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2025년 11월호=양상문 작가]
넓고 고요한 철원 평야 한가운데,
바람에 깎이고 세월에 허물어진 콘크리트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철원 노동당사다.
무심히 지나치면 단순한 폐허 같지만,
그 벽돌 하나하나엔 사람의 고통과 역사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
이곳은 1940년대 말, 조선 노동당 철원지부의 청사였다.
당시, 이 땅은 북한의 영역이었고 건물은 주민들을 감시하고 억누르던 권력의 상징이었다. 두꺼운 벽 너머에서 울려 퍼지던 울음과 절규가 세월 속에 스며들어 지금도 남아 있는 듯하다.
전쟁은 곧 이 땅을 삼켰다.
포화가 불을 뿜고, 산과 들은 피로 물들었다.
철원은 가장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었고, 건물의 벽면엔 그날의 흔적들이 탄환 자국으로 깊이 패여 남았다.
8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노동당사는 폐허가 된 채 고요히 서 있다.
허물어진 벽마다 남은 상처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 앞에 선 우리는 달리 읽어야 한다.
총탄 자국을 더듬으며 또 다른 전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피어나야 할 평화를 떠올려야 한다.
폐허를 스치는 바람은 이제 아픔이 아니라 기억의 향기를 남긴다.
그 향기는 오래된 슬픔을 감싸안으며, 새 희망의 결로 번져간다.”
그것은 새 희망을 품은 숨결이며, 다가올 세대를 향해 묵묵히 당부하는 목소리다.
건물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역사를 증언하는 언어다.
학생들과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 벽면의 탄흔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면, 전쟁의 비극과 민족의 분단이 남긴 상처가 서서히 피부로 스며든다.
“홀로 서있는 탄흔 자국이 말합니다.
이 땅에는 다시 평화만 남아,
다음 세대에게 아픔은 끝나고, 여행은 계속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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