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연합뉴스


[시사의창=원광연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독도’ 언급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례적이지만, 그 파장은 단순한 외교 수사 이상의 의미를 띤다. 중국이 그동안 독도 문제를 철저히 ‘한일 간 역사 문제’로 분류해 왔음을 감안하면, 이번 발언은 동북아 역학을 재정렬하려는 중국 외교의 방향 전환을 분명히 드러낸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결속이 강화되는 구도 속에서, 중국이 일본을 향해 역사·영토 문제의 압박 수위를 높이며 전략적 균형을 재배치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이번 발언에서 가장 먼저 읽히는 대목은, 중국이 한국보다 일본을 더 강하게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중국은 사실상 비공식적 ‘혐한령’을 유지하며 한류, 관광, 문화 교류 등 다수의 분야를 제한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 플랫폼에서 한국 드라마와 K-뷰티가 다시 등장하고, 지방정부가 한류 행사를 재개하는 조짐이 보이면서 대중적 기류가 바뀌고 있다. 외교적 메시지 또한 과거의 냉랭함보다는 경제 협력과 민간 교류 복원을 우회적으로 시사하는 발언들이 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진핑의 ‘독도’ 언급이 갖는 전략적 함의가 두드러진다.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향해 던진 견제의 신호,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 여지를 동시에 열어두는 ‘이중 목적 외교’가 발현된 것이다. 일본은 최근 방위비 증액, 군사력 확충, 대만 관련 발언 강화 등을 통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층 더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 견제의 전초기지가 일본으로 굳어지는 상황을 좌시하기 어렵다. 독도라는 민감한 역사·영토 문제를 꺼내 든 것은 일본의 군사적 확대와 전략적 역할 증대에 대한 정치적·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을 향해서는 정반대의 메시지가 던져진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핵심 군사 파트너로 보면서도, 일본처럼 ‘전면적 전략 경쟁자’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시진핑 정부는 경제 회복의 실마리를 아시아에서 찾고 있으며, 한국은 중국 입장에서 여전히 중요한 산업·기술·소비 시장이다. 과도한 대립을 유지할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재개방, 민간 교류 확대 제스처는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 독도 발언은 그 흐름 속에서 한국을 향한 ‘우회적 구애 신호’로도 해석된다.

중국이 독도 문제에 뛰어든 것은 ‘한국 편들기’라는 단순 프레임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일본을 역사 문제의 공세 지점으로 끌어내려, 미일동맹의 결속 구조에 균열을 내려는 전략적 시도에 가깝다.

중국 관영매체가 동시에 일본의 군사화와 역사 인식 문제를 강하게 비판한 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역사전쟁’의 프레임이 재등장한 것은 그 자체로 일본에 대한 압박 신호다.

그러나 이 ‘친한 기류’가 곧바로 실질적 관계 회복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가 남는다. 중국 외교는 언제나 빠른 변곡점을 만들어 왔고, 국가 내부의 정치 일정이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방향을 즉각 수정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 이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이 한국에 온기를 보내는 순간에도,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구조적 긴장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반응은 빠르고 단호했다. 일본 정부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고, 중국의 개입을 노골적인 내정 간섭으로 규정했다. 일본 정치권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더욱 가속할 것이다. 결국 시진핑의 발언은 한일 간의 기존 갈등에 ‘중국 변수’라는 새로운 축을 첨가하게 된 셈이다.

독도는 다시 동북아 외교의 상징적 무대가 됐다. 시진핑의 한마디가 일으킨 파장은 단순한 영토 발언을 넘어, 동북아에서 미국·중국·일본이 벌이는 전략 게임의 새로운 전선을 드러낸다.

한국은 이 흐름 속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주도권을 확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략 자율성을 확보하고, 외교 공간을 넓히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원광연 기자 win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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