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 경기 안산 문화광장에서 열린 물축제 현장.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이던 대학생 A씨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워터건(고압세척기) 물줄기가 직격으로 얼굴을 강타한 순간이었다. 왼쪽 손등 10㎝, 얼굴 정면 왼쪽 입술부터 정수리까지 40~50㎝ 찰과상, 귀 뒤쪽은 2.5~3㎝가량 찢어져 봉합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선 흉터가 남을 거라는 진단이 나왔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다음이었다. 공연자들은 위험한 고압 장비를 리허설은커녕 공연 직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용법 교육? 당연히 없었다. 안전교육도 받은 적 없다. 피해자 측은 "시와 재단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현재 안산문화재단 직원 2명, 안산시 공무원 1명, 용역업체 관계자 등 5명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됐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안산서머페스타 2025’ 모습 [안산시 제공]
[시사의창 2025년 11월호=하지훈 (전)동아보건대학교 마술학과 교수] 11년 전 판교, 그리고 되풀이되는 비극
2013년 10월 17일 오후 5시 54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걸그룹 포미닛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환풍구 위로 올라간 관람객 27명이 순식간에 20m 아래 주차장 바닥으로 추락했다.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환풍구는 애초에 사람이 올라설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공연장 주변 통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건 안전관리 실태였다. 축제 계획서엔 안전요원 4명 배치로 적혀 있었지만, 정작 그 4명은 자신이 안전요원인지조차 몰랐다. 서류상으론 존재했지만 현장엔 없었던 안전관리. 사고 이틀 뒤엔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소속 안전담당 과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무면허 업체의 부실 시공, 도면과 다른 시공, 그리고 형식적인 안전 점검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2023년 9월 20일 경기 하남시 미사경정공원에선 K팝 콘서트 준비 중이던 3~4층 높이 무대 구조물이 무너져 작업자 8명이 다쳤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선 13만 명의 인파가 몰린 핼러윈 축제에서 159명이 압사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 3시간 40분 전부터 112에 압사 위험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없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현장에선 유명무실
법은 분명히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6조의11은 1천 명 이상 인원이 밀집하는 행사 개최자에게 안전관리계획 수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서류만 보면 완벽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현장은 딴판이다. 2024 9월 새로 발행된 행안부 지침엔 축제 안전관리계획 심의를 ‘대면 심의’로 원칙화했지만 아직도 상당수 지자체가 서면 심의로 때우고 있었다. 직접 만나 설명 듣고 토론하며 꼼꼼히 점검하란 취지는 완전히 무시됐다. 형식적 심의로 도장만 찍어주는 게 현실이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지역축제장에서 발생한 인명피해는 30명(사망 2명, 부상 28명). 이태원 참사 이후로도 축제 현장 사고는 계속됐다. 법과 매뉴얼은 수없이 만들어졌지만 사고는 반복된다. 왜일까?
안산시 물축제에서 워터건에 맞아 다친 피해자 ©연합뉴스
떠넘기기 구조,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사각지대
답은 간단하다. 책임 소재가 애매하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주최하고, 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용역업체 여러 곳이 실제 운영을 맡는다. 사고가 나면? 주최 측은 ‘주관 측 책임’이라 하고, 주관 측은 ‘용역업체 문제’라 한다. 용역업체는 ‘발주처 지시대로 했다’고 맞받아친다.
결국 피해자만 홀로 남는다.
안산 워터건 사고에서 안산문화재단은 ‘우발적 사고’라며 “보험 처리도 거부하고 우릴 고소해 힘들다”고 해명했다. 피해자 입장은 정반대다. “정상적인 업체는 무대 공연에 쓰지 않는 위험 장비를 사전 교육도 없이 썼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 가리기 전에, 왜 위험한 장비가 무대에 올라왔고, 왜 안전교육이 없었는지부터 따져야 하지 않나.
참여연대가 2024년 11월 발표한 보고서는 지자체 주최 행사조차 안전관리 사각지대임을 지적했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최자가 있는 행사도 재난·안전 예방과 관리에서 허점투성이였다.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결과다. 단발성 행사라는 특성도 문제를 키운다.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축제를 위해 임시로 구조물 세우고, 단기 계약직 안전요원 배치하고, 용역업체는 가장 싼 곳으로 선정한다. 안전보다 예산 절감이 우선이다. 사전 점검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 판교 참사가 그랬고, 안산 사고가 그랬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식적 점검, 실질적 안전은 없다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 중 24%인 217건이 10월에 몰린다. 가을 축제 시즌이다. 행안부는 매년 이맘때면 ‘안전 점검 강화’를 발표한다. 지자체는 합동 점검단을 꾸려 현장을 돈다. 그러나 점검 항목은? 체크리스트에 체크만 하면 끝이다.
임시 무대가 정말 안전한지, 전기 배선은 적절한지, 비상대피로는 확보됐는지 실질적으로 검증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4년 행안부가 부산불꽃축제 안전관리 상황을 점검했다고 발표했다. 103만 명이 몰린 대규모 행사를 ‘안전하게 마쳤다’고 자평했다. 다행이다. 하지만 안전하게 끝난 축제를 자랑할 게 아니라, 왜 다른 축제는 사고가 나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용산구가 ‘지역축제 안전관리 우수사례’로 선정돼 상을 받을 뻔했다. 유가족의 거센 반발 끝에 수상은 취소됐지만, 이 해프닝은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159명이 목숨을 잃은 지역이 안전관리 우수 지역이라니.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단계별 안전관리 체계, 인파 밀집 관리 시스템, 임시구조물 전문 검사, 책임 소재 명확화, 안전요원 배치 기준 강화.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대책들, 판교 참사 이후에도 나왔고,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나왔다. 문제는 실행이다.
지자체는 축제를 지역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만 본다. 관람객 몇 명 왔는지, 경제 효과 얼마인지만 따진다. 안전관리는? 예산 들어가는 비용일 뿐이다. 중앙 정부는? 매뉴얼 만들고 지침 내려보내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사고 나면 ‘지자체가 매뉴얼을 안 지켰다’며 책임을 떠넘긴다. 안산 워터건 사고 피해자가 남긴 말이 가슴에 박힌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11년 전 판교에서, 3년 전 이태원에서, 그리고 올해 안산에서 똑같은 말이 반복된다. 법도 있고, 매뉴얼도 있고, 점검도 한다는데, 왜 사고는 계속될까. 답은 하나다. 진짜 안전은 서류 속에만 있고, 현장엔 없기 때문이다. 축제는 즐거움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축제는 재난의 온상이 될 뿐이다. 이제는 형식적 점검을 멈추고, 책임 떠넘기기를 그만두고, 진짜 안전을 만들 때다. 다음 참사가 터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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