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을 삶의 대명제다. 정해진 성공의 방정식을 풀어내느라 오늘도 해야 할 일에만 매달리며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떻게 재미있게 살 것인가?’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가지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산다면 가능하다. 또한 좋아하는 재미를 즐기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더 재밌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일상 곳곳에 있으니 함께 누려보자.
차곡차곡 쌓인 염색된 가죽을 바라보며_페스 모로코
[시사의창 2025년 11월호=서병철 작가] 사람은 눈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떠 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하고, 꼭 보고 싶어 함에도 시도하지 않거나 또 다른 이유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눈이 가는 길 혹은 눈이 가는 방향을 ‘시선(視線)’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하는데 여행할 때 그 시선이라는 단어가 더 와 닿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볼 것이 많고 시선이 머물 수 있는 피사체가 널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체력이 고갈되는 경우 보는 것 자체도 귀찮아지기도 하지만.
지난 모로코 여행에서 페스(Fes)라는 도시에 들렀다. 789년 세워진 후 다양한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고, 1,200년이 넘은 모로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무엇보다 이 도시를 전 세계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유가 가죽 천연염색 공정을 볼 수 있는 ‘태너리(Tannery)’일 것이다. 여행은 변수가 생겨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을 못 가서 후회하는 경우가 가끔 있기에 나는 도착하자마자 그곳을 찾았다. 사전에 변수를 제거하고 싶어서다.
아랍어로 도시 혹은 마을을 의미하는 ‘메디나(Medina)’는 아주 좁은 미로 골목들이 무성하게 뻗어 있고 고대 성벽이 둘러싸인 구시가지를 말한다. 역시 페스 메디나는 기존 모로코 메디나와 달랐다. 흙벽돌로 쌓은 높은 성곽에 둘러싸인 것은 유사하나, 무려 9,000여 개나 되는 크고 작은 골목길이 있어 규모가 현저히 컸다. 여기저기 펼쳐진 갈래 길의 연속에 나도 여지없이 길을 잃고 찾고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히 벽에 방향 표시와 함께 태너리라고 쓰인 굵은 글씨가 그저 반갑기도 했다. 해외여행 목적지를 찾아 가는데, 필수적인 구글 지도 앱도 실수를 연발했다. 구글 지도가 가장 부정확한 전 세계 도시 순위를 매긴다면 페스가 아마도 부동의 1위가 될 것이다.
한 현지인 남자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여행 책자에서 10~30디르함(모로코 화폐 단위) 정도를 주면, 테라스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의 아버지가 인수인계를 받고 테라스에 올라갔는데 조망이 좋지 않았다. 작업하는 사람들도 단 둘뿐이었다. ‘별로네’ 하며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가죽 판매장으로 유도했다, 염소 가죽으로 만든 잠바를 팔기 위함이다.
처음에 2,500디르함을 제시해서 이에 질세라 나는 800디르함이면 사겠다고 말하니 그는 기겁했다. 조금씩 내려가다가 1,800디르함이 최종이라고 말했다. 전에 만났던 남자가 다시 오더니 이번에는 나를 오일 가게로 안내했다. 아내가 하는 상점이었다. 구경만 하고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가죽 잠바 가격을 제시했다. 난 1,000디르함 아니면 안 사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포기했다. 호객꾼한테 걸리긴 했지만, 그 도시의 전형적인 가족 비즈니스를 경험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진에 대한 아쉬움에 직접 태너리를 찾아야겠다고 나섰다. 점점 암모니아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고, 저 멀리 한 부부가 코를 막으면서 나오는 것을 보니 근처까지 온 듯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또 다른 호객꾼이 등장해서 나를 데리고 갔다. 테너리 전체 전망을 볼 수 있고 입장료도 깎았다. 이번에는 성공이다. TV나 사진으로 접했던 명소에 직접 오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훨씬 좋다고 느낄 때 나는 설렘을 넘어서 흥분하는 편이다. 아마도 그 흥분의 빈도수가 많다는 것이 내가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비결은 아닐까.
아래로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하이앵글 기법으로 전체를 담기 시작했다. 가죽에 염색 원료를 잘 스며들게 하려고 가축의 배설물을 이용하는 전통 기법이라서 심한 악취가 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트잎을 코끝에 대거나 심지어는 마스크를 쓰고 오는 사람도 있다. 민트잎을 준다고 했던 아저씨가 까먹었는지 나에게는 주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참을 수밖에. (거의 나갈 즈음 되어서야 민트잎을 받았다.)
갑자기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사진을 담고 싶어서 한 층을 내려가서 작업 현장으로 들어갔다. 고약한 냄새는 진동하고 주변 시설의 열악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모로코는 전통적으로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거나 싫어한다. 이번 여행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대체로 그랬다. 여기서는 실제 일하는 장면을 찍어도 개의치 않았다. 작업하는 분끼리 거의 대화도 없이 묵묵히 일을 했다. 아주 가끔 말하는 정도였다.
색상을 입힌 가죽이 하나씩 쌓이는 모습에 잠시 시선이 멈췄다. 가죽을 여러 차례 담그고 꺼내는 과정을 반복하던 구릿빛 피부에 땀이 맺힌 한 작업자가 다리를 쭉 벗고 잠시 쉬는 모습이 너무도 편안해 보였다. 힘든 노동 후 꿀맛 같은 휴식 바로 그 자체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쌓여가는 가죽이 나무가 나이 들면 생기는 나이테처럼 보였다. 켜켜이 쌓이는 가죽들의 모습이 왠지 힘들게 살아가는 어깨가 축 처진 중장년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 모습에서 삶의 무게감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는 갖은 노력으로 차곡차곡 쌓였던 경험의 축적은 아닐까. 이들의 값진 노동의 대가가 좋은 가죽 제품으로 탄생하는 것처럼.
동일한 것을 보더라도 이렇게 다르게 보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자의 시선이 달라진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시선을 갖도록 시도하고 훈련하면 어떨까. 가죽 염색하는 노동자들의 땀 흘리는 모습이 축 처진 삶의 무게감이 아닌 그들의 축적된 노하우가 질 좋은 가죽제품으로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우리 사회에도 비록 남들의 시선에서 소외된 가치 있는 일들이 많다.
그 가치를 모르거나 도외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 숨겨진 가치를 알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면 좋겠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설사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평온하지 않은가.
나는 여기 페스에서 비록 참기 힘든 냄새로 힘들었지만, 오랫동안 머무르며 바라보면서 나만의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올바른 시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선은 정답이 없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각자가 자기만의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좀 더 높이고 확장한다면 족할 것이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