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었다. 이제부터 지상의 나무들의 색들은 변해 가겠지. 그리고 잎들을 내려놓고 안으로 외로움을 넣어두고 문을 잠가버리겠지. 올가을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감각은 예년과 같을까. 올해의 느낌은 어떻게 캔버스 위에 표현될까. 궁금해진다. 산책길의 풍경들이 깊은숨을 내쉬는 것처럼 보인다. 나뭇잎은 붉어지고 바람의 서늘함은 감정까지 서늘하게 만든다. 이 계절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풍경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까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자연과 내 속으로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단순한 계절의 순환이 아니라, 삶과 예술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다.
[시사의창 2025년 11월호=이두섭 작가] 가을의 색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색이 변하는 나뭇잎과 들판, 안개 낀 아침의 풍경은 새로운 미술 언어가 된다. 붓을 들기 전. 이 모든 감각은 내면에 저장되어, 캔버스 위에 감정의 층으로 쌓인다. 가을은 감각의 확장이며, 수용의 시간이다. 가을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계절은 아니다. 그것은 수확의 기쁨과 동시에 소멸의 슬픔을 품고 있다. 이 이중성을 깊이 느끼며, 자기 삶을 되돌아본다.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떠올리며, 그림 속에 추억을 녹여낸다. 어떤 화가는 가을을 통해 상실을 표현하고, 어떤 화가는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그 태도는 고요하지만 절대 무기력하지 않다. 오히려 깊은 사유 속에서 창조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가을의 풍경은 화가에게 말을 건다. 나뭇잎 하나, 구름의 흐름, 저녁노을의 색조까지도 화가에게는 메시지다. 그는 자연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해석하려 한다. 그림 속 나무는 외로움일 수도 있고, 낙엽은 해방일 수도 있다. 화가는 자연을 보며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고, 그 감정을 다시 자연 속에 되돌려 놓는다. 붓질은 자연과의 대화이며, 그 대화는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을은 화려하지만 동시에 절제된 계절이다. 이 균형을 존중한다. 과도한 표현을 피하고, 여백의 미를 중요하게 생각해본다. 남기고 가는 계절을 표현하기 위해 여백을 살려본다. 색채는 풍부하지만 절제하고, 구도는 단순하게 표현해본다. 마치 시인이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수십 번 고민하듯, 붓질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다. 절제와 집중의 미학을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가을은 시간의 흐름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계절이다. 화가는 그 흐름을 포착하려 한다. 그는 정지된 순간 속에 움직임을 담고자 한다. 잎이 떨어지는 시간, 해가 지는 그 순간. 그림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단면을 포착한 기록이다. 이 태도는 ‘그린다’라는 행위가 곧 ‘시간을 느낀다’라는 행위가 된다.
결국, 가을을 느끼는 화가의 태도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감정적 다리를 놓는 일이다. 붓으로 계절을 해석하여 이야기해주고, 색으로 감정을 기록하며,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을은 예술의 계절이며, 삶의 본질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그 느낌은 언제나 다르다.어릴 때는 단풍이 들면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산이 불타는 듯 물들고, 바람이 서늘해지면 마음이 들뜨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 붉은빛이 단순한 계절의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을의 붉음은 더 이상 화려함이 아니라, 천천히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이다. 화가로서 살아오며 나는 수많은 가을을 그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을은 같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가을은 강렬했다. 햇살은 눈부셨고, 물감은 선명했다. 붓끝은 늘 확신에 차 있었고, 색을 칠하는 일은 생의 확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손끝의 힘이 조금씩 달라지며, 나는 그 강렬함 속에 숨어 있던 ‘침묵’을 보게 되었다.
이제 나의 가을은 조용하다. 가을의 나무를 보면, 예전에는 잎의 색을 먼저 보았다. 지금은 가지를 본다. 바람에 남은 흔적과 한 해를 견뎌낸 상처 같은 결들을 본다. 예전에 겉에 시선을 고정했다면 지금은 나이테를 만들어내는 그 속을, 색채가 아닌 시간의 층을 느끼며 붓을 든다. 그리고 그림에 여백을 만든다. 지금의 여백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부분이라고 느낀다. 그 빈 곳에 바람이 흐르고, 침묵이 머물고, 내가 지난 시간의 감성을 담는다.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을 덜 소유하고 더 이해하게 되는 일 같다.
젊을 때는 떨어지는 낙엽이 쓸쓸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낙엽이 만들어내는 냄새가 좋다. 끝이 아니라 순환의 냄새다.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바꿔 다시 존재한다. 완성된 작품은 하나의 끝이지만, 그 속에는 다음 붓질을 예비하는 숨결이 있다. 그렇게 시간은 이어지고, 나의 가을도 이어진다. 요즘 나는 가을 하늘을 자주 본다. 빛이 더 투명해지고, 구름이 얇아질수록 마음은 묘하게 평온해진다. 그 속에서 ‘멈춤’을 배운다. 젊을 때는 앞만 보았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많이 그리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멈춰서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안다. 멈춤 속에서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보이고, 그 본질은 말이 아니라 색으로만 표현된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가을은 나에게 ‘끝’이 아니라 ‘깊이’의 계절이다. 시간이 만들어준 고요함 속에서 나 자신을 그린다.
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오히려 마음은 단단해진다. 그것은 받아들임에서 오는 것이다. 세상과의 거리, 삶과 예술의 경계, 그리고 젊음과 나이 듦의 간극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나는 오늘도 캔버스 앞에 선다. 가을의 색은 여전히 변하고, 나의 마음도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려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감정이 마르는 일이 아니라, 감정이 깊어지는 일이다. 이제 나는 그 깊이를 그린다.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덧없음 속의 따뜻함, 그리고 시간이 남긴 부드러운 흔적들. 그것이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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