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기소' 첫 재판 출석한 윤석열

윤석열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1차 공판에 출석해 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화폰 서버 기록 삭제 지시’ 의혹과 관련해 “삭제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직접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서버 기록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대통령은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비화폰 운영 과정에 삭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6일 첫 공판 이후 한 달여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자신이 직접 발언권을 요청해 당시 상황을 해명했다.

이날 재판에는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비화폰 서버 기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7일 첫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화폰 운영 규정에 대해 물어왔고,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그 규정대로 잘하라’고 말씀하셨다”며 “두 번째 통화에서는 비화폰 서버가 얼마 만에 한 번씩 삭제되는지 물으셔서 ‘이틀 만에 삭제된다’고 답했을 뿐, 그 이후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차장은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수사받는 사람들의 비화폰을 그냥 놔두면 되겠느냐, 아무나 열어보는 게 비화폰이냐, 조치해야지”라고 말했지만 이는 보안 강화의 취지였다고 해석했다. 그는 “통화 이후 김대경 전 대통령경호처 지원본부장에게 ‘보안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으며, 이는 접속을 제한하는 의미로 삭제 지시가 아니었다”며 “삭제 지시를 내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또 “김 전 본부장이 ‘삭제’라는 단어를 썼기에 내가 ‘보안조치’로 정정했다”고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된 신문이 이어지자 윤 전 대통령은 직접 발언을 요청했다. 그는 “비화폰을 처음 받았을 때 경호처장에게 통화내역 관리 방식을 물었고, ‘정권이 바뀌면 모두 삭제하고 다음 정권에 인계한다’는 답을 들었다”며 “실제 통화내역은 남아 있었고, 이틀 만에 삭제되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화폰은 경호 목적상 일정 기간 보관되는 것이 원칙이며, 삭제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신이 비화폰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한편, 이날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김건희 여사와 김 전 차장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증거로 제시했다. 특검은 “당시 영부인이었던 김건희가 압수수색과 관련해 피고인이 우려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이는 윤 전 대통령이 압수수색을 저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단호히 반박했다. 그는 “제가 검찰에서 26년간 근무하면서 압수수색영장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청와대나 대통령실은 군사보호구역이라 압수수색 집행이 불가능하다”며 “그런 일이 역사상 없었고, 그 자체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제가 이를 걱정하거나 방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아무리 그만두고 나왔다고 해도 ‘김건희’가 뭐냐, ‘여사’라고 불러야 하지 않느냐”며 특검팀을 향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한 김성훈 전 차장이 “윤 전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공관이 대통령 관저에 포함돼 있으니 군사보호구역으로 함께 고려해달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데 대해서도 윤 전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공관이 괜찮다고 생각할까 봐, 군사보호구역이니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압수수색을 방해하거나 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재차 결백을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에서 전반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일부 특검팀의 발언에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증인 신문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면서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법정을 떠났다.

이번 재판은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서버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혐의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이 압수수색을 우려해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고 주장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통상적인 보안조치였을 뿐이며, 실제 삭제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향후 증인신문과 디지털 포렌식 결과가 재판의 향방을 가를 핵심 증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다음 달 추가 증인 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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