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중국 전기차 시장의 절대 강자로 떠오른 비야디(BYD)가 생산·기술·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전기차 전환 속도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된 허난성 정저우 공장은 BYD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중국 중부 최대 규모의 생산 기지인 이곳은 부지만 10㎢가 넘고 직원 수는 6만 명에 달한다.
공장은 정저우 신정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한 물류·첨단산업 중심 경제특구인 '공항 경제 종합실험구'에 자리 잡고 있다. 총 부지 면적이 10.67㎢로 서울 중구(9.96㎢)보다도 넓고 축구장 약 1천500개에 달하는 이 공장은 끝없이 광활한 평지 위에 펼쳐져 있다. BYD 정저우 서킷과 맞닿아 있어 서킷에서 출발해 차로 5분 만에 도착, 공장 정문을 지나 취재 구역까지 이동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리니 그 규모를 가늠케 한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 있는 BYD 공장. 323만 평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에서 시간당 50여 대 완성차 생산이 가능하다./BYD코리아 제공
로봇이 대부분의 공정을 수행하는 조립 라인에서는 ‘1분 1대 생산’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BYD는 정저우 공장에서 배터리, 파워트레인, 시트, 조향장치 등 주요 부품 대부분을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전기차 제조의 핵심인 블레이드 배터리 생산 단지까지 같은 부지에 갖추면서 사실상 생산 전 과정을 단일 공간에서 해결하는 ‘수직 통합 모델’을 구축했다. BYD 관계자는 “완결된 공급망이 품질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만든다”고 설명했다.
BYD는 이 같은 생산 체계와 내수 기반을 바탕으로 2024년 글로벌 판매량 427만 대를 기록해 3년 연속 세계 전기차 판매 1위에 올랐다. 1994년 배터리 회사로 출발해 내연기관 기반 경험이 부족함에도, 압도적인 속도로 시장을 재편한 셈이다.
정저우 디스페이스 1층 소개하는 BYD 관계자들./연합뉴스
완성차 생산뿐 아니라 브랜드 경험 영역에서도 공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저우 중심 상업지구에 문을 연 ‘BYD 디 스페이스(Di Space)’는 브랜드 역사와 기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체험형 전시관으로 개관 1년 만에 40만 명 이상이 찾았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중국 최초의 전 지형(全地形) 주행 서킷도 조성했다. 21만㎡가 넘는 대규모 코스는 빙판·모래·수상주행 등 다양한 주행 환경을 구현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차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BYD는 안후이성, 저장성 등에도 대규모 서킷을 추가로 개장할 계획이다.
BYD의 본사가 위치한 광둥성 선전에서는 ‘기술 우선’ 전략이 더욱 두드러진다. R&D 인력만 12만 명에 달하는 BYD는 배터리 안전 기술을 핵심 경쟁력으로 강조해왔다. 회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LFP 기반 블레이드 배터리는 삼원계(NCM) 배터리와의 바늘 관통 실험에서 화재나 폭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왕촨푸 BYD 회장이 “전기차에서 안전은 최고의 럭셔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BYD의 이 같은 성장세는 한국 자동차업계에도 적지 않은 압력을 주고 있다. 가격 경쟁력, 부품 내재화, 생산 효율성에서 이미 상당한 격차가 벌어진 데다, 브랜드 체험과 기술 홍보 방식에서도 기존 글로벌 제조사와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시대에 맞는 공급망 재편과 핵심 기술 내재화, 소비자 경험 중심의 브랜드 전략 등을 강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전기차 시장의 무게중심이 BYD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 산업계가 변화 속도에 대응할 전략적 선택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핵심 부품 대부분 자체 생산
‘수직 통합 모델’은 BYD의 가장 큰 무기
BYD의 성장세를 바라보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시선도 고민에 가득 찬 모습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가 글로벌 시장을 집어삼키는 속도가 상상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20여 년 전 배터리 기업에 불과했던 회사가 이제는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각국 완성차 업체들은 BYD의 성장세를 “경쟁”이 아닌 “변수”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업계 전반에서 대응 전략을 재정비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BYD의 확장 속도는 단순한 판매량 증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배터리·전장·모터·반도체 등 핵심 부품 대부분을 자체 생산하는 ‘수직 통합 모델’은 BYD의 가장 큰 무기다. 이는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추는 동시에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여전히 외부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는 것과 대비하면 BYD는 ‘원가 경쟁력’에서 이미 한 단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중국 내 초대형 공장을 통한 생산 효율도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정저우를 비롯한 주요 생산기지의 자동화율은 90%에 달하며, 일부 라인은 ‘1분 1대 생산’ 체계를 구현했다. 전기차 시대의 핵심 동력으로 꼽히는 대량생산 능력을 사실상 독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각국 자동차 기업들은 BYD를 “새로운 중국식 제조업 모델의 상징”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BYD와의 기술·가격 격차가 빠르게 벌어짐에 따라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시장은 관세 장벽을 강화해 BYD 진입을 철저히 막고 있지만, 남미·동남아·중동·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BYD가 현지 브랜드를 대체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유럽의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성숙하면 가격 경쟁이 본격화될 것인데, 그때는 BYD의 공세를 버틸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트럭·버스 등 상용차 부문에서도 BYD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전기버스 분야에서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확보했으며, 많은 국가는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BYD 차량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 환경 규제가 강한 유럽 국가에서도 중국 전기버스 도입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어 유럽 자동차 산업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배터리 안전 기술 역시 BYD의 빠른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회사가 개발한 LFP 기반 ‘블레이드 배터리’는 화재 위험을 크게 낮춘 혁신 기술로 평가받는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화재 사고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안전성을 강조한 BYD의 전략은 브랜드 신뢰를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주행 서킷, 브랜드 체험관, 대규모 전시장 등 소비자 접점을 직접 확대하는 전략도 글로벌 완성차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단순한 ‘차량 제조사’를 넘어 ‘경험 중심 브랜드’로 변모한 BYD의 방향은 일부 업계 관계자들에게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표준”으로 평가된다.
세계 자동차업계는 더 이상 BYD를 이머징 플레이어로 보지 않는다. 이미 시장 중심에 올라선 거대한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기술·가격·규모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글로벌 질서가 완전히 재편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BYD는 단순한 중국 기업이 아니라, 전기차 시대가 요구하는 제조 철학을 가장 빠르게 실현한 기업”이라며 “자동차 산업은 지금 BYD 이후의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BYD의 성장 속도가 계속된다면 전기차 시장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산업의 권력 구도 자체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업계는 이제 BYD를 ‘변수’가 아닌 ‘기준’으로 삼아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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