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광주 고려인마을에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이름이 있다. 바로 텐올가(전올가, 39세)다.
2012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모를 따라 남편과 어린 자녀를 데리고 한국에 입국한 고려인 4세 여성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고, 생계를 위해 남편과 함께 농촌 일용직을 전전하던 시절은 매일이 절벽 같았다.
그러나 텐올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희망은 2013년 광산구 월곡동에 문을 연 작은 빵집, ‘고려인마을 가족카페’에서 시작됐다.
광주 고려인마을에 위치한 고려인마을가족카페 '텐올가'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처음 1호점은 작고 낡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텐올가는 새벽부터 밤까지 반죽을 치고 손님을 맞으며 묵묵히 하루를 버텼다. 그녀의 성실함은 빵의 온기처럼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찾아오는 손님도 꾸준히 늘었다. 그렇게 마련한 자본으로 2호점과 3호점을 잇달아 개점하며 사업은 안정 궤도에 올랐다.
최근에는 그녀의 구수한 풍미가 가득 담긴 ‘고려인이 만든 중앙아시아 전통빵’이 SNS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하루 수백 건의 주문이 몰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그 빵집은 고려인 동포가 운영하는 작은 점포가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텐올가의 진짜 성공은 매출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마음’에서 드러났다. 생활이 조금 나아지자 그녀는 가장 먼저 동포를 돌아보았다. 광주에 막 입국해 병원비가 없어 눈물만 흘리던 동포들의 의료비를 지원했고, 보증금이 부족해 갈 곳을 잃은 동포들의 삶을 조용히 도왔다.
또한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후원하며, 2017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장학기부를 이어왔다.
2019년 고려인광주진료소가 건축비를 마련할 수 없어 건축을 미루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텐올가는 주저 없이 사재를 털어 건축비 대부분을 기부했다. 그녀는 “나도 빈손으로 왔어요. 동포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려인동포들이 전 세계 난민센터로 흩어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녀는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귀환을 원하는 이들이 항공권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말을 듣자, 1,000만 원을 기부하며 ‘동포들을 데려오자’고 제안한 첫 번째 후원자가 됐다.
이 제안은 큰 물줄기를 만들었고, 결국 900여 명의 전쟁난민 고려인동포들의 국내 귀환 항공권을 지원하는 인도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이 같은 헌신은 광주 지역사회와 대한민국 정부에도 큰 울림을 주었다. 텐올가는 한국 사회 통합 및 이민자 지원에 기여한 공로로 2019년 ‘광주광역시장상’ 과 2022년 ‘제15회 세계인의 날'을 맞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특히 국무총리상은 외국 국적 고려인에게는 최초로 주어진 상이었다.
수상 소감을 물었을 때 그녀는 “이 상은 제 개인의 이름으로 받는 상이 아닙니다. 저와 같은 고려인동포 모두에게 주어진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기대어야만 이 땅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2012년, 생존을 위해 선택한 도시였던 광주는 이제 그녀에게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텐올가는 오늘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아픈 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에게 미래를 건네며 자신의 하루를 성실하게 채우고 있다.
그녀가 반죽한 빵에서 퍼지는 구수한 향기는 이제 희망의 냄새,그리고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의 온기가 되어 광주 고려인마을 곳곳에 퍼져 나가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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