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는 최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 캄보디아의 한국 대학생 납치 사망사건과 관련해 폭넓게 다뤄보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범좌단체의 위험성으로만 접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 이면에는 권력과의 복잡한 유착관계가 있으며, 이분법적 논리만으로 바라보기에는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해당 사안을 바라보던 정부의 안일한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지만,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시사의창 2025년 11월호=정용일 기자] 캄보디아에서 열린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대학생 박모 씨(22)가 결국 낯선 땅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사인도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고문을 당해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해당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여론이 들끓었고 그 충격파는 더욱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한국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지만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부는 사건 발생 이후 뒤늦게 ‘현지 대사관 비상대응팀’을 가동했지만, 이미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뒤였다. 현지 경찰과 공조도 원활하지 않아 피해자 구조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가족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지 수사기관의 행태는 그저 보여주기 식일 뿐이라는 여론이 강하다. 그만큼 범죄조직과 현지 경찰이나 권력과의 유착관계가 심각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의 ‘치외법권’에 가까운 캄보디아의 범죄단지들
‘한국인 블랙존’ 들끓는 여론에 ‘늦장 대응’ 나선 정부
정부, 사건 터질 때마다 ‘긴급 점검’, ‘사후 대책 회의’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대신 뒤지는 ‘개인의 손’
각 범죄단지 내 동 별 업무 분장 철저히 나뉘어 있어..
전국서 쏟아지는 실종신고, 캄보디아 언론보도 ‘봇물’
‘비공식 수사관’ 천마로 쏠리는 시선, 정부는 뭐 했나...
사적 정의와 위험의 경계, ‘천마’ 채널의 빛과 그림자
‘골든트라이앵글’ 이후 범죄 이동, 동남아 전역 위협해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경찰 셋으로 수백 건 사건 대응
여론 들끓는 코리안 데스크’ 필요성, 캄보디아는 ‘난색’
교민 “SNS 과장된 정보, 캄보디아 전체 이미지 흔들어”
캄보디아 교민 피해 심화…각종 예약 취소·불안 확산 중
전문가들 “정확한 정보 공개 통해 혐오 확산 막아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외교적 무기력함을 지적한다. 한 국제정치학 교수는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 균형에 신경 쓰느라, 정작 국민 보호라는 기본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범죄의 대부분이 다국적 조직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여전히 단발적 대책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늦장 대응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 라오스, 필리핀 등 인근 지역에서도 유사한 범죄가 계속 보고되고 있지만, 정부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긴급 점검’, ‘사후 대책 회의’에 그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구조적이고 상시적인 해외 치안 대응 시스템이 부재한 탓이다.
교민사회 내부에서도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프놈펜의 한 교민은 “한국 정부는 국민이 위험에 빠져도 공식 루트로만 움직인다”며 “위기상황에서는 몇 시간이 생사를 가르는데,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외교당국이 현실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범죄 문제가 아니라, 한국 외교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사건이 커질 때마다 뒤늦은 대책을 내놓는 방식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늦장 외교’의 오명을 벗으려면, 사건이 터진 뒤 대응하는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험 지역에 대한 실시간 정보망 구축, 교민 보호를 위한 상시 비상 체계, 그리고 국제공조를 통한 범죄조직 근절이 필요하다.

천마 대회내용 캡처


천마의 등장...그리고 엄청난 파장
캄보디아의 한 오픈채팅방에 한 여성이 글을 남겼다. 해외로 나간 가족이 며칠째 연락이 끊겼다는 절박한 호소였다. “제발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그녀의 글 아래에는 낯선 누군가가 링크 하나를 남겼다. “경찰보다 빠르고, 검찰보다 확실한 곳입니다. ‘천마’에게 제보하세요.” 그렇게 연결된 곳은 텔레그램 채널 ‘범죄와의전쟁2’였다. 그 안에는 이름, 얼굴, 여권 사본, 계좌번호까지 노출된 한국인들의 신상정보가 줄지어 있었다. 게시물에는 ‘보이스피싱 조직원’, ‘마약 연루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천마’라는 이름의 채널 운영자는 지난 5월부터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인물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등장했다. 경찰도, 외교부도 손을 쓰기 어려운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그의 채널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그는 어느새 ‘비공식 수사기관’처럼 불리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필리핀, 라오스 등지에서 급증하는 한국인 범죄사건 속에서 ‘천마’는 그야말로 신뢰의 공백을 메우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한마디로 현대판 자경단이자 로빈 후드로 불리고 있는 듯 보인다.
텔레그램 천마 채널의 주요 특징으로는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상 범죄(납치, 감금, 마약, 살인) 관련 사진이나 범행에 이용된 계좌번호, 녹취록 등의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한다는 점이다. 또한 경찰이나 대사관이 제공하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피해자 가족들이 ‘천마’ 채널을 통해 범죄 조직의 실체와 대응 방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채널 운영 방식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법적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며, 사적 제재나 과도한 정보 공개로 인한 부작용도 지적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마’는 텔레그램 내에서 범죄 피해 정보와 대응법을 공유하는 비공식 채널의 운영자로서 공식 수사기관이 아닌, 개인 또는 소규모 커뮤니티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해당 채널의 정보는 공식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사실 확인 및 대응 시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다.

