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는 조국./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수감 생활을 마치고 자유를 되찾은 지 정확히 100일째 되는 지난 23일, 조국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마침내 당 대표로 복귀했다. 사면 직후부터 이미 여러 정황상 그의 대표 취임은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공식적인 전당대회 절차를 거쳐 지도부가 다시 꾸려졌다는 점에서 이번 복귀는 정치적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당내 성 비위 사건으로 인해 조국 대표가 비대위 체제로 조기 투입되며 사실상의 지도자 역할을 일찍 수행하게 된 터라, 당내외에서는 이번 전당대회가 특별한 반향을 만들어내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조국혁신당 2기 체제가 출범한 지금, 조국 대표 앞에 놓인 정치적 과제는 한층 더 명확하고도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당이 지향하는 ‘제3지대 정당’으로서의 독자적 입지를 구축해야 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라는 중대 시험대에서 실질적인 존재감을 증명해야 한다는 숙명이 동시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 대표 본인의 거취 즉, 지방선거 출마 혹은 인천 계양을 등 보궐선거 도전 여부 역시 현실적 고려 대상이 되면서 조국 대표의 개인 정치 행보 역시 당 전체의 전략과 맞물려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국혁신당이 직면한 현실은 쉽지 않다. 조 대표가 사석과 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밝혀온 ‘국민의힘 광역단체장 0명, 기초단체장·지방의원 절반 축소’라는 공격적인 목표는 정치적 선언으로서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할 지지율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조국혁신당의 전국 지지율은 2~4%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은 3%에 그쳤으며, 전통적 진보 성향이 강한 광주·전라 지역에서도 4%에 머물렀다. 정당 지지 지형에서 의미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방선거가 단순한 지방정치 수준의 경쟁을 넘어 ‘당 존재감의 분기점’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계에서도 조국혁신당의 현 위치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분석이 잇따른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현재 국민 인식 속 조국혁신당의 정체성은 여전히 민주당의 2중대라는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조직적 존재감, 정책적 차별성, 그리고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메시지까지 모두 기존 민주당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정당이 자기 색깔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치적 공간을 창출하기 어려운데, 지금 조국혁신당은 그 지점에서 가장 큰 벽을 만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면 이후 성 비위 사건까지 발생하며 비대위 체제로 전환된 시기 역시 조국혁신당에게는 악재가 됐다. 정치 신뢰도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당 내부의 윤리 문제가 불거지자, 당은 혁신·쇄신안을 내놓고 비상체제를 통해 정비를 시도했으나, 국민이 체감할 만큼의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조국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서 여러 정책적 방향성과 사회 개혁 메시지를 내놓았음에도 ‘혁신당이 무엇을 혁신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국 대표는 최근 정치개혁·조세·부동산 정책 등 민주당조차 소극적인 의제를 정면으로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은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 함께 ‘정치개혁 연석회의’를 출범시키고, 교섭단체 요건 완화, 광역·기초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핵심 아젠다로 삼았다. 이는 과거 대선 전 원탁회의에서 민주당까지 참여해 합의했던 정치제도 개혁 과제들이지만, 정권 교체 이후 민주당이 이 의제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상황을 적극 활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국 대표는 연석회의 대표로서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직접 정치개혁 현안을 협의하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강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약 정치개혁 이슈를 둘러싸고 ‘정청래 대 조국’이라는 구도가 형성된다면, 이는 조국혁신당이 거대 양당 사이에서 명확한 차별성을 증명할 수 있는 드문 정치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세·부동산 영역에서도 조국혁신당은 선명성을 강조한다. 보유세 강화, 금융투자소득세 정상 시행,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을 통해 자산 격차를 완화하고 조세정의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민주당이 최근 조세정책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사회적 논란을 피하는 기조를 취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돌봄·건강·주거·교육 등 국민 생활 전반에서 불평등 구조를 줄이는 정책 패키지를 준비 중이며, 이는 민주당과 완전히 다른 철학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국 비대위 '뉴파티 비전2' 발표./연합뉴스
한편 조국 대표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싼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등 정치적 이벤트를 적극 활용해 ‘정치인 조국’의 브랜드를 강화하려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 최근 공식 발언에서 “정치는 국민의 삶을 바꾸는 실천이어야 한다”며 “조국혁신당이 있어야 대한민국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당내 구성원들에게도 하나의 메시지로 작용하며, 향후 당 전략에 일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가의 관심은 결국 조국 대표 본인의 향후 출마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등 대형 지방선거구, 또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등 여러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국 대표는 “모든 후보의 판이 짜인 뒤 가장 마지막에 판단할 것”이라며 확답을 피하고 있지만, 그간의 정치적 행보와 당의 전략적 필요성을 고려할 때 직접 출마 가능성은 배제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 역시 핵심 변수다. 조국혁신당의 존재감이 약해질 때마다 민주당과의 합당설이 반복적으로 부상해 왔지만, 조 대표는 “혁신당이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와 비전이 분명하다”며 합당론에 선을 긋고 있다. 이는 지지율이 낮아도 독립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제3지대의 확고한 구축’이라는 조국혁신당의 근본 목표가 단순 연합이나 흡수 통합으로 희석될 경우, 당의 존재 이유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내부 우려도 존재한다.
이번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수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일 기자 cu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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