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법정에서 비상계엄 관련 핵심 상황을 “기억나지 않는다”고 반복하며 사실상 헌법재판소에서의 위증을 인정한 가운데, 내일 열릴 결심공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날 열린 공판에서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이 논의됐던 마지막 국무회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진술해 법정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한 전 총리는 자신이 “그때 정신적으로 멘붕 상태였다”며 기억 부재를 강조했다. 하지만 동시에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했고, 국무회의를 소집한 것도 “다른 국무위원들이 와서 반대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이는 검찰이 제기한 ‘내란 방조’ 혐의를 정면 반박하는 취지로 풀이된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계엄 관련 문건 서명을 주도한 점이 ‘절차적 외관을 만들어준 적극적 도움 행위’라고 보고 있다.
법원 역시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한 전 총리가 불법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방조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계엄 문건을 사후에 작성케 하고 국무위원들에게 서명을 요구했으며, 이후 폐기까지 한 정황을 제시하며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인지하고도 절차를 치유하려는 행위를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 전 총리는 이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며 불법성 인식이 낮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양측의 해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특히 최근 공개된 대통령실 CCTV 영상은 재판의 흐름을 크게 흔든 핵심 증거로 꼽힌다. 한 전 총리가 헌재에서 “문건을 받은 적 없다”고 진술했던 내용과 달리, 영상에는 그가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계엄 관련 문건을 직접 받아 살펴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로 인해 한 전 총리는 사실상 위증을 인정하는 진술을 새롭게 내놨다. 법조계에서는 “진술 번복은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의 신빙성이 크게 흔들렸다고 평가한다.
내일 예정된 결심공판에서 특검이 어떤 구형을 내릴지 또한 주목된다. 내란죄의 경우 주도자는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가능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 비록 한 전 총리가 방조 혐의로 기소돼 형량 상한은 낮아지지만, 법정형은 여전히 ‘10년 이상 50년 이하’로 매우 무겁다. 특검은 헌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총리가 위법한 계엄 시도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중형을 구형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도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법정에서 “군이 계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당시 윤 전 대통령에게 무릎까지 꿇고 만류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비상계엄 관련 논의가 이미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됐고, 군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체포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게 한 지시의 출처에 대해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추정 가능하다”며 상부의 개입을 강하게 시사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직접 여 전 사령관을 신문하며 “체포 대상자의 인적사항을 사전에 확인한 적 없다”며 지시 책임을 부정했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은 명단이 상부 지시에 따른 것임을 거듭 강조해 두 사람의 진술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로 인해 윤 전 대통령이 정치적·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변호인의 법정 언행이 최근 잇따라 도마 위에 올랐다. 한덕수 전 총리 재판부는 김 전 장관 변호인들에게 ‘감치’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재판부 모독행위나 법정 소란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강력한 조치지만 변호사에게 적용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변호인단이 재판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특검과 법원에 대한 대응을 예고하면서,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한 여론과 법적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법조계는 “일반적인 변호인이라면 재판부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며 “이런 방식의 대응은 법리 싸움보다는 정치적 메시지나 여론전을 노린 행위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일부에서는 내란 사건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피고인과 변호인단이 ‘정치적 투쟁’의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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