특히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순간, 객석은 숨소리조차 줄어든 채 아이들의 연주에 집중했다. 익숙한 선율 속에서 아이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겠다.” 고 다짐하는 듯했다. 공연장을 나서던 한 학부모는 “오늘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케스트라단을 이끌고 있는 조정희 단장은 “아이들의 성장 자체가 기적”이라며 “이들이 이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가 더 밝아 보였다”고 말했다.

2018년 작은 다짐으로 시작된 고려인마을청소년오케스트라 ‘아리랑’은 마을지도자와 공동체, 광주시의 관심이 더해져 어느새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고려인마을의 대표 문화예술단체로 자리 잡았다.

인구절벽 시대에 청소년의 재능과 잠재력은 곧 지역의 미래이자 사회의 희망이다. 그런 점에서 ‘아리랑’은 단순히 음악 단체를 넘어 지역사회가 함께 키워온 미래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인마을은 앞으로도 매년 정기연주회를 이어가며 문화예술을 통한 공동체 연대와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지원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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