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2025년 11월호=김지아 칼럼니스트] 단맛은 이제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당스파이크’와 저당 열풍이 일상 속 화두로 떠오르며, 우리는 단맛의 구조를 다시 묻는다. 한식의 발효디저트는 오래전부터 ‘덜 달지만 더 깊은 단맛’을 구현해왔다. 식혜와 효청, 약과와 곶감에 깃든 시간의 미감은 현대의 저당 디저트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감각의 원형이다.
시간의 미감(味感)
디저트는 단지 달콤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만든 감각이다. 짧고 강렬한 단맛이 아닌, 기다림 속에서 천천히 농축된 감미, 이것이 발효가 만들어내는 미학이다.
한식은 오랜 세월 동안 낮은 온도와 긴 시간의 조율을 통해 음식에 깊은 향과 질감을 불어넣어 왔다. 된장, 간장, 식초, 젓갈이 그렇듯, 한식의 디저트 역시 ‘숙성의 미감’을 품고 있다. 식혜의 은은한 단맛, 매실청의 투명한 산미, 곶감의 응축된 감칠맛, 약과의 부드러운 질감 모두 시간과 미생물이 협업한 결과물이다.
최근 당 섭취와 혈당 관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저당 디저트’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그러나 한식의 전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덜 달지만, 더 깊은맛』 발효를 통해 구현해 왔다. 즉, 발효는 단맛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단맛을 새롭게 설계하는 기술이다.
한식발효 디저트의 구조와 원리
식혜-효소가 만든 자연당
식혜는 밥에 엿기름을 섞어 따뜻한 온도에서 숙성시킨다. 엿기름 속 아말라아제(Amylase)효소가 밥의 전분을 분해해 포도당과 맥아당을 생성하면서 자연스러운 단맛이 생기는 것이다.
이 단맛은 설탕처럼 즉각적이지 않지만 섬세하고 투명한 감미를 남긴다. 복합당 구조 덕분에 체내 흡수 속도도 느려 혈당 상승이 완만하다. 전통적으로 ‘소화를 돕는 단맛’이라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효청(매실청·유자청)-향의 숙성
효청은 과일을 설탕에 절여 장시간 숙성시켜 만든다. 과일 속 유기산과 미생물이 설탕의 일부를 분해하며 단맛은 부드러워지고 향은 복합적으로 깊어진다.
숙성이 진행될수록 당도는 낮아지고 대신 향의 농도와 산미의 밸런스가 높아진다. 오래된 유자청 한 스푼이 딸기보다 향기로운 이유이다. 현대의 저당 디저트가 향으로 감미를 보완하는 원리와 닮았다.
약과-발효와 튀김의 구조적 단맛
약과의 반죽에는 꿀, 술, 기름이 들어간다. 이때 술의 효모가 미세한 발효를 일으켜 반죽을 부드럽게 만들고 튀기는 과정에서 내부에 기공이 형성되어 독특한 질감이 완성된다. 이후 꿀이나 조청에 절이면서 표면은 단단해지고 속은 촉촉해진다. 즉, 약과의 단맛은 ‘시럽의 달콤함’이 아니라 발효·튀김·시럽코팅이 만들어낸 물리적 단맛의 구조이다.
곶감-자연건조와 농축의 미학
곶감은 감을 천천히 건조시키며 당을 농축시킨 디저트이다. 표면의 흰 가루는 설탕이 아니라 감의 당분이 효소와 미생물 작용을 거쳐 형성된 포도당의 결정이다. 이 과정에서 산미와 감칠맛이 응축되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한식 발효 디저트는 단맛을 단순히 ‘추가하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과 효소로 재구성하는 지혜다.
세계의 발효 디저트와의 연결 –단맛의 언어가 통하다
발효는 국경을 초월한다. 프랑스의 크렘프레슈, 일본의 아마자케, 유럽이 사워도우케이크, 중동의 요거트 디저트 모두 설탕보다 시간을 재료로 삼는다.
일본의 아마자케는 쌀과 누룩을 발효시켜 자연적인 단맛을 얻는 음료로 식혜와 같은 원리를 가진다. 전분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단맛이 생성되는 ‘효소 발효’ 방식이다.
프랑스의 크렘프레슈는 크림을 유산균으로 발효시켜 부드러운 신맛과 단맛의 균형을 완성한다. 이 균형은 숙성된 유자청이 지닌 풍미의 구조와 닮았다.
이처럼 세계의 발효 디저트들은 ‘단맛을 덜어내되, 풍미를 더한다.’라는 공통된 철학을 공유한다. 단맛의 지속성을 ‘설탕’이 아닌 ‘시간’으로 설계하는 문화. 그 점에서 한식의 발효 디저트는 지구적 감각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단맛의 미래. 발효가 이끈다
오늘날 우리는 단맛을 ‘칼로리’로 계산하지만, 한식의 발효 디저트는 오래전부터 단맛을 ’시간‘으로 측정해 왔다. 발효는 재료를 변화시키는 과학이자 기다림을 문화로 승화시키는 기술이다.
세계가 ‘저당’과 ‘슬로우푸드’를 이야기하는 지금, 한식의 발효 디저트는 지속 가능한 감각의 모델로 다시 조명받고 있다. 그것은 설탕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맛의 기억을 오래 남기는 방식이다.
진짜 단맛은, 빠르게 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익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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