천마 자료공개


‘비공식 수사기관’처럼 불리기 시작한 ‘천마’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에서 실종된 대학생 박모 씨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이 알려졌을 때도 처음 소식을 전한 곳은 ‘천마’였다. 박모 씨가 현지 조직에 의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는 영상이 채널에 올라오면서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공식 기관의 발표보다 며칠 앞서 이미 ‘천마’의 채널에는 관련 인물들의 이름, 여권 사진, 숙소 내부 사진까지 ‘증거’처럼 공개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그의 행동을 ‘정의구현’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사적 제재’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부보다 먼저 움직인 그에게 환호했다. “형님, 감사합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입니다.” 채널의 대화창은 이런 메시지로 끊이지 않았다.
시사의창 취재진이 텔레그램을 통해 접촉했을 때, 천마는 자신이 ‘정의의 사도’로 불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이건 범죄 예방을 위한 행동입니다. 수사기관이 내사 착수부터 검거까지 몇 달이 걸리는 동안 피해자가 계속 생깁니다. 그 사이를 내가 메우는 겁니다.” 그는 경찰에도 자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사적 제재로 불리지만,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그게 나일뿐이죠.”
그의 정보 출처를 묻자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직접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과 사진은 현지 상황을 잘 아는 내부자의 접근 없이는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천마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동남아 일대의 한인 네트워크와 연결된 복합적 조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내가 보낸 적도 없는 링크가 경찰관들에게 뿌려지며 협박을 받았다”며 “나를 싫어하는 세력도 많다.”고 말했다.

천마가 리광호와의 녹취록을 공개한 이유에 대한 설명.


전문가들은 ‘천마 현상’을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낳은 사회적 신호로 해석한다.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곽대경 교수는 “사적 제재는 결국 감정의 폭발일 뿐, 법적 정의와는 다르다. 그가 가진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해 신속한 검거를 돕는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단독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신상공개는 개인의 인권 침해를 야기하고, 사회 불신을 확대시킬 수 있다. 만약 이런 행위가 상업화되거나 여론 조작의 도구로 악용된다면 사회적 부작용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천마’를 지지한다.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니까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 한마디가 모든 논란을 덮는다. 피해자 가족에게 천마는 마지막 희망이다. 현지 경찰의 무기력과 외교부의 절차적 대응에 지친 이들은 텔레그램을 통해서만 단서를 얻어왔다.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대신 뒤지는 개인의 손이, 지금 한국인의 생사를 구하고 있는 셈이다.
동남아 각국에서 한국인 대상 보이스피싱, 마약, 사기 사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현지의 부패와 행정력 한계, 늦은 국제 공조는 늘 문제로 지적돼왔다. 정부는 절차를 따르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피해자들은 ‘국외 사건’이라는 이유로 방치된다. 바로 그 틈새에서 천마와 같은 ‘비공식 자경단’이 신뢰를 얻고 있다. 정부의 무능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정의와 복수는 언제나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범죄와의전쟁2’ 채널에는 구원의 순간과 파괴의 흔적이 동시에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곳을 통해 실종된 가족의 단서를 찾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다. 진실이 아닌 분노가 정의의 자리를 대신할 때, 그 끝은 예측할 수 없다.
천마의 등장은 한국 사회의 신뢰 구조가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의 느림이 개인의 폭로로 대체되고, 제도의 부재가 사적 정의를 낳았다.

