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방으로 확산되는 조사 참여 호소, 미공표 조사까지… 시민이 감당하는 불편과 왜곡된 정치문화, 정책은 사라지고 ‘지지 요청’만 남은 현실… 여론조사 악용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치의 책무

[시사의창=소순일기자] 6.3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남원에서도 ‘여론조사 홍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사의창 전북동부취재본부장 소순일


공표된 조사는 두 건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전화를 받았다는 시민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누가 의뢰했는지조차 드러나지 않는 조사, 정책 대신 지지 호소만 반복되는 카톡방, 결과 발표는커녕 조용히 사라지는 조사들까지. 시민들의 피로와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도통동에 거주하는 A씨는 이미 여러 명의 후보자와 지지자들이 운영하는 카톡방에 동시에 초대돼 있다.

남원의 좁은 인간관계를 고려하면 피하기도 쉽지 않다. A씨는 “정책도 계획도 없는데 지지만 호소하는 메시지가 계속 올라와도 방을 나가면 안 좋게 볼까 봐 못 나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여론조사 전화를 받는 즉시 특정 후보 캠프 단톡방에 ‘지금 조사 중이니 응답해 달라’는 공지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조사 본래의 취지와 객관성은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부 여론조사는 시민에게 전화를 하고도 결과를 공표하지 않는다. 조사 기관, 의뢰자, 표본 설계는 알 수 없고, 참여 시민만 피로감을 안는다.

참여 경험이 있는 한 시민은 “다음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가 신뢰성 확보는커녕 시민과의 신뢰를 잃는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남원처럼 지역 인적 네트워크가 촘촘한 곳에서는 여론조사가 곧바로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기 쉽다. 누가 누구와 가까운지, 어떤 캠프에 연결돼 있는지 금세 드러나는 만큼 조사 하나가 지지 활동으로 확대되고, 이는 다시 조사 자체의 중립성을 훼손한다. ‘민심 파악’이라는 본래 기능은 사라지고 ‘지지층 동원’이라는 목적만 남는 순간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 정치의 건강성에도 심각한 문제를 남긴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정책 중심 정치 문화를 약화시키며, 유권자에게 왜곡된 정보 환경을 만든다.

무엇보다 정치가 시민에게 불편과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로 비춰지는 순간, 민주주의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객관적으로 읽기 위한 도구이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특정 후보의 의지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조사기관은 투명성을 지켜야 하고, 정당과 캠프는 여론조사를 동원 전략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공직선거법이 요구하는 공표 절차와 기준을 준수하는 것은 기본이며, 조사 결과 발표 여부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조사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정치는 시민에게 불편과 피로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의 시간을 아끼고 신뢰를 쌓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는 선거, 투명한 절차로 신뢰받는 여론조사, 시민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정보환경이 자리 잡아야 한다.
여론조사 홍수 속에서 시민들이 보내는 불편과 짜증, 그리고 침묵은 정치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경고다.

시사의창 소순일 기자 antlaan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