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출석한 윤석열·김건희
윤 전 대통령 재판은 법원 건물 4층, 김건희 씨 재판은 3층에서 진행됐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가 7일 각각의 형사 재판에 동시에 출석했다. 부부가 같은 날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두 사람은 정치권과 사법계를 동시에 흔들고 있는 각기 다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는 이날 오전부터 삼엄한 분위기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윤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께 호송차량을 타고 서울구치소에서 법원에 도착했고, 곧이어 김건희 씨도 남부구치소에서 별도의 경로로 이동해 도착했다. 법원 측은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동선을 철저히 분리해 두 사람이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 재판은 법원 건물 4층, 김건희 씨 재판은 3층에서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부터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공판을 진행 중이며, 같은 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는 형사합의 27부(우인성 부장판사) 심리로 김건희씨의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공판이 열리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출석한 재판은 지난 7월 재구속된 이후 처음으로 직접 모습을 드러낸 ‘체포 방해 사건’ 공판이다. 윤 전 대통령은 넉 달 동안 대부분의 재판을 불출석으로 일관하다가 최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등 핵심 증인이 법정에 나오면서 직접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날 공판의 핵심은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처장에 대한 피고인 측 반대신문이다. 박 전 처장은 과거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사건에 연루돼 있으며, 앞선 공판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수사가 불법이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법정에서 “당시 체포 시도는 명백히 위법했고, 경호처의 대응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발언 기회를 부여했으나 그는 비교적 차분한 태도로 변호인단의 논리를 보강하는 수준에서만 입장을 밝혔다.

김건희 씨는 같은 시각 별도의 법정에서 진행된 ‘공천 개입 의혹’ 재판에 참석했다. 김 씨의 재판에서는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명태균 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피고인 측과의 반대신문이 이뤄지고 있다. 명 씨는 오전 11시 20분께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앞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 부부의 요청 없이 자비로 여론조사를 했다”며 ‘무료 여론조사 제공’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이날 재판에서도 그는 “특정 후보를 돕기 위한 여론조사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증언 내내 명 씨를 거의 외면하며 감정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재판이 단순한 공천 개입 여부를 넘어, 2022년 대선을 전후한 김 씨의 정치적 영향력과 자금 흐름을 규명하는 과정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와 김건희 씨 간의 관계는 단순한 인맥 수준이 아니라, 당시 여론 형성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김건희 씨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팀은 내일 명태균 씨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질조사를 예정했지만, 명 씨가 SNS를 통해 “특검의 정치적 의도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불출석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대질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특검 관계자는 “명 씨의 출석 여부와 무관하게 오 시장 조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명 씨 신병 확보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세훈 시장 측은 “대질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진실이 규명된다”며 특검의 강제조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날 해병대 특검팀은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임성근 전 해병 1사단장을 상대로 강제구인을 시도했다. 임 전 사단장은 특검의 반복된 출석 요구를 거부해왔으나, 이날 강제구인 방침이 알려지자 자진 출석 형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특검 사무실에 도착하며 “그동안 왜 출석을 거부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특검은 임 전 사단장을 상대로 순직 해병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과실치사상 혐의, 그리고 구명 로비 의혹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임 전 사단장 측은 “모든 진술을 거부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유의미한 진술이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은 해병 특검이 내일 예정한 조사에 대해서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미 재판 일정이 겹치고 변호인단 정비가 필요하다”며 불출석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특검은 “윤 전 대통령 측의 요청에 따라 조사 일정을 토요일로 조정한 것”이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구인영장 청구 등 강제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조사를 거부할 경우 향후 정치적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부부의 동시 출석은 단순한 재판 출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직 대통령과 영부인이 나란히 피고인 신분으로 법원에 선 것은 헌정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정치권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동시에 폭발한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정치분석가는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통치 행위와 공직자 지시를 둘러싼 책임 문제, 김건희 씨는 정치권 개입과 사적 네트워크 의혹이라는 전혀 다른 사안으로 법정에 섰지만, 두 사건은 결국 ‘권력의 사유화’라는 동일한 구조로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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