범죄단지에 갇혔던 박씨가 구조 요청을 위해 보냈던 텔레그램 메시지. 텔래그램 캡처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캄보디아로 이동했나..
직접 수사권 행사 불가, ‘코리안 데스크’ 절실

캄보디아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한국인 납치·감금·살인 사건은 단순한 해외 치안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범죄의 지형’이 바뀌는 가운데, 한국 사회가 해외에서 자국민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물음에 직면했다는 신호다. 범죄의 국경이 사라진 시대, 외교와 수사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고, 그 틈에서 범죄 조직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과거의 속도에 머물러 있다.
캄보디아에서 현지 범죄조직에 납치돼 숨진 채 발견된 이번 사건은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사건이 ‘예외’가 아니라 ‘패턴’이라는 점이었다. 취업 사기를 가장한 감금, 몸값 요구, 불법 노동 착취, 그리고 살인까지. 캄보디아의 특정 지역은 이미 사실상 ‘한국인 범죄 블랙존’으로 변해 있다.

범죄단지에 갇혔던 박씨가 구조 요청을 위해 보냈던 텔레그램 메시지. 텔래그램 캡처


한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단 4건에 불과하던 캄보디아 내 감금 신고는 2023년 17건, 2024년 220건을 넘어 올해 들어서는 이미 330건에 달했다. 불과 3년 사이 8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범죄 증가를 넘어, 조직범죄의 지리적 이동과 국제적 네트워크의 변화를 반영하는 지표로 평가된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동남아 마약과 사기 산업의 국제적 흐름과 연결지어 분석한다. 기존의 범죄 활동의 중심지였던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 대한 단속 강화로 인해 범죄 조직들이 캄보디아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국제 범죄와 마약 문제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는 골든트라이앵글이란 태국 북부, 라오스 북부, 미얀마 동부가 만나는 메콩강 인근 산악 지대를 일컫는 말로, 험준한 지형과 정부 통제가 취약한 환경이 결합되며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로 알려졌다. 20세기 중반 이후 이 지역에서는 아편 재배가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에는 아편을 정제한 헤로인과 각종 합성 마약이 생산되며 국제 범죄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이 지역의 지형적 특성은 범죄 조직 활동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산과 숲이 많아 정부 단속이 어려웠고, 소규모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는 민족 집단이 많아 외부 접근이 제한적이었다. 이로 인해 마약 재배와 운송, 가공 과정에서 범죄 조직이 은신하며 활동할 수 있었다.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마약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넘어 중국, 한국, 일본, 유럽 등으로 유통되며 국제 마약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국제 사회와 현지 정부의 단속 강화로 골든트라이앵글 내 마약 산업이 점차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정부와 유엔 등 국제기구는 마약 단속과 산지 관리에 적극 나서면서 현지 범죄 조직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단속의 강화는 새로운 문제를 불러왔다. 범죄 조직은 기존 활동 무대인 골든트라이앵글을 벗어나 캄보디아, 베트남 등 주변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외국인 대상 납치, 사기, 불법 노동 강요 등 국제 범죄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천마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중국 국적 남성의 여권 사진. 텔레그램 채널 캡처


이들 범죄조직은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며, 사기와 폭력, 납치까지 결합한 복합 범죄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대규모 사기 작업장은 50곳을 훌쩍 넘으며, 미국 평화연구소는 이 사기 산업의 연간 규모가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현지 교민 사회에서는 “캄보디아에서 한국 여권은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처럼 급증하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현지 대응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는 경찰 주재관 1명,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의 경찰만이 파견돼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범죄 관련 제보와 구조 요청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세 명의 인력으로는 대응이 불가능에 가깝다. 외교부 전체 인력 15명 중 사건·사고를 전담하는 인원이 이들뿐이라는 점은, 정부가 얼마나 이 사안을 안이하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해외 사건은 단순히 경찰력을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찰은 해외에서 직접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모든 형사 공조는 상대국의 승인과 협조를 거쳐야 한다. 캄보디아는 ‘주권 침해’를 이유로 외국 경찰의 개입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이로 인해 한국 경찰의 수사 지원은 대부분 ‘자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 제시된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코리안 데스크’의 설치다. 이는 현지 경찰청에 상주하며 한국인 관련 범죄를 전담 처리하는 경찰 협력 제도로, 현재 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이 제도 도입에 여전히 신중하다. 한국 경찰이 사실상 자국 내 치안 활동을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교민과 전문가들은 “더 이상 외교적 예의만 따질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피해는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니라 조직화된 국제 네트워크의 일부이며, 이를 방치한다면 더 많은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불법 도박·피싱 조직원 240명을 한꺼번에 송환하는 대규모 작전을 벌였다. 한국 역시 자국민 보호를 위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인 피해자 중 일부가 단순 피해자에 그치지 않고 범죄조직에 가담해 공범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취업을 미끼로 현지에 끌려간 뒤 협박과 폭력 속에서 불법 피싱 업무에 동원되는 것이다. 이런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이중적 구조는 사건의 수사와 송환 절차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순히 캄보디아라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라오스·미얀마·필리핀 등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범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전역이 새로운 국제 범죄 허브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그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온라인 불법 도박과 피싱 산업, 그리고 느슨한 사법 체계를 악용하는 범죄 생태계가 자리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공격적인 형사공조 협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한 범인 인도 협약 수준을 넘어서, 수사 초기부터 공동 대응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의 형사공조는 사후 처리에 그치고 있다”며 “사건 발생 단계에서부터 한국 경찰이 현지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 협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외교와 수사의 경계에 있다. 주권 문제를 이유로 양국 모두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 사이에서 피해자들은 목숨을 잃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것이 국내이든 해외이든 다르지 않다.
캄보디아의 어두운 범죄지대에서 사라진 이들은 단지 통계 속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가족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극은 매번 늦은 구조, 복잡한 절차, 미온적 협상 속에 반복된다. 국가는 더 이상 ‘외교적 한계’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신속한 시스템 개편이다. 코리안 데스크 확대, 긴급 수사 공조 체계 구축,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전용 대응팀 신설 등 구체적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이 ‘선진국’이라 불리기 위해선, 해외에 있는 국민조차 국가의 보호망 안에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주캄보디아 대한민국대사관 홈페이지 공지사항 캡처


