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집중도 이미지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18일 저녁 전 세계 주요 인터넷 서비스가 동시에 휘청거렸다. 챗GPT와 X(트위터)를 비롯해 중국·유럽의 대형 AI 플랫폼, 글로벌 쇼핑·게임 서비스까지 연쇄적으로 접속 장애가 발생하며 일시적 ‘디지털 정전’에 가까운 혼란이 벌어졌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기업의 서로 다른 기술처럼 보였던 서비스들이 사실은 단일한 좁은 인프라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번 장애의 근본 원인은 글로벌 CDN(콘텐츠전송망) 사업자인 클라우드플레어의 네트워크 라우팅 오류였다. AI 서비스 특성상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아야 하는 만큼 CDN이 사실상 ‘AI 속도와 안정성’을 좌우하는 병목 구간이 된다. 이 지점에서 오류가 발생하자 AI 기반 서비스들은 도미노처럼 마비됐고, 장애는 글로벌 규모로 확산됐다.

이번 사태는 전 세계 AI·빅테크 서비스가 소수의 CDN·클라우드 사업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챗GPT나 X와 같은 초대형 서비스는 전 세계 이용자의 지연 시간을 줄이기 위해 클라우드플레어, 아카마이, AWS 클라우드프론트 등 특정 CDN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거대한 플랫폼들이 같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공유하는 셈이고, 하나의 톨게이트가 막히면 글로벌 서비스들이 동시에 발이 묶이는 상황이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AI 서비스가 이미 금융, 쇼핑, 검색, 번역, 의료, 교육까지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만큼 장애가 단순한 불편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위험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AI산업 생태계는 겉보기보다 훨씬 단순한 경로 위에서 움직인다. AI 모델을 사용하는 서비스는 다양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는 크게 CDN, DNS, 클라우드 백엔드, 글로벌 백본망 네 가지로 수렴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CDN은 속도와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며, DNS는 인터넷의 주소록으로 어느 한 축에서 장애가 나면 인터넷 전체가 ‘길을 잃는’ 현상이 발생한다.

클라우드 백엔드는 AI 학습과 API 서비스의 엔진 역할을 하는데, 상위 3대 클라우드 회사가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며 의존도가 극도로 높다. 해저 케이블과 초고속 광통신으로 구성된 글로벌 백본망 역시 특정 국가와 지역에 집중돼 있어 물리적 위험이 상존한다.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만들어진 이러한 집중 구조는 장애 한 번의 파급력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번 사건은 특히 AI 기반 사회가 하나의 인프라 문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재확인시켰다. 예컨대 AI 교사 플랫폼이 동시에 정지하면 교육 일정 전체가 흔들릴 수 있고, 금융권의 AI 자동 거래 시스템이 중단되면 단 몇 초 만에 시장 거래가 멈추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AI 인프라가 이미 전력·통신과 같은 수준의 국가 기반시설로 기능하고 있다며, 장애 한 번이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정책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안으로는 멀티-CDN과 멀티클라우드 구조가 거론되지만 실제로 이를 도입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크다. 서로 다른 인프라를 동시에 운영하면 비용이 급증하고, 데이터 동기화 난도도 높아지며, 국가별 데이터 규제로 인해 분산 저장 자체가 까다롭다. 기업들은 비용과 복잡성, 규제라는 ‘3중 장벽’ 때문에 위험 분산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선뜻 구조 개선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차원의 AI 인프라 안전성 기준 마련, 공공 백업 인프라 구축 등 국가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와 인터넷은 이미 하나의 생태계로 움직인다. AI 모델의 성능 향상만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으며, 인프라를 얼마나 분산하고 안정적으로 구축하느냐가 AI 시대의 새로운 국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장애는 단순한 기술적 사고가 아니라, AI 시대의 인프라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경고에 가깝다. 앞으로의 경쟁은 더 빠르고 똑똑한 AI 모델이 아니라, 어느 국가와 기업이 ‘절대 멈추지 않는 AI 인프라’를 구축하는가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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