캄보디아 전체에 대한 혐오 정서 급격히 확산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가 잇따르면서 캄보디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혐오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한국인 납치, 감금, 고문, 살해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일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과장된 정보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캄보디아에 가면 납치되어 마약을 투여당하고 노예처럼 취급되며 결국 암매장된다”거나 “캄보디아 전체 GDP의 절반이 범죄 수익이라는 말이 있다”는 식의 글이 대표적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한국인을 돈으로 보고 물건 취급한다. 시비가 붙으면 조선족에게 넘긴다”는 댓글을 달며 캄보디아 전체를 부정적으로 일반화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배후에 중국계 조직폭력배가 존재한다거나, 베트남, 태국 등 인접국을 거쳐 캄보디아로 인신매매되는 사례가 있다고 전하며 부정적 인식은 동남아시아 국가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캄보디아 전체 국민과 사회를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집단은 캄보디아 교민들이다. 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사업을 하거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교민들은 계약 취소와 예약 감소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캄보디아에 16년째 거주하며 한국인 대상 교육업을 운영하는 강모 씨는 “여행사 예약이 연달아 취소됐고, 한국에서 투자 목적으로 오기로 한 일정마저 취소되는 일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민 단톡방에서도 선량한 교민을 범죄자로 몰아 불안을 조성하는 사례가 생기며 긴장이 고조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피해자들이 범죄에 직접 연루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8년째 캄보디아에 거주 중인 이현주 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은 “한인회가 구조를 도왔던 사례 대부분은 고액을 준다는 일자리에 스스로 선택해 간 경우가 많았다”며 “힘들게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재입국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몇몇 범죄 사례가 캄보디아 전체 이미지로 확대 재생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한국 정부가 사전 관리와 사후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들도 불합리한 부정적 시선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에 11년째 거주하며 캄보디아인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소르 소켐 씨는 "집을 구하거나 택시를 이용할 때, 캄보디아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거나 욕설을 듣는 경우가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캄보디아 정부 부패와 외국인의 유입으로 인한 일부 인신매매 사건 때문에 캄보디아 전체 이미지가 실추됐다”며 “모든 캄보디아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닌데, 이런 일반화된 인식이 생기는 것이 슬프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개인의 범죄 사례가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현상을 부당한 낙인찍기라고 지적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이민학회장)는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캄보디아 국민과 나라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혐오 정서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범죄 발생과 대응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혐오 정서는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당국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떤 조치를 취했고 캄보디아 측에서 어떤 답을 받았는지 과정을 계속 국민에게 제시해야 혐오 정서가 더 깊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사건 보도를 넘어, 사회 전체가 편견과 낙인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캄보디아의 한 범죄단치, 사진은 범죄단지 안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제보자 제공


접경지역 ‘바벳’에 대한 생생한 증언
시사의창은 수소문 끝에 캄보디아 접경지역에 위치한 범죄단지들을 업무(제보자의 요청에 따라 업무 내용은 밝히지 않기로 함) 차 드나들며 현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A씨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보다 자세한 현지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언론보도를 통해 여러 번 언급된 프놈펜, 시누아크빌의 범죄단지들은 범죄단지 중에서도 그나마 양호한 편에 속한다는 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어나가는 곳이라 알려진 프놈펜이나 시누아크빌도 무서운 곳이지만, 이 두 곳은 사실 캄보디아의 수도이거나 중심부 쪽에 있거든요, 그런데 캄보디아 접경지역에 위치한 범죄단지들은 끌려가면 그냥 죽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살벌한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유인 즉, 타 범죄단지로 잡혀온 사람들을 인질로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하는데 조직원들의 입장에서 별로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몸캠이나 보이스피싱 등 다른 업무를 강제로 시킨다는 것. 하지만 이 또한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최후의 보루로 돈을 받고 다른 범죄단지로 판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범죄단지로 팔려나간 사람들이 가는 곳은 대부분 접경지역에 위치한 범죄단지들이다. 이곳으로 다시 팔려온 사람들의 경우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장기적출도 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프놈펜이나 시누아크빌로 끌려간 사람들이 실적도 나쁘고 돈이 안 된다 싶으면 마지막으로 보내는 곳이 접경지역 쪽에 있는 외곽의 범죄단지거든요. 제가 다녀온 곳들 중 ‘바벳’이라는 범죄단지가 있는데, 그런 곳이 정말 무서운 곳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가 직접 범죄단지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모습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범죄 단지는 고압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 무장 경비원, 방범 카메라 등으로 이중·삼중의 철통 보안이 이뤄져 있다. 노동자들은 이곳에 사실상 불법 감금된 상태다.
바벳의 한 범죄단지의 경우 8개 동의 건물이 모여 있으며, 각 건물은 저마다 범죄행각을 벌이는 성격이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납치되어 끌려온 사람들은 다양한 범죄행위에 강제적으로 가담해야 한다. 딥페이크 영상 기술로 사람들을 유혹해 돈을 받아 챙기는 몸캠 사기를 벌이는 건물동이 있는가 하면, 보이스피싱 만을 하는 건물동이 있고, 온라인카지노에서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배팅을 하면 실제로 카메라 앞에서 배팅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도박 테이블 앞에서 배팅을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건물동이 있는 등 각 건물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각 작업장 내부는 마치 감옥과 유사한 형태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고문 전용 방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단지 전체가 높은 벽으로 360도 원천 봉쇄되어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은 절대 불가능하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옥의 죄수처럼 이곳에 갇혀 지내지만, 소수의 인원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범죄단지 내에서 조직원들이 운동할 수 있는 운동장이나 족구장도 있고, 대형 식당 및 유흥시설까지 있는 등 그 대규모 단지 내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게끔 조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범죄단지들은 캄보디아 정부와 철저하게 유착되어 있어 한국 정부에서 어떠한 행정력을 펼치느냐가 관건이라 그는 말했다.

캄보디아의 한 범죄단치. 총 8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제보자 제공..


수치로 보는 캄보디아의 현실, 한국 정부의 ‘한숨’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현지 교민사회의 분위기는 어떨까. 시사의창은 앞서 제보를 한 A씨를 통해 현지 분위기에 대한 생생한 분위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캄보디아 교민사회의 분위기는 매우 술렁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또 “일부는 잇단 보도로 인해 캄보디아 전체가 ‘범죄 국가’로 비칠까 우려하는 반면, 또 다른 일부는 이번 기회에 한국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조해 범죄 조직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A씨는 “이곳에 사는 한국 교민이 1만 명이 넘는데 분위기가 엇갈린다”며 “한쪽은 언론 보도로 교민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하고, 다른 쪽은 이번에 범죄를 완전히 근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캄보디아 곳곳의 범죄단지들의 행태와 캄보디와 정부나 경찰과의 유착에 대해서는 아마 상당수의 교민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 “이러한 대규모시설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자국에서 방치하다시피 하는데 타국의 경찰이 과연 이들을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고 덧붙였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캄보디아 현지 교민사회는 불안감과 피로감이 뒤섞인 분위기다. “어느 나라든 범죄는 있지만, 한국 언론이 너무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캄보디아 전체가 범죄 소굴처럼 비칠까 걱정된다”는 A씨는 “우후죽순 쏟아지는 캄보디아 관련 뉴스들을 보면 일부 과장된 보도도 있는 것 같다”며 이 뒤숭숭한 분위기가 하루빨리 정리되어 교민들도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캄보디아 정부에서 이러한 대규모 범죄시설들을 방치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에 대해 A씨는 “이건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현재 캄보디아 곳곳의 범죄단지에 있는 조직원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으며, 그들이 캄보디아에서 소비하는 수준이 상당하다”며 “현지 국민들의 피해가 매우 미비하기 때문에 정부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범죄조직과 캄보디아 수사기관이나 정부 고위층 인사와의 검은 커넥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도 했다.
재캄보디아한인회에 따르면 현재 범죄단지로 알려진 ‘웬치’에서 탈출해 귀국한 한국인은 40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의 약 200명에서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아직 연말까지 두 달 이상 남아 있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일부 지역에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최근에는 프놈펜의 여행경보를 ‘2단계 여행자제’에서 ‘2.5단계 특별여행주의보’로 상향하면서 한국인 관광객 발길도 크게 줄었다. 제보자 A씨에 따르면 실제로 프놈펜 남쪽 약 20㎞에 위치한 떼쪼 국제공항 입국장에서는 한국인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작년까지만 해도 공항에 오는 한국인 손님이 많았는데 올해 들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캄보디아 한인사회의 불안감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지 교민들은 “범죄 확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교민 사회는 물론 양국 관계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캄보디아에만 수십여 곳의 범죄단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캄보디아에서 이러한 대규모의 범죄단지들은 사실상 치외법권에 가깝다. 캄보디아의 부패인식지수는 2024년 기준 180개국 중 158위였다. 또한 2025년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 조사에서 세계 180개국 중 161위로 '매우 나쁨' 범위에 위치한 나라이기도하다. 뿐만 아니라 국제앰네스티가 2025년 6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대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국의 범죄단지는 최소 53곳이 존재하는데, 캄보디아 정부의 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최종 폐쇄된 곳은 겨우 2곳에 불과했다. 20여 곳은 수사가 진행되긴 했으나 폐쇄도 처벌도 없는 등 그냥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한국 수사기관과의 공조가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과 탐욕의 민낯
한편 이번 캄보디아 웬치 납치, 감금, 불법사기행각의 배후가 캄보디아의 대기업 ‘프린스그룹(Prince Holding Group)’의 첸즈(Chen Zhi, Neak Oknha Chen Zhi) 회장이라는 사실과 그의 숨겨진 두 얼굴이 밝혀지면서 그의 행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연히 프린스그룹도 국제 사회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그룹의 실질적 수장인 첸즈 회장은 오랫동안 캄보디아 경제 발전의 상징으로 불려 왔지만, 최근 들어 그 이름은 온라인 사기, 강제노동, 인신매매 연루 의혹과 함께 거론되고 있다.
프린스그룹은 부동산 개발, 금융 서비스, 소비재 산업, 교육 재단 등을 아우르는 캄보디아 최대 복합 기업 중 하나다. 겉으로 보기엔 ‘캄보디아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이끄는 성공 신화처럼 보였다. 첸즈 회장은 중국계 출신으로, 2010년대 초 캄보디아로 진출해 현지 국적을 취득하고 사업 기반을 넓혔다.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와 금융사업을 주도했고, ‘Prince Foundation’을 통해 장학사업과 의료 지원, 지역사회 복지활동을 펼치며 ‘사회공헌 기업인’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이 화려한 외피 뒤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프린스그룹과 관련된 여러 기업 및 인물들을 ‘온라인 금융사기와 인신매매를 조직적으로 지원한 혐의’로 제재 명단에 올렸다. 미국의 ‘피그버처링(pig-butchering)’ 사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다수의 온라인 사기 거점이 프린스그룹 계열 기업이 개발하거나 관리한 지역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캄보디아에서 운영되는 대규모 온라인 사기 단지의 배후에는 현지 재벌과 권력층의 결탁 구조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첸즈 회장의 이름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아직 법적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의 금융당국이 잇따라 제재에 나서면서 프린스그룹의 대외 신뢰도는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현재까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해당 기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부분이 있는 만큼, 구체적 증거와 국제 공조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캄보디아 정부가 오랜 기간 프린스그룹의 정치적·경제적 후견인 역할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프린스그룹 사태는 단지 한 기업의 위기만이 아니다. 급성장하는 신흥국 자본의 투명성 문제, 경제발전과 범죄의 경계가 모호한 구조적 현실, 국제사회의 제재와 국내정치의 충돌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
캄보디아의 프린스그룹은 오랫동안 ‘성공한 신흥국 자본의 모범’으로 포장돼 왔다. 그러나 지금, 그 빛나는 외피 속에서 드러나는 건 통제되지 않은 권력과 탐욕의 민낯이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